[Review] 그의 캐비닛을 직접 열어볼 시간! -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전시]

기억이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
글 입력 2023.10.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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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밀스타인_포스터수정_0802-(1).jpg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호주 멜버른에서 자랐으며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일리야 밀스타인은 놀라운 디테일과 맥시멀리즘 화풍으로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경이로운 디테일에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묘한 울림을 주는 요소가 있는데, 이는 그가 뉴욕을 넘어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는 LG전자의 광고를 통해 작가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더 많은 국내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토록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와 특유의 미시적 세계관을 탐험하며 그의 행선지를 추적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작은 것들의 존재감과 매력이 두드러진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의 압도적인 디테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고 작품 앞에 한동안 서서 그것들을 '보기'보다는 '읽게' 만든다. 일리야 밀스타인은 작은 것으로부터 세상을 읽어내며 그 경험을 감상자들에게도 선사한다.

 

이렇게 본인의 개성과 세계관이 개인의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글로벌적 협업으로 수많은 이의 사랑까지 받게 된 작가의 행보에 영감을 받은 이번 전시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타인과 우리가 사는 세계로 다다르는 여정의 네 개의 섹션을 각각의 '캐비닛'으로 은유하여 보여준다.

 

 

 

보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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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중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소장하고 싶어 한다. 친구와 찍었던 사진, 애인이 나에게 써주었던 편지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뿐인 물건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보관함 ‘캐비닛’에 넣고자 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캐비닛이 될 수 있겠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난 이 ‘캐비닛’을 ‘기억 저장소’라고 부르고 싶다.

 

누구에게나 이 캐비닛이 존재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캐비닛을 열어 공유할 때도 있다. 나는 2023년 10월 1일, 누군가의 캐비닛을 열어보았다. 바로 ‘일리야 밀스타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의 ‘기억의 캐비닛’이라는 전시를 통하여서! 그의 캐비닛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그리고 그 안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지 궁금하지 않은가. 빽빽하게 차 있던 그의 캐비닛 속을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의 캐비닛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기억”“나만 알고 싶은 기억”. 철저히 개인적인 기준이더라도 일리야 밀스타인이 이번 전시를 통해 ‘알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용기 있게 꺼냈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일리야 밀스타인은 ‘일상적인 것’과 ‘맥시멀리즘’을 선호했다. 일상적인 풍경 속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오브제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작품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관객들. 이 모든 풍경이 일리야 밀스타인이 구축하고 싶은 캐비닛의 방향성이었던 것 같다. 앞서 말한 ‘일상적인 것’과 ‘맥시멀리즘’은 일리야 밀스타인이 ‘공유하고 싶은 기억’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작품인 ‘A fresh start to a fresh day’를 살펴보겠는가.

 

 

A Fresh Start to a Fresh Day.jpg


 

이 그림을 보면 따스운 기분이 가장 먼저 피어오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한 가족이 보인다. 그들은 다 같이 아침 식사를 만들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보인다. 교복을 입은 딸의 모습으로 보아서 아들과 딸은 모두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친 모양이다. 4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아래엔 식탁에 가만히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이 집이 포근함과 안정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마음 놓고 잠을 청하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정말로 Fresh한 아침이 아닐 수 없겠다. 이렇게 일상적인 소재로 관람객들에게 편안함과 행복함을 주는 힘을 가진 작가가 일리야 밀스타인이 아닐지.

 

그리고 정말 다양한 음식과 가구, 더불어서 사람들의 디테일한 표정 하나하나까지 표현한 그의 세심함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기억을 더 파악할 수 있는 힌트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가 공유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오래된 탐구와 일상적인 소재에서 오는 행복감이 아니었을까?

 

반면 그의 작품들 중에서 유난히 어둡고, 오브제들을 최대한 숨긴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작품의 이름은 바로 ‘Leaving the country’이다.

 

 

Leaving the country.jpg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려는 두 남녀와 그들을 가로막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어둡지 않다고 느끼지 모르겠지만, 난 인물들의 모자에 가려진 그늘에 집중했다. 다른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표정을 디테일하게 그렸던 일리야 밀스타인이기에, 유난히 이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고향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오래 머물고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만 할 땐,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의 상상력을 더해 본다면, 두 남녀는 부부이고 가만히 서 있는 여성은 남성의 엄마가 아닐지. 그래서 이 부부가 고향을 떠난다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서 차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멋대로 해석해 본 작품이지만 일리야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지가 더 분명해지는 분석이었다.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것이 정말 맞는 것일지 의문이 들 때, 우리는 내가 머물고 있는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는 이를 들키고 싶지 않은 탓에 거짓말을 하기도 반항을 하기도 한다. 아마 그림 속에 남자도 소심한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런 모습은 누구나 숨기고 싶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 어떻게 비칠지는 궁금하지만 숨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할 터. 그래서 일리야 밀스타인은 이번 기획전을 통해 자신의 갈등이 어떠한 관점으로 해석되는지 관객의 눈을 빌려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일리야 밀스타인의 캐비닛은 정말 대단했다! 밝지만 어두운, 기쁘지만 슬픈 기억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시가 일리야만의 캐비닛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비닛에 들어가 있는 기억들은 조금씩 다 비슷할 것이 분명하다. 우린 똑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억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는 이유는 경험을 통해 얻는 생각이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종종 자신의 캐비닛과 타인의 캐비닛의 색깔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럼 이제 정말로 그의 캐비닛을 닫아보자. 기억이 새어나가지 않게!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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