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리야 밀스타인의 캐비닛을 꺼내다

일리야 밀스타인: 기억의 캐비닛
글 입력 2023.10.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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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밀스타인’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뉴욕타임즈,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LG와 콜라보 하며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급부상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밀도가 높은 맥시멀리즘 화풍으로 그림을 하나하나 다 보는 재미가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틀린 그림 찾기에 적합해 보이는 작품엔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그림을 보고 읽게 된다. 하나의 동화책이 한 점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은 세상의 단면을 담아낸다.

 

이번 전시는 ‘캐비닛’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만의 캐비닛 속 어렴풋이 들어있는 기억을 끄집어낸다. 관람객은 총 4개의 캐비닛을 살며시 열고 바래진 사진과 편지를 보듯, 과거와 꿈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다시 캐비닛에 넣고 그 위치를 다시 한번 외우며 캐비닛을 닫는다. 하지만 캐비닛은 어질러져 있고 헤집는 게 맛이라 우리는 또 기억을 찾기 위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는 지도가 아닌 ‘일리야 밀스타인’의 그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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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를 가득 채운 그의 작품을 보면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꽉 채워졌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정면을 바라봤을 때 정면 주위는 흐리다. 하지만 ‘일리야 밀스타인’은 그 흐릿함 마저도 뚜렷하게 그려낸다. <미니멀리스트>를 보면 가운데에 있는 파란 점 주위가 강한 선과 색으로 그 존재감을 외친다.

 

그림의 어느 부분을 봐도 내 일상의 조각인 셈이다. 아이러니한 건 모든 것으로 꽉 찬 그림이 소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박함은 양의 개념이 아니라 무게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사랑, 연인, 책, 나의 방, 마을 등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는 일상을 통해 우리의 삶은 가벼운 일상으로 가득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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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채롭다. 다양한 색과 피사체로 다채로운 일상이 나타나지만 균형에 변화를 주는 인물들의 행동과 그 인물에 가까운 물건들을 통해 다채로운 삶을 표현한다.

 

Tete a tete에서 대칭적인 침대와 조명, 벽지 무늬, 책상의 균형을 깨는 건 바로 작품 속 인물들이다. 자유롭게 침대에 눕고 앉아 체스를 두는 두 인물과 그 주위에 어질러진 옷과 신발이 마치 세상에 정해진 규칙을 깬 듯하다.

 

세상을 다채롭게 하는 건 체스를 두는, 신발을 아무렇게 벗어던진, 짐 정리를 하지 않는 소박하고도 가벼운 우리의 일상이다. 그러니 어질러진 캐비닛 속 우주는 다채로운 우주가 되고 우리는 우주를 유영하며 기억의 별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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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그의 상상 속 세계, 우리의 꿈속 세계를 담은 작품들도 있다.

 

공중에 떠있는 인물들, 마을을 떠도는 유령들, 시공간을 뛰어넘은 공간이 일상과 합쳐져 꿈의 세계를 일상에 포함한다. 비극적이든 환상적이든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꿈 또한 일상으로 표현된다.

 

Lovers에서는 아름다운 사랑이 중력을 이긴 두 연인의 자유로움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Hinterlands에서는 삭막한 사회를 비극적 표현해 그가 생각하는 어두운 세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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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재의 공간에 들어감으로써 그의 일상 속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캐비닛이 끝나고 한국의 ‘책거리’의 구조와 양식을 활용해 서재를 그려냈다. <티레니아해 옆 서재>에 등장하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 ‘책거리’가 일러스트로 표현될 때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설치물을 통해 그의 작품 속 일상을 더 다채롭게 느낄 수 있다. 인물들로 북적북적한 작품 속 공간이 전시관 안에서 실현되며 맥시멀리즘이 느껴지도록 한다.

 

설치물 사이를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더 다양한 동선을 만들어내는데 관객들이 벽면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동선이 아닌 새로운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동선으로 움직이길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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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선이 우리가 캐비닛을 뒤적거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을 캐비닛에 넣어 뒤적이듯이 관객은 그의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전시 공간 안을 뒤적인다. 그리고 공감하거나 비슷한 추억을 작품을 통해 만나면 캐비닛에서 찾고자 하는 물건을 잡았을 때와 같이 크게 기뻐한다. 제2의 지구를 찾기 위해 우주를 떠도는 비행사가 적합한 행성을 찾았을 때도 비슷할까.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찬란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삶은 가득하지만 우리가 보지 않아 언제나 아쉬웠다는걸. 숨어있는 존재를 발견한다면 우리의 시야는 더 많은 존재를 담을 수 있다는걸. 그리고 기억의 캐비닛에서 과거의 조각을 찾았다면 그 조각으로 이가 나간 지금의 삶을 채울 수 있다는걸.

 

그래서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캐비닛을 뒤적여 본다. 조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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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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