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내 인생의 장르는 사랑 -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글 입력 2023.10.0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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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어떤 이야기든 사랑 이야기로 생각하는 게 취미이자 특기이다. 그런 나에게 “장르는 사랑”이라고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는 가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롯이 ‘연애소설’이라고 명명하는 소설이 잘 없기도 하고. 연애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는 이 책이 필연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또다른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표지 그림이었다. 표지는 타로 카드의 1번 카드 ‘Ace of Cups’와 닮았다. 이 타로 카드에 하트를 좀 더 넣은 게 바로 이 책의 표지 그림이었다. ‘Ace of Cups’ 카드는 이 책의 단편 중 <타로마녀 스텔라>에서도 중요하게 나오는 카드이다.

 

모든 일의 시작을 알리는 Ace와, 마음을 뜻하는 Cups의 만남인 이 카드는 보통 ‘사랑’을 뜻한다고 하니. 가히 장르가 사랑임을 표방하는 책의 표지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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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른쪽 카드가 'Ace of Cups'

 

 

 

타로마녀 스텔라


 

대부분의 대작은 한 번 비틀어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례로 한국 영화사에 가히 남을 명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감독은,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가를 우연히 보고 ‘저 사진가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다면 어떨까’의 아이디어에서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내 연애운 봐주는 사람의 연애운은 누가 봐주나’하는 궁금증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남의 연애운 상담 건수는 9,000건 돌파를 목전에 둔 타로카드 사장님이 사실은 모태 솔로라니. 한 번쯤 생각해볼 발칙한 설정이다. 스텔라는 오히려 타인의 연애운을 너무 많이 들으며 연애의 피로감을 먼저 느낀 인물이다. 그들의 연애 고민에 공감하고 해답을 내려주지만, 연애 때문에 파생되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문제를 이미 느꼈기에 연애를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스텔라에게 헤어진 여자친구의 상담을 하러 온 연우도 처음에는 그런 피곤한 연애를 무수히 시도하는 ‘나와 다른 인간’ 중 하나였다. 심지어 전 애인이 바람을 피워서 헤어졌다는데도 미련을 가지는, 답답한 사례. 그러나 그와 연애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스텔라의 마음도 서서히 바뀌게 된다. ‘나는 시도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시도하는 사람’이 연우였지만, 그 시도의 마음을 들으며 스텔라 역시 자신도 모르게 연애의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카드가 속삭이는 예언을 옮기는 대신, 뜬금없는 고백이 스텔라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나는 연애 잘 못해.”

잠깐 스텔라를 바라보던 연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건 해봐야 아는 거 아닌가.”

 

p142

 

 

도장 열 개를 다 모아 공짜로 질문할 기회를 가진 손님이 타로 카페 주인인 ‘나’의 연애운을 묻다니. 여기서 나온 카드가 또 하필 ‘Ace of Cups’ 카드인데, 카페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카드 풀이가 아닌 ‘연애를 잘 못한다’는 말이라니. 둘 다 고백이 아니면 무엇이랴.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 없이 고백을 표현한 이 대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소도시의 사랑(법)


 

이 소설은 제목부터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생각났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이 <소도시의 사랑>의 공통점은 모두 이 대도시인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조금 더 넓은 대한민국을 표방하고, <소도시의 사랑>은 이 서울 안에서도 소도시에서 온 사람들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연애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서울이란 도시는 그랬다. 애틋하고도 지긋지긋하고, 빛나면서도 구질구질했다. 그들은 그 이율배반을 사랑했다. - p100


대도시에 산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장소에 간다는 것. 달리 말하면 상처받을 기회가 많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 p103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벅차면서도 쓸쓸한 감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뮤지컬 <빨래>의 ‘서울살이 몇 핸가요?’ 넘버를 함께 들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꿈을 가지고 희망차게 올라왔지만, 지쳐 쓰러질 때는 편히 쉴 ‘집’ 하나조차 없는 사람들. 그들은 작은 방에서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주며 위로가 되곤 하는 것이다.


 

“너는 추운 데서 태어난 애가 왜 이렇게 추위를 많이 타냐?”

남자가 빨개진 여자의 손을 감싸쥐며 말했다.

“너는 따뜻한 데서 태어나서 따뜻한 거야?”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p97

 

 

따뜻한 데서 자란 사람과 추운 데서 자란 사람이라는 키워드도 내가 즐겨 이야기하는 키워드여서 반가웠다. 나는 결혼을 떠올릴 때마다 이 단어가 떠오른다. 내가 보았던 <사랑의 온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결혼을 앞둔 커플이 나누던 대사다. ‘차가운 데서 자란 사람은 따뜻한 데서 자란 사람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따뜻한 데서 자란 사람이면 된다’는 류의 말들. 그래서 어쩐지 이 키워드는 내게는 좀 쓸쓸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태백에서 온 여자와 남해에서 온 남자로 아예 물리적 배경을 설정해 이 키워드를 사랑스럽게 풀어냈다. 추운 데서 태어나도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를 따뜻한 데서 태어난 남자가 녹여주는 관계성. 이 자체가 이 커플의 연애 형태 자체를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다. 둘은 함께니 추운 겨울을 함께 맞설 수 있고, 따뜻한 봄날을 기다릴 인내심이 생긴다. 직접 인용된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 가사처럼, 따뜻하고 달달한 유자차 같은 소설이다.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서로 티격태격하던 두 남녀가 몸이 바뀐다는 설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2010년대 초반 온갖 명대사와 밈을 휩쓸었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된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초반부에 ‘수상한 노인이 건네준 물약을 마시지도 않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시크릿 가든>은 산속에서 수사한 노인이 준 물약을 마시며 몸이 바뀌기 때문이다. 재치있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해에 관한 이야기다. 연애에서, 사랑에서 ‘이해’란 단어는 빠질 수 없는 단어이다. 아예 대놓고 이해라는 단어를 쓰며 중의적 의미를 그린 드라마 제목에 <사랑의 이해>가 있고, 커플이 가장 많이 헤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성격 차이’이다. 성격 차이, 결국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쌓이고 쌓여,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티 내줄 순 없었어?”

“뭘?”

“네가 내 예상보다 나를 덜 못마땅해했다는 거.”

기주가 어이없다는 듯 참 나, 하고 웃는다.

“너야말로 나한테 확신을 좀 주지 그랬어.”

“뭘?”

“일보다 나를 쪼끔은 더 좋아했다는 거.”

 

p81

 

 

연애를 하면 우리는 왜 오해가 더 쉽게 쌓일까? 이해할 것투성인데 그 와중에 오해의 틈은 깊어진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나의 인생 중 좋은 부분만 이야기해도 바쁜 시간에 구질구질한 부분을 말하고 싶지 않고, 함께 있을 때 행복해서 그런 것들이 잠시 잊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연애가 아니라도, 나의 일상 속 불쾌하고 부당한 일들은 남에게 털어놓기 쉽지 않다. 말해봤자 타인은 이걸 감내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러면서도 왜 감내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테기 때문이다.


 

“널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는데, 완전하게 사랑하긴 했었던 것 같아. 부정해봤자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그냥 인정해버리는 게 속 편할 것 같더라고.”

 

p86

 

 

그러나 완벽한 이해가 없어도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몸이 바뀌어버린 기주와 정민은 서로가 살았던 치열한 일상을 직접 경험해보며 비로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이 알게 된 것들도 분명 기주와 정민의 재회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들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서로 그렇게 알고 싶어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막상 그런 것들이 사랑의 수치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와 사랑이 정비례를 그리진 않으니까.


진짜 물리적으로 몸이 바뀌고 서로가 되어야만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주와 정민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그들이 그 경험을 하고도 바로 재회하지 못한 것은, 사실 그런 것들이 사랑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온전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 말을 이 소설은 다시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 아닐까.




전환 가능한 사랑 이야기


 

‘산뜻하고 무해한’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술술 읽히는 연애 소설집이었다. 특히 <블라인드, 데이트>를 읽으며 같은 소재라도 이런 글의 형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중심 맥락을 한두 가지의 통통 튀는 매력으로 글을 이끌어 가는 힘. 이것이 김수연 작가의 힘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신선했던 것은 작가의 문체였다. 우리는 보통 ‘~였다’의 과거형 문체를 많이 쓴다. 그렇게 써도 현재 시제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집의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와 <타로마녀 스텔라>는 완전히 현재 시제의 문체로 쓰였다. 사실 다른 소설도 진짜 현재 시제일 때는 그 시제의 문체를 따라간다. <어느 꿈의 겨울, 아로루아에게 생긴 일>가 과거형 문체로 쓰였나 보다 했는데, 시점이 과거여서 그랬던 것이었다. 시제의 시점을 명랑하게 따라가는 문체, 이것이 김수연 작가 특유의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에서 김수연 작가는 ‘언제나 내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는 남편 김광수에게 감사를.’이라고 표했다. 남편은 소설집을 읽으며 눈물을 두 번이나 흘렸다고. 그렇게나 따뜻한 사랑을 함께하고 있는 작가의 글이라는 게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그러나 한 스푼의 애틋함과 쓸쓸함을 담은, 가볍게 읽기 좋은 연애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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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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