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환대와 응원의 기억을 찾아서

에디터 강윤화님과의 대화
글 입력 2023.09.3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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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님은 내게 아트인사이트를 처음 소개해준 사람이다.

 

윤화님과의 만남은 올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근처에 가게 되면 꼭 방문하게 되는 나의 최애 카페, 서순라길에 위치한 “파이키”에서였다. 혼자 앉아있던 나에게 윤화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이런 뜻하지 않은 담소가 전혀 이상할 것 없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어떻게 대화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편안한 담소가 이루어졌다.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이었는데도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러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여쭤봤는데 윤화님은 파이키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글. 나도 언제나 궁극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평생 글을 써왔지만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 내가 대체 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묻어만 두고 있던 꿈이었다.

 

호기심에 좀 더 물었더니 에디터로 활동 중이라시며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을 소개해 주셨다. 문화예술에 대한 글을 쓰는 에디터. 한 달 소비의 절반 가까이 문화예술에 쏟아부을 정도로 내 인생에 숨구멍이 되어주는 문화예술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준다니. 이보다 더 나에게 맞춤형 활동이 있을까? 가슴이 두근댔다.

 

그날의 대화는 전혀 거창할 것이 없었지만 인생에서 길을 잃은 심정이었던 내게 어떤 용기를 주었고, 반년 후인 지금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보려는 도전에 알게 모르게 밑거름이 되었다.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보낸 은근하면서도 따뜻한 환대와 응원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꿈꾸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어 윤화님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었다. 반년 만에 두 번째 대화. 그때 미처 다 묻지 못했던 윤화님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직장에서의 윤화님, 글쓰는 윤화님, 그리고 그 외의 윤화님에 대해 물었다.

 

 

황연재(이하 H)가 묻고 강윤화(이하 K)가 답합니다.

 

 

 

파이키에서 커피 내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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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K: 카페 파이키에서 ‘키퍼’로 근무 중입니다. 파이키에서는 일하는 사람을 키퍼라고 칭하거든요. 그리고 박물관에서 영유아 대상으로 교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어요.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니 그렇게 보면 쓰리잡이네요.

 

H: 원래는 직장에 다니시다가 작년에 퇴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K: 작년 9월 이맘때 퇴사했어요. 퇴사 후, 파이키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9월 말부터 일했으니까 쉬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네요.

 

H: 파이키에서는 인연이 어떻게 닿아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K: 작년 6월 중순에 아는 언니와의 약속 장소로 처음 방문하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 좋아할 것 같은 카페가 있다는 거예요. 종로 삼가의 서순라길에 있는 카페라고 하면서요. 그전까지는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익선동만 갔었거든요.

 

카페를 방문하고 보니, 언니 말대로 너무 제 취향인 거예요. 다정다감한 사장님도 있고, 좋아하는 책도 많고 음악도 좋았어요. 또 손님들이나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차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밝은 에너지가 가득해서 흥미로웠죠. 이미 그 카페 단골이었던 언니 덕분에 사장님들과 안면을 쉽게 텄어요. 그리고 우연히 그 다음 주에 바로 방문을 했어요. 마침 제 생일이었는데, 얼굴 본 지 두 번밖에 안 된 손님인 제게 케이크를 챙겨주셨죠. 친구와 함께 방문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저 오늘 생일이에요, 하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 했는데 1시간 뒤에 작은 슈에다가 초를 꽂아서 생일 축하드린다고 막 그렇게 해주셨어요.

 

환대를 해주셔가지고 이 카페에 뼈를 묻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후로 자주 갔어요.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라서 회사 끝나고도 한두 시간 있으려고 그 카페를 가기도 하고, 또 주말에는 아트인사이트 글 쓰러 가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사장님들이랑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런저런 제 개인사도 들려 드리게 되었어요. 마침 제가 퇴사를 한다고 얘기만 하다가 진짜 하니까 잠깐 얼굴 좀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얘기를 나눴는데 우리가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같이 일해보면 재밌겠다고 제안을 주셔가지고 감사하게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H: 그럼 그때부터 일하셨으니까 이제…

 

K: 1년 되었네요 벌써.

 

H: 파이키에서 일하는 건 어땠나요? 단골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을 땐 또 어떤 게 달랐는지 궁금해요.

 

K: 우선 좋은 동료가 생겼어요. 살면서 보석같이 소중한 게 있다고 하면, 사람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대학 생활때, 팀플을 시킨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과 내가 잘 맞고 어떤 환경에서 내가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거죠.

 

이전 회사를 다닐 때는 그런 걸 많이 못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좋게 느꼈던 것 같아요. 모두가 다 으쌰으쌰하면서 따뜻한 비판이라고 할까요, 정말 도움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거든요. 어떻게 해야 시너지가 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만났기 때문에 저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됐어요. 그래서 너무 좋은 동료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환대를 잘 해주시는 분들이 운영하는 가게니까 혹여나 일을 그르칠까 봐요. 물론 이전에 많은 카페 경력이 있었지만 여기만큼 서비스에 진심인 공간을 많이 못 봤거든요. ‘내가 이분들만큼 응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관련된 책도 추천해 주신 거 다 읽어보고 그랬는데요, 일하면서 ‘이게 서비스직의 참맛이구나!’를 느꼈어요. 그래서 되려 사람한테 받았던 상처들도 많이 치유 되었고, 일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카페일은 너무나 단순반복의 연속이라 커피만 뽑으면 사실 재미가 없거든요. 파이키에서는 그렇지 않고, 계속 새로운 분들과 얘기도 하고 또 좋은 서비스와 맛있는 커피를 드리면서 그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도 보고 그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H: 원래 약간 낯선 사람한테 말 거는 거에 대해서는 별로 거부감이 없는 편인가요?

 

K: 오히려 저는 낯선 사람한테 강해요. 일회성 관계에 굉장히 강합니다. 계속 마주쳐야 되는 관계에서는 좀 뚝딱거리는데, 그게 아니면 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서요.

 

H: 오히려 그럼 천직일 수 있겠네요. 저도 파이키를 자주 가지 못했는데 갈 때마다 신기했어요. 분명 말을 많이 하시는 사장님들이 있는 그런 가게들이 있는데 그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나랑 결이 안 맞을 때도 있고 더 별로일 때도 많잖아요. 근데 손님이 뭘 원하는지 정말 잘 읽으시는 것 같고 거리감도 적당히 두면서 사람 불편하지 않게 다가가는 걸 다들 잘하시는 것 같아요.

 

K: 우리 공간에 온 그 시간만큼은 편안해야 된다는 게 저희가 생각하는 키포인트 같은 거예요.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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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도 듣고 싶어요.

 

K: 퇴사를 고민할 쯤이었어요. 입사한 지 1년도 안 됐던 시점이었는데,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고, 회사 내에서의 인간관계도 너무 힘들었고요. 막상 일을 해보니,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우울하고 막막한 기분이 가득했죠.

 

사실 예전부터 너무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번 시도를 했었는데 늘 수포로 돌아갔거든요. 제가 용두사미 기질이 있어서, 처음에는 잘 하다가 끝으로 가면 놔버리곤 하거든요. 마음 한 켠엔 ‘어차피 나는 이걸로 돈 벌어 먹고 살지도 못한 사람인데 뭐 하러 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답답한 거예요. 인생을 살면서 돌파구를 여러 개 만들어 놓으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힘들 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마음을 계속 다잡고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글이구나 라는 걸 작년 초에 깨달았어요. 

 

회사 다닐 때 일정이 좀 빡빡했거든요. 통근 시간이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렸죠. 5시 반에 일어나서, 일찍 퇴근해도 8시였으니까. 그런데도 글을 꼭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트인사이트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플랫폼이었는데, 에디터 공고가 뜰 때마다 난 안 될 거야라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도전을 안 했었어요. 무서웠던 거죠. 근데 극한의 상황에 딱 다다르게 되니까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떨어지면 뭐 어때 해보자라는 마음에, 마감 3일 전인가 이틀 전인가에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제가 글 쓰는 속도가 느려요. 근데 지원서 문항이 은근 많잖아요. (웃음) 퇴근 후, 6시간 만에 써서 마감 직전에 냈어요. 사실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께 연락이 왔죠! 

 

에디터 합격 소식이 선물같이 느껴졌어요. 그 즈음 개인적인 일도 다시 잘 풀리고, 돌파구 하나를 찾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또 새롭게 몰두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엄청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H: 그리고 에디터 활동 종료 이후로도 계속 지속해 오셨죠.

 

K: 에디터 활동이 끝날 때 쯤, 작년 6월 말에 대표님과 티타임을 가졌어요. 글을 기고하면서도 늘 ‘글을 못쓴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다른 분들의 글이 너무나 좋은 거예요. 너무 문장력도 좋으시고요. 저는 오타도 맨날 있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확인을 하고 올리시는지. (웃음)

 

“저는 제 글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말씀 드렸더니, 대표님께서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플랫폼이 풍성해지는 거다. 계속 쓰셨으면 좋겠다.”라고 북돋아 주셨어요. 이후 컬쳐리스트 지원서를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 결과 컬쳐리스트에서 전문필진까지 활동을 하게 되었네요.

 

H: 저도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글 어떻게 쓰는지 좀 궁금했거든요. 처음에 소재 잡는 거부터 쓰는 과정이나 퇴고 과정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K: 저는 일단은 뭔가를 보고 나서 ‘글을 써야겠다!’는 느낌이 오면 메모를 해놔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할 때는 서론, 본론, 결론의 제목들을 먼저 붙여요. 그 다음 끼워 맞춥니다. (웃음) 쓰고 싶은 문장을 또 몇 개 써놓고, 살을 붙이는 형식이죠.

 

H: 약간 스토리로 치면 중요한 하이라이트 장면 몇 개 잡아 놓고 연결하는 식의 글쓰기네요?

 

K: 사실 쓰면서 되게 많이 바뀌어요. 저는 한 번에 써놓고 퇴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쓰면서 퇴고를 해서 엄청 오래 걸리거든요. 하나의 글을 쓰는 데 대략 일주일에서 10일정도 걸려요. 구상 단계가 거의 일주일 가까이 걸리는 것 같고, 사실상 쓰는 시간은 하루 만에도 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H: 에디터 활동이 이제 그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적으로 돌파구가 되는 것도 있긴 하겠지만 또 그 외에 뭔가 얻은 게 있으신가요?

 

K: 글쓰기 스킬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교열 능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아요. 스스로 글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장력도 많이 늘었고 흐름을 보는 눈도 많이 길러진 것 같고요. 책을 읽을 때도, 편집자의 마음으로 캐치하면서 읽는 법이 생겼습니다.

 

또 일상에서 작은 거 하나라도 꼭 메모하려고 하는 작은 습관이 생겼어요. 아트인사이트가 문화 예술을 다루는 플랫폼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문화예술 관련해서도 꾸준하게 인사이트 얻으려고 해요. 사실 미술 음악에 조예가 그렇게 깊지 않은데, 관련된 콘텐츠들 요즘 많이 나오잖아요. 관련 SNS도 팔로우 해놓고서 꾸준히 보려고 합니다! 

 

 

 

일과 글, 그 외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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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윤화님은 요새 삶의 화두 같은 게 있나요? 삶의 고민이나 관심사 같은 거요.

 

K: 음, 너무 어렵네요… (한참 고민)

 

화를 건설적으로 다루는 방법이요. 불안과 화를 잘 다루는 방법. 원래 좀 자잘하게 짜증이 많긴 한데, 늘 타인한테 숨기고 살았었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유독한 거예요. 건설적인 방식으로 잘 표출하는 게 어른의 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하는 중입니다. 

 

뭔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거에 대해서는 발언도 하고요. 친구라든지 연인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가까운 사람들한테도 급발진하지 않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더 좋은 방식을 찾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해 보고 있는 중이에요.

 

H: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K: 유명한 건데, 아이 메시지라는 방법이 있어요. “내”가 느끼기에는 이런 것 같은데 어때? 뭐 이런 방식의 화법이죠, “나” 메시지.

 

그리고 화를 바로 내지 않는 거요. 화를 바로 내는 건 반응이고 한 번 생각하고 얘기하는 게 대응이래요. 제가 너무 동물적으로 반응하고 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불특정 다수를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그들은 별 의도 없이 얘기한 거에 괜히 혼자 확대 해석해서 상처를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한 번 생각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거지만, 모든 건 제 마음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저만 잘하면 됩니다. (웃음)

 

H: 혹시 꿈이나 목표 같은 게 있나요?

 

K: 그냥 꾸준히 글 쓰고 꾸준히 커피랑 함께 하는 거요. 예전에 저를 소개하는 말로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죽는 날까지 글과 커피를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했거든요.

 

H: 커피 진짜 좋아하시나봐요.

 

K: 너무 좋아요. 카페인 중독자여서요. 그리고 글을 읽는 것도 그렇지만 창작자로서 계속 선보이고 싶어요. 제 생각과 제 얘기들을 꾸준히 쓰고 싶고, 먼 미래에는 제 작업물도 하나 내보고 싶고요. 그거 이외에는 그냥 성숙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H: 좋은 어른이란 뭘까요?

 

K: 너무 감정적이지 않고요, 잔소리 말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유가 있으려면 돈도 있어야 되고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정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에요. (웃음)

 

근데 그러려면, 어쨌든 전문적이어야겠죠. 자기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빛을 봐야 경제적인 것도 따라오고 마음의 여유도 비로소 생기니까요. 돈 적당히 벌면서 좋아하는 거 하고, 계속 성장하는 그런 삶이면 아주 성숙하고 좋은 어른이지 않을까요?

 

H: 최근에 보셨던 문화예술 중에 추천해 주고 싶은 게 있나요?

 

K: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요. 흡입력이 엄청난 책이었어요. 제가 집에 쌓아 놓은 다른 책들도 많은데 일주일 만에 다 읽었어요. 계속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면서 읽었어요.

 

H: 어떤 점이 좋았나요?

 

K: 작가가 아픔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런 부분을 이성적으로 담담하지만 솔직하게 풀어낸 문장들이 제 마음을 두드렸던 것 같아요. 평소 생각하던 것을 문장으로 엮어준 느낌이라서 가까운 것을 넘어 닮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거든요.

 

너무 솔직한데, 그게 멋있는 느낌이랄까요? ‘나 이렇게 아프지만 나쁘지 않고 이렇게 나름대로 잘 살고 있어’ 이런 느낌. 그래서 이런 삶의 종류도 있구나 싶었고 배우는 지점들이 많았어요. 문체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그래서 최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 중에 뽑으라 하면 이 책을 고르겠습니다.

 

*

 

첫 만남과 아트인사이트에 올리신 글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기만 했던 윤화님과는 또 다른 새로운 윤화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준비해온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오프더레코드로 가벼운 담소를 나눴다. 때마침 카페를 방문한 깜찍한 길고양이 손님을 함께 한참 구경하기도 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과의 대화는 나의 삶에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었다. 두 달 전 퇴사한 나는 퇴사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윤화님의 쓰리잡 인생 이야기에 또 용기를 얻었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돈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깊어지는 점도 비슷했다. 커피에 죽고 못사는 것,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것, 언젠가 내 작업물을 세상에 내보이는 꿈을 가진 것도 같았다. 반면 좋아하는 책 장르나 삶의 고민은 내가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라 흥미로웠다. 비슷한 듯 다른 우리. 왠지 퇴사 후 앞으로의 내 삶과 그녀의 삶이 포개져 보이기도 한다.

 

아트인사이트와 파이키의 인연으로 느슨하게 이어진 우리는 서로의 삶에 무언의 응원을 보내며 헤어졌다. 언제고 파이키를 방문하면 그곳에 윤화님, 혹은 윤화님과 비슷한 결의 사람들의 환대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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