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런닝머신에 대한 새로운 정의 [운동]

글 입력 2023.10.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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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던 날이 있었다. 컨디션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 향한 헬스장에는, 퇴근하고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헬스장에는 다양한 기구들이 가득하고 그 틈까지도 메우는 듯했다. 특히, 러닝머신 구역에는, 기계에 올라 돌아가는 발판과 함께 바삐 움직이는 발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날 헬스장으로 향한 일은 가만히 쉬는 대신 조금이라도 활기차게 움직여야 나를 억누르는 부정적인 기운을 떨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걷고 뛰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속도를 올렸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기계 앞 모니터를 켜보려고 했지만, 고장이 난 것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참의 시도 끝에 모니터 켜기를 포기하고 까만 화면만 응시했다.

 

걷기 시작했다. 까만 화면 속으로 내가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보였다. 내가 나를 보며 끝없이 걷고 또 걷는다. 분명 가까워질 때가 됐는데, 라며 다소 공상적인 생각에 잠길 때쯤 그날 일과를 떠올렸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업무, 새로운 장소. 모든 게 낯선 하루는 닿기만 해도 쓰라린 얼음처럼 꽁꽁 얼어있었다. 녹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 열리지 않는 견고함에 여러 번 부딪혀 절망한 기억이 났다. 그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부딪히는 게 어쩌면 자신의 목표이자 허들이겠다.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힐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달리기에는 ‘사점’이 있다고. dead point라고 불리는 사점은,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이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 저마다 느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테다.

 

그 사점을 넘지 못하면 모니터로 비친 내 모습이 뿌연한 안개처럼 흩어 없어질까 우스워질 때도 있다. 그땐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면 된다. 노려보며 달리기만 하면 된다. 실루엣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집중이 극에 달하자, 주변은 보이지 않고 오직 나와 내가 달리고 있다.

 

치솟았던 속도를 낮추고 조금 걷다가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분명 같이 뛰고 있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점’을 측정하고 도달하는, 아니 그 개념을 넘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싸움을 하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내가 목적지로 향하는 그 순간을 담고 있다.

 

러닝머신에서 내려도 여전히 발은 발판 위를 걷고 뛰는 듯 감각이 아린 것처럼, 이런 생각이 운동을 마친 후에도 머리에 남아 맴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디선가 무언가와 여전히 싸우고 승리하기 위해 달리는 모든 이를 존경한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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