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3

글 입력 2023.09.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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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사진 혹은 영상 기록물이 주는 즐거움. 쇼츠와 릴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 세상에도 그 즐거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 욕망은 관찰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 사소한 일상을 세심히 들여다돈 관찰자들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우리가 쉽게 스쳐지나갈 법한 크고 작은 삶의 모습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흘러만 가는 이 시대에서 그 가치는 더 크다. 무심코 지나간 것들을 다시 한번 돌이키고 일상을 반추할 기회를 준다. 물론 그 기회가 너무 빠르고 단순히 공감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여하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소통 방식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짚어보는 애니메이션의 세계. 애니메이션은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동한다. 최근 유행하는 노벨 코믹스 계열의 일본발 애니메이션이나 전통 히어로물 혹은 블랙유머 콘텐츠를 견인해온 서양 애니메이션도 매력적이지만, 더 넓고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자. 사진이나 영상과 같이 우리의 삶을 담아내기 더없이 좋은 매개체다. 창작자의 상상력이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형태로 발산될 수 있고, 그 표현 방식 역시 무궁무진.

 

애니메이션에 대한 장르적 편견이 존재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겠으나 이제 메이저니 마이너니 하는 구분이 크게 의미 없는, 취향 대 통합의 시대에서 인디 애니메이션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다양성 존중에 대한 관심과 이전보다 발전한 의식을 바탕으로 인디 애니메이션은 더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안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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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올해 19회를 맞이했다. 독립 애니메이터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응원하고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무척 뜻깊은 페스티벌이다.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더 의미 있다. 이전에 2회 정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경험이 있어 매년 오픈 소식을 기다리게 되는 행사 중 하나.

 

이번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3은 총 323편의 애니메이션이 접수되었으며, 이중 교육과정 내에서 제작하지 않은 일반 국내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보행은 23편, 학생 작품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새벽비행은 23편, 아시아 지역 경쟁부문인 아시아로는 34편의 본선 진출작이 선정되었다. 본선 진출작은 연남 CGV를 통해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었으며 지난 9월14일부터 19일까지 상영했다.


인디애니페스트의 소식을 듣고는 이번에도 놓치지 않고 참여했다. 흥미로웠던 부문인 독립보행1과 아시아로1를 관람했으며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주제 의식과 다양한 표현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우연인지 해당 부문의 주제는 크게 극과 극으로 나뉘었는데, 한 가지는 창작자 본인의 내밀하고도 사소한 개인사를 서정적인 어법으로 다룬 것이고(특히 아이, 유년), 다른 한 가지는 고독사나 인권 문제 등 사회적인 이슈를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것이다.

 

관람 시작과 함께 전달받는 투표 용지가 참 야속하게 느껴졌다. 모두 대체 불가능한 이야기였는데 어떻게 한 가지를 골라야 하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기억에 강렬히 새겨진 애니메이션이 있었고 그 중 몇 가지에 대한 기록을 짧게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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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보행1 / 유령이 떠난 자리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특히나 이렇게 이름 붙여진 죽음의 방식이 있다. 고독사, 말 그대로 홀로 남겨진 죽음. 그러나 고독사는 살아있을 때 판별될 수 없다. 죽음 이후에 판별된다. 죽음 이후의 고독.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발견하지 못하는 형태일 때. 독립 애니메이션 '유령이 떠난 자리'는 고독사 후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한 시공간의 기록을 다룬다. 고독사 이후 방치되어 있던 1년 간의 시간을 타임랩스 영상으로 재생했으며, 공간 곳곳을 프레임에 담아내며 거대한 삶 혹은 거대한 외로움과 투쟁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투영한다.

 

생이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생의 흔적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그러나 더 가혹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가 무너졌음에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 구더기가 들끓고 벽에 거미줄이 껴가는 방 안의 음습한 모습과 다르게, 아파트 외부의 풍경은 꽃이 피고 지며 끊임없이 계절이 흐르는 모습이 대비된다. 애니메이션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마침내 시신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후 영상이 막을 내리는데 문득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에 생각이 머문다. 유령이 떠난 자리. 어쩌면 그 사람은 살아있을 때조차 이미 유령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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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디애니페스트



독립보행1 /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독립보행1 부문을 관람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2023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결혼 10년 차 부부인 최정환과 강유진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중 유진은 오랜 결혼 생활을 이어왔으나 계속된 시험관 아기 실패로 인해 마음이 지친 상태다. 그중 천재 의학박사 김삼신은 남성 임신 기술을 연구해 극심한 인구 감소로 고통받는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자 하는데. 마침 유진이 김삼신의 연구 성과를 보고는 정환과 함께 남성 임신을 시작하기로 협의한다. 정환은 패기롭게 그 제안을 승낙했지만 임신까지의 여정은 과연 순탄할런지.


굉장히 도발적인 제목과 주제로 인해 호기심이 끌었는데, 관람을 마친 이후의 감상은 오히려 '굉장히 마일드한 이야기, 적당히 따듯해서 기분 좋은 온도와 시원시원하니 유쾌한 뉘앙스, 누구나 공감 가능한 전개 방식'. 삼신 할매 모티브,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 등 전통적인 한국 사회의 이슈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데 이보다 더 위트 있을 수가 없다.

 

꼬집기에 탁월하다. 적절한 강도로. 열림 교회 닫힘이라고, 고도로 발달한 가부장제는 페미니즘과 구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서는 참지 못한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발칙한 상상력이나 아주 진득한 현실성이 기반을 이루어 공감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디선가 볼 수 있는 경로가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말을 아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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