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 짙고 빠르게 [영화]

글 입력 2023.09.2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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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라는 봉준호 감독의 호평, 정유미-이선균이라는 믿고 보는 주연 배우들의 조합까지. <잠>은 그 시작부터 꽤나 많은 영화 팬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국내 극장가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했다.

 

개봉 이후에는 관객들 사이에서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지만 종합적인 여론을 고려해 볼 때, 적어도 한 번쯤은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중론처럼 자리잡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영화 관람료 인상 이후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 한국 영화의 퀄리티 전반을 향한 대중들의 비판적 성토를 피해갔다는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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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잠>은 개봉 이전부터 쏟아지던 수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법한 구성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인 듯 보인다.

 

잠, 층간소음, 육아, 반려견, 무속 신앙 등 적재적소에 배치된 일상적 차원의 소재들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보다 직감적인 수준의 공포를 선사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범주에서 크게 궤를 달리하지 않는 작품의 배경과 시놉시스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가 주는 불안감을 쉬이 떨쳐버릴 수 없도록 만들며 착실히 작품의 여운을 더한다.

 

직관적인 형태의 인물 설정을 통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쉬운 이해를 도모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장점이다.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배우, 무속 신앙에 심취해 있는 기성세대, 살가우면서도 껄끄러운 듯 애매모호한 관계의 아파트 이웃주민 등 <잠> 속 등장인물들은 그 등장부터 다양한 인간 군상의 전형적 면모를 드러내며 하나의 캐릭터로서 관객들의 뇌리에 보다 강렬한 차원의 인상을 부여한다.

 

이는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배경이나 관계성과 관련된 복잡한 사유 과정에서 벗어나 <잠>의 이야기 속으로 순식간에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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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길지 않은 러닝타임과 컴팩트한 구성을 통해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적당한 전략적 편의에 기대고 있는 일부 전개와 연출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여겨진다.

 

특히 극의 후반부, 아무도 모르게 병원을 탈출하여, 온 집안을 부적으로 도배하고, 아랫집 민정과 앤드류를 납치한 것은 물론, 현수를 설득하기 위한 발표 자료까지 손수 제작한 것으로 유추되는 수진의 분주한 행보는 인물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를 넘어 다소 작위적인 형태의 편의주의 전개처럼 느껴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관객의 상상력에 모든 것을 맡기는 모호한 형식의 연출을 의도한 것치고 결말에 대한 해석의 편의가 한 쪽으로 다소 기울어져 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기에 능한 배우라는 현수의 직업적 배경, 현수의 수면장애가 완치되었다는 전문가의 의학적 소견,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수진의 전력 등 귀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현수가 수진을 위해 혼신의 연기를 펼쳤을 뿐이라는 결말부 해석에 대한 근거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반면,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만큼 뒤틀린 수준으로 묘사되는 수진의 집착적 광기는 현수에게 실제로 빙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결말부 해석에 쉬이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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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 저러나 <잠>은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장편 데뷔작이다. 수많은 기대작들이 좀처럼 흥행 부진의 늪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최근 영화 시장의 동향을 보았을 때, <잠>이 긍정적 평가와 함께 호성적을 거두는 데 성공한 것은 단순히 개봉 시기 경쟁 작품 중 이렇다 할 화제작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몇몇 아쉬운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은 서스펜스에 충실한 단출한 구성과 번뜩이는 전개 방식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뇌리에 보다 짙은 인상과 여운을 남겼다. 유재선 감독의 다음 작품을 우리가 충분히 기대해 볼 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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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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