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관음의 욕구 [영화]

글 입력 2023.09.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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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영화에 적어도 필름이 한 번쯤 나오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흔히 영화 제목은 스토리의 내적 요소를 가져와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물의 감정,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대명사, 사건 등이 있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라는 제목은 제3자의 평가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간혹 친구끼리 영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무슨 영화야?”라고 묻고 “사랑을 다루는 영환데, 러닝타임이 짧아서 좋아”라는 식의 대화를 하지 않는가? 이러한 점에서 1차원적이지만 동시에 기억에 쉽게 각인되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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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이 영화는 사랑을 주제로 하며 87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는 장편 영화다. 주인공 도메크는 마그다를 사랑한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도메크는 마그다가 보고 싶어 그녀의 집에 가짜 송금표를 넣고 우체국으로 찾아오게 만든다. 나아가 도메크는 망원경으로 몰래 마그다의 집을 훔쳐보기까지 한다.

 

아파트라는 독특한 건축구조의 특성상 도메크는 맞은편 건물에 사는 그녀의 집을 망원경을 통해 쉽게 관찰한다. 그는 카메라 렌즈를 다루듯 망원경을 조이며 마그다를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녀에게 다가갈 순 없지만 최대한 가까이서 면밀히 관찰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도메크는 마그다가 우유를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 아침 일찍 우유 배달부로 일하며 그녀를 가까이서 보고자 노력한다.

 

변함없이 가짜 송금표를 넣어 마그다를 우체국에 찾아오게 만든 어느 날, 도메크는 그녀가 집에서 혼자 울고 있는 걸 봤다고 말하며 몰래 관찰한 사실을 밝힌다. 왜 훔쳐보는 건지 묻는 마그다의 질문에 도메크는 “사랑하니까요”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는 순수한 제안을 한다. 관음을 하는 그의 행동과는 다르게 말과 마음만은 진실하고 순수하다. 그는 사랑을 믿는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관찰을 당했던 마그다는 많은 남자를 만나고 상처를 받은 탓인지 사랑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마그다는 도메크에게 사랑의 무의미함을 알려주고 상처받은 도메크는 자신의 손을 칼로 긋기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메크가 사랑을 부정당하고 상처를 받자 마그다는 뒤늦게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사랑은 대게 누군가에 의해 깨닫는 감정이다. 사랑을 믿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서, 사랑을 믿지 않던 사람은 사랑을 믿는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도메크가 마그다를 몰래 관찰한 행위는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다. 하지만 순수한 그가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은 관찰만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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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범죄에 가까운 도메크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관음을 한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이성의 대화를 엿듣거나 반복적으로 쳐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관심 있는 사람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염탐’하며 관음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구나 관음의 욕구가 있다. 불법이 아닌 선에서 이러한 관음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본능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도메크가 사랑을 부정당한 뒤, 영화는 인물의 입장을 도메크에서 마그다로 전이시킨다. 그녀는 도메크가 그랬던 거처럼 그의 방을 관찰하고 또 관찰한다. 그리고 도메크의 방에 찾아간 그녀는 도메크가 사용했던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방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다. 상대방의 눈, 즉 도메크의 입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그의 마음과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을 명분으로 여성을 몰래 관찰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다만 남성의 일방적인 관음만이 아니라 여성 또한 남성을 몰래 바라보며 관음 하는 것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사랑을 할 때 나타나는 관음의 욕구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망원경을 서서히 확대하며 상대방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것. 사랑은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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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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