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과 예술이 만날 때 -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글 입력 2023.09.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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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화 <월플라워>을 보고 영화에 삽입된 ‘Come on Eileen’와 ‘Heroes’라는 곡에 빠졌다. 이 곡들을 듣다가 비슷한 시기인 70~80년대에 나온 밴드 음악을 즐겨 듣기도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은 오히려 영화 내용은 흐릿하고 음악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을 정도다. 이런 일은 흔하다. 소설을 읽다가 거기에 나오는 그림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다가 그 아티스트가 큰 영향을 받았다던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한 가지 예술작품이 다른 예술작품으로 나를 이끌 때마다, 예술은 모두 이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시대와 국가, 장르, 매체를 초월하는 연결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예술에서 다른 예술을 연상한다. 한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다른 예술에 영향을 받은 존재이다. 이 세상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예술이란 없다고 단언할 수도 있다. 예술이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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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술과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다. 클래식 전공자인 이수민 작가는 어느 날 그림으로도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꾸준히 관련된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책도 저자만의 독특한 관점이 깃든 책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음악가와 화가를 소개하고 이들 사이의 접점을 짚는다. 더불어, 음악을 듣고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그린 그림도 소개한다. 


이 책을 읽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책의 의도에 따라 음악과 그림이 만나는 지점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여러 예술가의 이야기가 뚜렷한 기준이나 순서 없이 나열되는 가운데, 저자는 생각지 못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예술가들 사이의 접점을 찾아낸다. 그 비밀은 완성된 그림만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까지도 그림의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림은 예술가가 완성한 ‘결과물’을 감상하는 예술이고, 음악은 연주되는 ‘과정’을 감상하는 예술이다. 저자는 이러한 틀을 깨고 그림에서도 과정을 살피며 '음악의 순간'을 읽어낸다. 여러 꼭지가 그런 방식으로 음악과 그림 사이 접점을 소개하는 가운데, 이건용과 바츨라프 니진스키 그리고 박서보와 에릭 사티를 다룬 두 꼭지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1세대 전위예술가’라 불리는 이건용은 기존의 미술도구 대신 자신의 몸을 활용해 그림을 그린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평면인 캔버스와 만나는 지점에 집중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의 작품에서 100여 년 전 러시아의 무용수이자 안무가 바츨라프 니진스키를 떠올린다. 

 

여성 무용수 중심이던 러시아 발레계에서 남성 신체의 표현 가능성을 보여줬던 니진스키는 기존의 발레와는 거리가 먼 파격적인 안무를 발표하며 현대무용에 큰 영향을 준다. 두 예술가는 활동하는 분야는 다를지라도 몸을 새롭게 인식하고 몸 그 자체를 예술의 중요한 요소로 봤다는 접점이 있다.


베토벤의 곡 하나에서 여러 예술작품이 파생된 경우도 있다. 베토벤이 동시대에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한 ‘크로이처 소나타’ 이야기다. 정작 크로이처는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후대에 톨스토이는 이 곡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소설을 썼고, 르네 프리네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에 이른다. 체코의 레오시 야나체크도 이 소설을 읽고 음악을 작곡했다고 하니, 한 곡이 약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설과 그림을 거쳐 다시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이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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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던 시대도, 나라도 다른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본 다음에는 이수민 작가의 그림도 감상해보자. 책에는 저자가 듣고 느낀 음악을 모티프로 직접 그린 그림이 다수 실려 있다. 음악이라는 언어에 능숙한 사람이 그림이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선택했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이 대부분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활동하긴 했지만, 그래도 2023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독자와는 여러 가지로 격차가 있다. 음악을 직관적으로 담아낸 이수민 작가의 그림들은 예술가와 독자 사이 간격을 좁혀주는 역할도 한다. 현대 한국인이 그린 그림은 책에서 소개하는 음악과 그림에 비해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마지막 방법은 책 곳곳에 있는 큐알코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생소한 곡을 만났을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피아졸라의 다른 곡에 비해 덜 유명하고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도 많지 않은데, 큐알코드를 이용하자 바로 외국 영상을 감상할 수 있어 편리하다. 뒤늦게 명성을 얻은 체코의 음악가 레오시 야나체크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가였기에 큐알코드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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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또 그림으로 그린 음악을 보며, 역시 예술은 소수의 예술가와 예술작품으로 이루어진 독무대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생태계에 가깝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오늘도 수많은 예술을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들의 존재다. 


이들 모두가 예술작품을 보고 또 다른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감상을 말하거나 글로 쓰고, 사진으로 찍어 간직할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감상 후 무언가를 세상에 남기고자 할 때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 유기체에 참여해 그 일부가 된다. 


나 역시 이 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이 책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예술이라는 유기체에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기여하고 있다니, 즐거운 일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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