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시절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 뮤지컬 ‘시스터즈’

글 입력 2023.09.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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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의 계보를 찾아서


 

[2023 시스터즈]시스터즈(홍서영,신의정,이서영,유연,이예은,하유진).jpeg

 


90년대생인 내 학창 시절에는 늘 여러 걸그룹이 있었다. 전 국민이 다 알던 그들의 히트곡을 들으면 저절로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걸그룹은 큰 인기를 누리면서도 묘하게 폄하되곤 했다. 지금이야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지고 춤과 퍼포먼스도 음악의 일부라는 인식이 생겨났지만,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는 달랐다. ‘음악성’을 버리고 외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쓰며 인기를 좇는다는 비난이 걸그룹을 따라다녔으니까. ‘록 음악의 계보’, ‘포크송의 계보’를 살피는 건 익숙하지만, ‘걸그룹의 계보’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걸그룹을 좋아해본 적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 적 있다면 그 음악성이나 진정성에 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쉽게 무대에 오르는 걸그룹은 없다. 모든 걸그룹은 무대 앞에서 진지하다. 내 기억 속 각각의 걸그룹 멤버들은 언제나 자신의 음악과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뮤지컬 <시스터즈>는 지금껏 좀처럼 진지하게 이야기되지 않았던 ‘걸그룹’에 주목한다. 오늘날 케이팝의 주역인 이들의 시작 지점에 누가 있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거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걸그룹들의 찬란했던 무대가 있다. 지금은 걸그룹이라 하면 자연스레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나라 걸그룹의 역사는 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걸그룹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도 않던 시절에도 무대에 오르는 여성 그룹은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같이 혼란했던 현대사 속에도 걸그룹의 무대는 늘 존재해 왔다. 케이팝이 거대한 산업이 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도 없고 코디나 매니저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던 시대였다. 걸그룹은 오로지 열정과 재능으로 무대에 올랐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이들의 무대가 2023년 다시 한번 새롭게 관객을 만난다.

 

 

 

다시 한번 관객을 만나는 레전드 무대



[2023 시스터즈]저고리시스터(정유지,정연,선민,김려원,홍서영).jpeg

 


공연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처음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사회자가 등장해 팀 소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저고리시스터의 이난영, 김시스터즈의 김숙자, 이시스터즈의 김명자, 코리안키튼즈의 윤복희, 바니걸스의 고재숙, 희자매의 인순이. 이들의 <시스터즈>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떻게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고 어떻게 지금까지 회자되는 팀으로 성장했을까. 각 팀의 대표곡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옛날 활동했던 걸그룹과 이들의 음악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도 <시스터즈>를 보는 재미이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세하게 재현한 그때 그 무대들이다. 과거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현재로 가져온 것은 물론이고, 옛 미8군 무대처럼 빅밴드를 등장시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다.

 

다른 무대 영상은 원본을 본 적이 없어서 비교하기가 어려웠지만, 윤복희의 ‘What I’d Say’만은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시스터즈>의 ‘What I’d Say’ 무대는 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무대에 임하는 태도와 무대의 분위기까지 가져와 윤복희라는 사람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남아 있는 영상이 없고 기록도 충분하지 않아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구현했을 저고리시스터의 ‘처녀합창’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일본 측 눈치를 봐서 ‘아리랑’을 부르지 말라는 공연 관계자의 말에 반발하는 이난영. 결국 ‘처녀합창’에 ‘아리랑’을 섞어서 부르는 이난영. 독립투사는 아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사람인 이상 분명 이러한 갈등을 여러 차례 겪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 한번 펼쳐지는 레전드의 무대는 이들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에게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혀 있던 그리운 이름을 꺼내보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나처럼 그때 곡들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라면 편견을 깨고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시간이 된다. 옛 음악이라면 트로트나 포크송만 떠올리는 나에게, <시스터즈>의 무대들은 그보다 다양한 음악이 존재했음을, 오늘날 우리가 듣는 음악이 과거에도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음악은 흐른다



[2023 시스터즈]김시스터즈(김려원,정연,홍서영).jpeg

 

 

화려한 무대만큼이나 다양한 빛을 내뿜는 것은 무대 밖 이들의 인생사다. 모든 개인이 그러하듯이 이들도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살았다. 전쟁 후 생겨난 미8군 무대에서 많은 가수가 꿈을 키웠고, 군사독재시대에는 수많은 억압 속에서 음반을 내고 무대에 섰다. 현대사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슬럼프를 겪거나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대에 있는 한, 이들은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더불어, <시스터즈>는 과거의 무대를 재현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현재와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공연 중 윤복희의 육성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그러한 지향점이 잘 드러난다. 어린 날, 배가 고파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윤복희, 자신이 서는 무대를 완벽하게 프로듀싱하던 윤복희를 지나 수십 년 후 여전히 자신은 무대 위에 있다고 말하는 윤복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어떤 픽션보다도 큰 울림을 준다.


약 두 시간 동안 우리의 역사 속 여섯 팀, 여섯 명의 이야기와 곡을 듣고 나면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섯 명이 자기 자신을 소개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시작할 때는 소개를 들으며 각 팀의 이름과 주요 인물을 연결하기에 바빴다면, 끝날 때는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내게도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공연장에서 들었던 윤복희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공연에서 다 소개되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활동했던 수많은 걸그룹을 생각했다. <시스터즈>를 보기 전까지는 그때 그렇게 많은 걸그룹이 있는 줄도 몰랐다. 각자의 꿈과 열정을 품고 무대에 올랐을 이들은 지금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스터즈>는 공연에서 직접 소개한 여섯 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걸그룹의 시작 지점에 있었던 이들 모두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극장을 나서며 그들이 이 공연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이들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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