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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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리씨는 앨리스섬에서 '아일랜드'라는 작은 섬에서 서점을 운영한다. 서점 주인답게 책을 무척 좋아한다. 단, 다음과 같은 종류의 책들은 빼고.
["싫어하는 걸 말하면 어떨까요? 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종말물, 죽은 사람이 화자거나 마술적 리얼리즘을 싫어합니다. 딴에는 기발하답시고 쓴 실험적 기법, 이것저것 번잡하게 사용한 서체, 없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삽화 등 괜히 요란 떠는 짓에는 근본적으로 끌리지 않습디다. (…) 문학적 탐정소설이나 문학적 판타지니 하는 장르 잡탕도 싫습니다. (…) 어린이책, 특히 고아가 나오는 건 질색이고, 사백 쪽이 넘거나 백오십 쪽이 안 되는 책도 잃단 싫어요. (…)"]
서점 소개에 ‘까다로운’이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서점의 주인이라고 하면 따뜻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을 상상하겠지만 피크리씨는 책 취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런 단어들과는 거리가 멀다.
특별할 것 없이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중 피크리씨는 에드거 앨런 포의 희귀 시집 판본 『태멀레인』을 도둑맞게 된다.
『태멀레인』을 훔쳐 간 도둑을 잡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판에 피크리씨 책방에 누군가 짧은 쪽지와 함께 '마야'라는 두 살 남짓한 아이를 두고 간다. 분명 시니컬한 피크리씨였다. 게다가 엄청난 값어치를 가진 책도 도둑맞았다. 피크리씨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보다 소중한 것이 나타나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에이제이는 분홍색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마야를 보고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뭔가 참을 수 없는 기운이 속에서 간지럽게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 미치겠군. 처음엔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했다가, 이내 이건 사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 제일 짜증 나는 것은, 사람이 뭔가 하나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결국 전부 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다. 제일 짜증나는 것은, 심지어 엘모까지 좋아졌다는 것이다.]
피크리씨는 마야를 입양하고, 냉동 빈달루 대신에 따뜻한 분유를 타고, 그림책에 관심을 둔 적 없지만 그림책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마야로 인해 피크리씨의 세계는 자꾸만 넓어진다.
부녀의 뭉근한 사랑을 이야기해서 좋고, 그 사랑이 지나치게 맹목적이지 않아서 더 좋다. 피크리씨와 마야의 이야기 외에도 작은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모양의 사랑을 주고 받는데 이 이야기들도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작은 섬에 사랑이 번지는 동안 다시 떠올려야 할 것이 있다. 『태멀레인』은 대체 누가 가져간 것일까?
[오은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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