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쓸모 없는 꿈의 쓸모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9.0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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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부터 내 장래희망은 미세한 변동을 겪었지만, 교집합은 뚜렷했다. 영화감독, 방송 작가, 프리랜서 영화 기자 등 어떤 방면으로든 나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길 바랐고, 대부분 예술이나 미디어 분야의 직종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와 같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취미나 적성을 살려 장래 희망을 정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더러는 더 무모한 직업, 이를테면 대통령, 아이돌, 화가 등을 별 거리낌 없이 적어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 적어 온 장래희망을 공유하며 그에 대한 코멘트를 주고받았다. 그중에는 단어 그대로 장래 ‘희망’일 뿐인데, 칭찬에 힘입어 의기양양해진 친구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러한 어설픈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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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등학교 입학을 전후해 보다 현실적인 고민들을 맞닥뜨리며 아이들의 장래희망란은 공백으로 남거나 안정성이나 보수,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의 학업 성취도를 고려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중 평소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편이던 내 단짝 한 명은 ‘공무원’으로 란을 채웠다. 사실 모든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공무원, 대기업 사원 등으로 좁혀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여전히 나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아실현을 이루길 고대하는 아이들도 제법 됐다. 그 비율은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그러한 변화는 고3 무렵이 되어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우리 학교는 인문계였기 때문에 대다수의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했고, 학기 초부터 희망 대학과 학과를 상담하는 시간이 별도로 마련됐다. 당시 나는 방송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6번의 수시 접수 기회를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하는 데 다 할애했다. 친구들은 내 열정과 모험심이 멋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중 한 명은 취업을 감안해 고2 때 이과로 전향했고, 나머지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지원했다. 나는 순간 불안했다. 그때로서는 유년 시절의 천진한 장래희망을 그대로 고수하는 건 정말 나뿐인 것 같았다.


이후 나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국문학도가 되었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막 학년 막 학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날부로 나는 필연적으로 고용 불안을 감수해야만 했다. 문과생이 된 이상 취업 시장에서 환대받지 못한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결국 하고자 하는 일도 박봉에, 워라밸도 극강인 프리랜서 방송 작가 / 영화 기자 라는 것은 때로는 스스로를 번뇌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삶의 동력이 됐다.


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애정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업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은 단순 취향의 문제에서 나아가 보다 더 치열한 노력을 요구한다. 국문학도든, 프리랜서 방송 작가 / 영화 기자든 이는 등 떠밀려 정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아니다. 보수가 시원찮고,  스스로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고, 항시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 선택은 그 어떤 선택보다 솔직하고 정직하다. 그리고 그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진지하게 성찰하고 문답해 본 적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실에 타협한 혹은 애초에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양보할 수 없는 타인들의 선택을 폄하하거나 내 결정의 우월성을 열변하는 글은 아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는 직업을 정하는 데에도 ‘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다분하고, 그로 인해 꿈이 쉽게 포기되거나 빼앗기는 경우가 숱하다. 나는 그저 ‘(사회로부터 재단된) 쓸모 없는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이 수없이 마주해야만 하는 고민, 예컨대 내 선택이 마이너한 것 같고, 철없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다는 회한과 자책을 느끼더라도 이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부치고 사실은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걸을 수 있는 길이라 굳은 믿음과 프라이드를 품었으면 한다.


어차피 뭐든 업으로 삼게 되면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고, 매너리즘도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통의 연속이고 나중에는 무미건조해질 수밖에 없는 사랑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야 더 행복하듯이, 일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인생은 한 번이라는 말에 기대 조금은 더 낭만적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무언가와 사랑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며 꾸준히 함께 동행하는 나, 그리고 당신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는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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