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중한 것이 사라진다면? [영화]

어떤 마음일까.
글 입력 2023.09.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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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이 사라진다면 어떤 마음일까.

 

무언가가 사라지면, 우리는 그것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재로 인한 그 존재감이 더 드러나기도 한다. 그 무언가 자체가 소중하고 대체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 무언가로 인한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시계가 사라지면 시계와 관련된 나의 모든 추억과 기억들이 사라지고, 시계의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계를 망각한다. 이는 가지고 있던 내 오래된 시계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밟혀 가루가 되어 버린 것과는 다르다. 우린 가루가 되어버린 시계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에 슬퍼하기도 하지만, 망각하면, 그것에 대한 인지 자체가 되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다.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2016)>은 그러한 사라짐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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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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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우편배달부인 주인공은, 어느 날 자전거에서 넘어져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너무 큰 충격으로 오히려 담담해진 주인공 앞에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의문의 존재는 자신을 악마라 칭하며, 주인공이 내일 죽는다고 이야기하며 거래를 제안한다. “세상에서 한 가지를 없애면 하루를 더 살 수 있어.” 

 

처음으로 사라지는 것은 전화이다. ‘나’는 전화가 없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첫사랑에게 연락을 해서 만난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전화를 없애면서 그녀와의 추억도 사라진다. 두 번째 날엔 ‘영화’가 사라져서 주인공과 친구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진다. 세 번째 날에는 ‘시계’가 사라지고, 그다음 날에 의문의 존재는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한다. 

 

고양이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어릴 적 상자에 담겨 있던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상자에 적힌 이름을 따라 ‘양상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양상추’는 나와 어머니를 잘 따라다녔다. 그러나 어머니가 병에 걸리셨을 때 고양이도 아파서 죽는다. 그 이후,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아버지가 ‘양상추’를 닮은 고양이를 양배추 상자에 담아서 어머니 몰래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이 고양이는 ‘양배추’가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양배추’는 주인공에게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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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어머니와 ‘양배추’와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던 때를 떠올리며, 의문의 존재에게 고맙다고 한다. 당신 덕분에 세상이 소중한 것으로 가득하단 걸 알게 되었으니, 고양이는 없애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죽는 건 무섭지만 난 내 남은 수명을 알고 있고, 그걸 받아들이며 죽을 수 있어요. 그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장면에 현재의 ‘나’는 시계점으로 들어가는데, 영화는 과거로 흘러가서 어머니가 갓난아기인 ‘나’를 안고 들어온다. 아버지가, 갓난아기인 주인공에게 말하며 끝이 난다. “고맙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시한부 판정을 받아 죽음으로 향하는 주인공도, 누군가가 이를 너무 소중히 여겨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로, 죽음이 예고된다.

 

탄생은 소멸의 시작이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죽음으로 향하는 인간의 탄생을 마지막에 보여주며, 우리의 삶 속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한다. 소중하게 태어난 누군가도 언젠간 죽음으로 향하고, 죽어가는 존재도 소중하게 태어났었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다.

 

 

 

물리적 죽음과 존재적 죽음



한 개인의 소멸은,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언정,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던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영향이 있다. 죽음의 슬픔은 그래서 더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다. 

 

세상에서 나와 함께한 사람들과의 관계와 추억을 모두 서서히 지우며 나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한 채 죽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까? 

 

어찌 보면 나와의 관계 맺는 사람들이 나와의 추억을 망각하고, 그 상태로 나는 하루하루 더 살아간다고 해도 그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한 개인으로 살아 나가며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 속의 자신이 소멸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과 나의 추억이 그대로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물리적 죽음을 택한 것이다.

 

물리적 죽음과 개개인의 존재적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물리적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삶에서 죽음을 너무 망각해도 시간이 흘러가고, 죽음을 너무 직시해도 시간이 흘러간다. 결국 모든 것은 언젠가 흘러가기 마련인데, 끝이 있는 흘러감은 한 개인을 초조하고 불안함과 동시에 두렵게 만든다. 흘러가는 것의 끝이 보이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어렵다. 결국 주인공은, 하나하나 세상의 ‘무언가’가 사라짐과 동시에 자신과 그 무언가를 통해 관계 맺던 사람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즉 무언가를 통한 관계와 추억의 존재적 죽음을 통해, 물리적 죽음보다 존재적 죽음의 두려움과 허무함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결국 세계는 기억과 추억으로 뒤덮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러한 관계들의 소멸은, 결국 물리적 죽음보다 더 슬프고 마음 아픈 것이 될 수 있다. 한 개인으로써 살아온 세상이 점점 소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결국 고양이를 세상에서 없애지 않겠다고 하고, 자신이 죽는 것을 받아들인다. 

 

 

 

시한부 인생이 찾아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한부 인생과 교통사고 중에 갑자기 어느 순간 죽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러나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언젠가 교통사고를 당할 시한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홀가분하게 죽음을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가 세상에서 없어져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또한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관계 맺은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의 부재가 소중한 그리움으로 남아있게 된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지만, 남아 있는 나의 사람들의 마음은 일렁인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누군가 슬퍼해 줄까요?”

 

 

 

에디터 심선용.jpeg

 

 

[심선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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