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복의 멸시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9.04 00: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행복한가요?”라는 다섯 글자의 질문에 A는 자신의 배경을 늘어놓으며 완벽해 보이는 삶을 조건적으로 나열했다. 무려 50배가 넘는 글자수였다. B는 20%에 해당하는 “네”, 단 한글자로 축약했다.

 

A는 자신의 방 창문이 깨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썼고, B는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온 살구빛 햇살을 쬐고 있었다. 어느 날의 나에게는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A의 목소리 한 가닥이 귀에 꽂히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완벽함’에 질려갔고, 그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멸시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무례함을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태도 역시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그 날에 단언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는 A로부터 벗어나, 그를 판단하는 오만한 나와, 더욱 오만했던 이전의 나에 대해 곱씹어보려고 했다.

 

십수년을 자아에 초점을 맞추면서 온 각도에서 나를 조망해 오면서, ‘예측 가능한 나’, ‘통제 가능한나’에 취해 자만에 가득 찼던 시기를 지나, 다다른 곳은 삭제할 수 없는 ‘맹점’이다.

 

매 초, 구름이 흘러가는 형상이 변하고, 그 형상이 나의 수정체에 맺히며, 매 초마다 새로운 자극이 되어 ‘하늘’에 대한 정의를 두껍게 또는 새로운 방향으로 꺾어 버리므로. 나는 오늘의 하늘이 내일의 하늘과 같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내가 자신할 수 없는 것은 각각의 조건은 비극이나, 그 합은 희극인 것이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먹구름은 나에게 비극일 수 있지만, 매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던 잠시간의 여유는 희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쓸데없는 감상의 센서를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작은 것을 부풀려서 생각의 회로를 어지럽히는 것일 수도, 작은 것에 위로 받는 가성비 좋은 마음을 지닌 것일수도 있는 장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행복이라고 분류하기로 했다. C는 나의 예민함을 불행에 분류하기로 했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닿지 말아야 할 비극이다. D는 나의 감성을 선망에 분류하기로 했다.

 

한편, 나는 오늘의 먹구름은 기쁨으로, 어제의 보라색 구름은 슬픔으로 정의내리기도 했다. 내일의 보라색 구름은 희열이기를 바랄 뿐이다. 내일 보라색 구름이 보일 것이라는 예언은 아무도 주지 않았다.

 

복잡다단하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A는 실제로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편이 좋다. 나는 한구석에서 A를 선망할지도 모른다. 나의 하늘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내가 나의 ‘선망’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B가 왜 깨진 창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창문이 깨진 이유를 설명하고 싶은 A에게 깨진 창문이 왜 일상적이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행복’을 ‘믿음’하는 사람인지, ‘행복’을 ‘선망’하는 사람인지, ‘행복’을 포기한 사람인지, 미소를 머금게 하는 ‘행복’이라는 감정이 어찌 이리도 수백가지의 감정과 수천가지의 생각의 가닥을 꼬리물게 하는지.

 

 

3695656601_znwgZFh4__2c74932f-229d-46ab-a2ea-1091e35a7076.jpg


 

본 오피니언은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9791198173898.jpg



  

아트인사이트-박나현.jpg

 

 

[박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