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이상하고 다정한 힘 [도서/문학]

스티븐 킹의 소설 <고도에서>
글 입력 2023.08.3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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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소설 ‘고도에서’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게만 중력이 작용하지 않게 된다면? 중력이 더 이상 내 몸을 지구로 끌어당기지 못한다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주인공 스콧 캐리에게 닥친다. 소설에서 묘사된 바로는, 스콧은 맨발로 서면 키가 195cm에 달하고, 허리는 40인치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거구의 중년 남성이다. 식사량과 관계없이 매일 0.5kg가량씩의 체중이 꾸준히 감소하더니, 122kg는 나가 보이는 몸의 무게가 96kg까지 줄어들게 된다.

 

더 이상한 점은 옷을 벗고 있을 때와 입고 있을 때 체중이 똑같이 나간다는 것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체중을 재든, 맨몸으로 체중을 재든 같은 무게가 나온다. 자신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든다고 생각한 스콧은 5년 전에 퇴직한 의사이자 절친인 밥을 찾아가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다. 그의 키, 뱃살, 근육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몸에 무엇을 걸치든 몸무게의 합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스티븐 킹의 소설 <고도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을 겪는 스콧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다. 자신에게 작용하는 중력이 점점 소멸돼 가는 상황. 당황도 잠시, 세상만사가 불가사의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상하리만큼 의연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내 몸무게가 0에 도달해 사라져 버리기 전에, 주변의 그릇된 차별과 혐오를 없애려고 하는 그의 기이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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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노라와 이혼한 후, 둘이 살 때도 충분히 컸던 집에 홀로 남게 된 스콧의 곁에는 그가 키우는 고양이 빌 뿐이다. 그는 절친인 밥을 제외하고, 다른 이웃과 교류 없이 살아가는 외로운 인물이다. 얼마 전 옆집에 이사 온 새로운 이웃이자 동성혼 부부인 디어드리 매콤과 미시 도널드슨이 있지만, 그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디어드리와 미시 부부가 키우는 개들이 자신의 잔디밭을 더럽혀 놓았다고 확신해서 그들의 집에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건 디어드리의 까칠한 냉대뿐이었기 때문이다. 스콧의 의도는 개들의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고 서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하는 것이었으나, 이사 온 직후부터 캐슬록 사람들의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겪어 온 그녀에게는 스콧의 방문 역시 동성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가왔다.

 

스콧은 미시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부부가 이사 온 지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개들이 잔디를 더럽히니 그제야 말을 섞으려 했던 자신의 모습 역시 그들에게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는다. 캐슬록에 온 건 실수였다고 말하며 애써 미소를 짓던 그녀와의 대화 후, 스콧은 서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줄어드는 몸무게, 그리고 디어드리와 미시 부부. 이 두 가지가 스콧을 변화시킨다. 단지 자신의 고양이와 회사 프로젝트에만 관심을 가지던 그는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이웃과도 굳이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몸무게가 줄어들고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후, 자신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동성혼 부부를 향한 은근한 차별이 존재했던 것, 그리고 그들에 대한 혐오가 담긴 모멸적인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캐슬록 사람들의 모습이 스콧의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본인이 차별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차별과 혐오의 폭력은 겉으로 표출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곳곳에 산재한다.

 

디어드리와 미시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 ‘동성 결혼을 한 레즈비언 부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는 꼬리표와 부정적 편견이 따라다니는 것 역시 그렇다. 디어드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 레스토랑이 소생 불가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장사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동시에, 육상 선수였던 그녀는 캐슬 카운티에서 열리는 달리기 행사인 터키 트롯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할 생각을 갖고 있다.

 

스콧은 디어드리의 그 결심이 식당을 살리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시와 함께 마을을 떠나기 전에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겠다는 의도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녀는 어느 결혼한 레즈비언이 마을 행사에서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하고, 마을 전체를 환히 밝히는 트리에 직접 불을 켜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몸무게 줄어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보면서, 스콧은 자신이 바짝 말라 없어져 버리기 전에 부부를 도울 계획을 세운다. 결혼 생활은 이미 이혼으로 파탄이 나서 되돌리기 어렵고, 직장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가망이 없는 상황이다. 죽기 전에 적어도 한 가지는 바로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부의 곁에 서서 마을의 잘못된 편견에 함께 맞서기로 결심한다.

 

기묘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중년 남자에게서 사라진 중력은 주변을 껴안는 따스한 힘으로 되돌아왔다. 스콧은 보기보다 45kg이나 덜 나가는 신비로운 자신의 몸을 적극 활용하기에 이른다. 이전과 여전한 근력이 가벼운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손님들이 부부의 레스토랑을 찾게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마을이 더 나은 곳으로 변할 수 있도록 터키 트롯에서 다정한 꾀를 부린다.

 

스콧의 야심찬 계획이 성공한 덕분에, 지역 신문 1면의 상단부를 ‘캐슬록 터키 트롯에서 우승한 지역 레스토랑 주인’의 소식이 장식하게 된다. 디어드리와 그녀의 파트너 미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언급하며, 그들의 요리를 긍정적으로 평하는 기사가 실린다. 이후 레스토랑에 손님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고, 결국 부부가 캐슬록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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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는 몸무게가 이유 없이 줄어드는 남자의 미스터리를 소재로 설정해, 주변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인물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상대에게 대놓고 행하는 혐오의 언행과 폭력도 존재하지만, 태도를 겉으로 표출하지 않은 채 차별의 시선으로 타인을 멸시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위주로 비추며 우리 사회의 상태에 대해 시사점을 던지고자 한다.

 

동시에,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소한 친절을 표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를 건넨다. 자존감이 높고 당당한 여성 디어드리, 상냥하고 강인한 그녀의 파트너 미시, 그리고 나름의 기지와 다정함으로 부부의 삶과 사랑에 힘을 보탠 스콧의 인생을 지켜보게 하며, 차별과 혐오를 이길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믿도록 만든다.

 

소설의 결말부에 다다르면 스콧의 무게가 ‘0’이 되는 날이 다가온다. 스콧은 자신의 몸을 지구에 붙잡아 두던 휠체어 위로 천천히 떠오르고, 곧 그가 하늘에서 바라본 세상이 그려진다. 그는 높은 고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소중한 친구들과 마을 전체를 반짝이게 하는 트리의 불빛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포용과 친절을 통해 불가사의한 기적을 이뤄낸 스콧이 마침내 마을을 떠나 높이 떠오르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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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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