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와 공간감 [공간]

영화의 모든 순간을 수집하고 싶었던 금지옥엽에서
글 입력 2023.08.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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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헤어질 결심 영화에서의 공간감을 흠뻑 느끼기 위해 부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 촬영지를 답사하며 느낀 공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각으로 남아 여전히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학업, 알바 등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에 매번 시간을 내어 현장으로 직접 떠나긴 어려운 법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대신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나섰다.

 

오늘 소개할 이곳은, 그런 여운과 공간감 모두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을지로 세운상가 3층에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목조목 붙어있는 가게들을 피아노 건반을 훑고 지나가듯 경쾌하게 지나쳐 보면 노란색 간판 천막이 눈에 띈다. 칸 영화제를 떠올리게 하는 월계수 잎이 간판에 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곳.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하고 아늑한 공간이 월계수의 빛을 닮아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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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옥엽은 영화와 관련된 음반, 도서, 문구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상업영화, 독립예술 영화 범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의 굿즈들이 모여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매장이기에, 둘러보는 데에 15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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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입구와 가까운 오른쪽 선반에는 매장 플레이용 LP 플레이어가 놓여있다. 그 옆에는 켜켜이 꽂혀있는 음반들이 눈에 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내가 아는 영화가 있는지, 있다면 LP 커버의 디자인은 어떤지, 수록된 음악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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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책장에는 영화와 관련된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도서관처럼 방대한 양은 아니지만, 영화와 관련된 서적을 찾는 사람이라면 도서 섹션에 잠시 머물러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도서에 관심이 많았기에 책을 한 권씩 꺼내 들여다보았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스타 감독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긴 서적뿐만 아니라 스타워즈 같은 오랜 영화 제작 비하인드 서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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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뒤로는 주로 독립, 예술영화의 뱃지, 필기구 등 문구류가 전시되어 있으며, 조금 옆에는 각종 포스터가 모여있다.

 

이 구역에서는 평소 아끼고 좋아했던 영화의 포스터가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혹 찾고 싶었던 포스터가 품절된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또 그만큼 그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스스로 색다른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이곳은, 부산에서 느꼈던 영화의 공간감과는 조금 결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그것을 '하늘로 떠오르는' 황홀감이라고 표현했다. 반면에 이곳에서는 '끝없이 깊어지는' 황홀감이 있다. 오랜 시간을 서서 구경하다 보면 느껴지는, 중력의 힘이다. 그 추락하는 감각에 집중하자 매장에는 오롯이 영화와 나만 남는다.

 

아는 영화, 모르는 영화들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곧 궁금증의 물길이 내 발등 위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바닷속에 인어공주의 왕국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굿즈를 보고 이리저리 생각을 돌리며 판타지다운 왕궁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조개들과 산호초들이 춤을 추고, 물방울들은 내 움직임을 따라 몽글몽글 꼬리를 이룬다.

 

영화는 이렇게 상상의 바다에 온몸을 적시고 싶은 뜨거운 욕망을 부른다. 깊은 곳으로 몸을 던져 마주한 금지옥엽의 다양한 상품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조개와 산호초, 그리고 물방울임이 분명하다. 이들은 깊어질수록 세지는 수압처럼 나를 빈틈없이 감싸 안아 준다.

 

꼭 끌어안을 때 쥐는 힘에 비례하는 무거움이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내 안에 채워지며 또 다른 황홀감과 공간감을 선사한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황홀감도, 끝없이 깊어지는 황홀감도 모두 영화가 주는 공간감이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유일무이한 감각을 매우 아낀다. 그래서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수집하고 싶어 한다.

 

금지옥엽 등 매장에서 판매하는 영화 굿즈는 '수집하고 싶은 물품'이다. 영화관과 촬영지도 그렇다. 직접 답사를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N차 관람으로 영화에 흠뻑 젖어 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답사와 N차 관람은 시간을 들여 '수집하고 싶은 경험'이다.

 

결국 '영화가 주는 공간감'은 우리가 오감으로 '수집하고 싶은 영화의 모든 순간'이라는 정의로 귀결된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일, 하늘과 바다로 황홀함의 여행을 떠나는 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자 영화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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