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쩍 용기를 내어 - 그래서 해방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8.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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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무성한 풀과 나무 그리고 누런 합판 벽들은 은밀하게 '그것들'을 감추고 있었다.


합정역 인근의 전시장. ‘온수공간’에서 두 명의 작가는 그간 해온 고민을 담대하게 털어놓음과 동시에 이들이 맞이하는 유토피아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1층 입구 옆에 기존에 해왔던 그들의 작업을 지나면 두 개의 방, 오른쪽에는 기미킴 그리고 왼쪽에는 황민준의 작업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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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는 여성들


  

동명(<나는 성기가 두 개야>, 2023)의 영상과 사진이 공간을 채운다. 맞닿은 두 벽에 배꼽 위부터 목까지 여성의 가슴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이 가로 두 줄로 부착되어 있다. 한쪽 구석에는 양쪽 크기가 다른 가슴을 가진 여성의 사진 아래, 여성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재생된다.

 

살면서 이 많은 가슴을 볼 일이 있을까. 목욕탕을 제외하고서.


익명의 가슴들을 두고 그 사이에 서서 감상하고 있으면 성적인 감정은 탈락하고 마치 초상사진처럼 느껴진다. 흔히 찍히고 그려지는 누드가 아니라 ‘가슴’만 똑 떼고 보니 마주하는 게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서 작가는 다수의 인터뷰이에게 다섯 개의 질문을 묻는다. 마지막 질문으로 ‘여성은 언제 브래지어를 벗을 수 있을지’를 물어본다. 그들의 답변은 당장, 5년, 15년 뒤 등 다양했다. 내일이라도 원한다면 내던져버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실행할 용기가 있을지, 좋지 않은 시선을 받거나 어딘가로 잡혀가지는 않을는지 걱정됐다.


그리고 영상으로부터 시작한 상상을 실현한 작가의 가슴을 위한 여정은 전시장 2층 < G의 행방을 쫓아 >(2023)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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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프로파일링 보드', 즉 용의자 ‘G’를 찾기 위해 수사를 한 흔적인 듯 그곳에는 사진과 마커로 가득하다. 그 앞의 테이블 위로는 시간 순대로 진술서가 놓여있고 남은 공간에는 작가 본인과 '사건'을 벌인 친구들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작가는 자신을 용의자 ‘G’로 설정해놓고 게릴라 시위처럼 공공장소에서 가슴 노출을 시도했다. 시원하게 드러낸 적도, 도중에 제재를 받은 적도, 아예 시도조차 불발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날도 있었는데 그런 일화를 마치 자신이 죄라도 저지른 양 ‘진술서’라는 명목으로 솔직하게 적었다.


1층 작업의 제목인 ‘나는 성기가 두 개야’가 함의하는 바는 명료하다. 여성들은 가려야 할 곳이 두 군데다. 가슴과 성기. 성기만큼이나 애써 가리려 들어야 하니 두 개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슴은 특정 성별에게만 제한된다는 점에서 곧 해결되지 않은 여성의 해방 문제와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앞으로 작가가 계속해서 진술서를 써 낼 계획이라면 아주 나중에라도 들춰보고 싶어졌다. 그때는 좀 자유로워졌을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다시 1층 기미킴의 옆방인 황민준의 공간에는 꾸민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을 콜라주 하여 프린트한 천, 자신의 얼굴이 프린트된 커다란 천을 덮고 있는 사람의 사진, 게다가 그 얼굴이 프린트된 옷을 입은 채 퍼포먼스하는 영상이 재생된다.

 

각 매체는 다르지만 황민준 역시 동명(Body Hacking, 2023)의 작업들로 방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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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링 민소매티셔츠를 입은 퍼포머가 영상 마지막에 줄을 당김으로써 그 위로 프린트된 자신의 얼굴이 울퉁불퉁 구겨지는 데 어떤 쾌감이 있다. 천에, 옷에 프린트를 하고 그것을 걸치면 몸의 굴곡에 맞게 주름이 진다. 그렇게 되면 본래 표정을 지은 게 아니더라도 찌푸린 것만 같다.

 

쉽게 말해 못나 보인다.


우리가 보기 좋게 치장함으로써 숨겨야만 했던 그런 못난 부분을 오히려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경직된 자세를 풀도록 돕는다.

 

황민준은 1층의 작업처럼 2층에서도 우리가 감추려 애쓰는 것들을 돌출해 디자인적 요소로 아무렇지 않게 내세운다.


신체의 특정 부분을 그 자체의 모양 혹은 디자인적 패턴으로 사용하는데, 방식에 한계가 없고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정체성, 동물, SNS 유저 등 억압된 것들을 유독 그리는 걸 보면 혹 관객에게 주목해 보라 요구하는 듯싶다.

 

< Birth >(2023)는 전반적으로 핑크색과 트라이벌 패턴을 사용해 디자인한 사마귀에 여성의 자궁 내부와 구 안의 태아를 덧입혀 그려낸다. 패턴의 특성상 날카로운 갈고리와 정면을 바라보는 사마귀의 눈 때문에 괜히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 아래 웅크린 태아로 인해 보호받고 있는 형태인 걸 알아챈 순간, 팽팽하게 긴장한 암컷 사마귀의 당당함이 일종의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원색과 디지털 드로잉 방식은 깔끔하게 정돈된 효과를 내며 객관적으로 감상하게 한다. 그렇기에 그가 택한 요소를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고 어떻게 이러한 조합을 만들어낸 건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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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맞이할 그날



전시는 오래보고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나의 깊숙한 곳에서 제재를 가하는 작업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그런 시선이 수치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마저도 본인이 그러한 시선을 받는 이에게 공감해서겠고 더욱이 자유롭지 못해서일 것이다.


전시의 마무리인듯 3층에는 기미킴의 작업에 일조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탈의 공간이 있고 건너편 책상 위에는 폴라로이드와 테이프 그리고 앞서 동참한 이들이 찍은 몇 장의 사진은 벽에 붙어있었다.

 

그저 몇 겹만 걷어내면 되는 걸 끝내 하지 못하고 전시장을 나왔다.

 

'금기'라는 건 생각보다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됐다. 옷을 입고 벗는 문제는 문화와 관련이 있고 국가, 사회, 이웃 간의 관계도 무시 못한다. 아무도 없던 그 3층 탈의실에 들어가지 못한 나를 보더라도.


진정한 해방은 역설적지만 보호, 안전함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우리가 앞장 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 자처하는 이들을 드디어 가까이서 만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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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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