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백이 전하는 말과 감정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8.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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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없는 소녀>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100쪽이 채 되지 않고, 영화도 95분의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다.

 

영화와 책 모두 코오트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책에서는 코오트의 내면을, 영화는 코오트의 시선을 따라가기에 좋다. 짧고, 여백이 많은 이야기이지만 주인공 코오트는 여름을 부지런히 사랑을 주고받은,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들 


 

말없는소녀2.jpg

 

 

“매트리스가 낡아서 말이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이렇게 습기가 차지 뭐니. 항상 이런다니까. 널 여기다가 재우다니,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이었을까?”

 

 

1981년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무관심한 부모와 남매들 사이에서 외롭게 지내는 코오트의 이야기이다. 집에선 언니들과도 어울리지 못하여 수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무기력한 엄마와 술에 빠진 아빠와 남매들 집은 북적거리지만, 코오트의 집에서는 말은 물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코오트는 엄마가 다섯째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다. 다행히 코오트는 다정함에 맡겨진다. 코오트는 부모에 의해 자신의 말을 할 기회가 없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킨셀라 부부도 많은 말 대신에 함께 식사하는 것, 달리기 초를 재주는 것, 따뜻한 침대에서 재워주는 것을 통해 그들은 많은 내면의 언어를 주고받는다.

 

 

 

다정함의 두려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이 편안함이 끝나기를 ㅡ 축축한 침대에서잠을 깨거나 무슨 실수를,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거나 뭔가를 깨뜨리기를 ㅡ계속 기다리지만 하루하루가 그 전날과 거의 비슷하게 흘러간다. 우리는 해가 뜰 때 일찌감치 일어나서 아침으로 달걀 요리와 토스트, 마멀레이드를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킨셀라 아저씨는 모자를 쓰고 밭으로 나간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라는 편지 한 통에 다시 코오트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경험한 만큼이 자신의 세상이 된다.

 

코오트는 킨셀라 부부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코오트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 킨셀라 부부에게 받는 사랑이 좋으면서도 자신이 ‘맡겨졌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리광 대신에 참고, 견디는 것을 먼저 배운 코오트는 이 안온함의 끝을 두려워하고, 차라리 얼른 끝나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양육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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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사랑과 돌봄이 필요했던 코오트는 아빠가 아닌 킨셀라 아저씨에게 그 감정을 느꼈다. 여름이 끝나고 코오트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곧 킨셀라 아저씨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뒤로 아빠는 코오트를 향해 뛰어간다.

 

코오트가 아빠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코오트가 여름날 쌓아 두었던 감정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책의 옮긴이는 이 장면을 킨셀라 아저씨에게 자신의 아빠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는 말임과 동시에 그동안 자신을 돌봐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어디에선가 코오트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따뜻한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잔잔하지만 늘 빛나는 중이었던 코오트의 이야기를 여름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추천한다.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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