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 나기

아주 평범한 여름이 되었다
글 입력 2023.08.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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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는 비가 계속 내리더니 8월은 무더위의 연속이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고, 더위와 싸우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외부 생활을 최소화했다. 그러고 나니 올여름은 별다른 기억없이 지나가고 있다. 사사로운 것들로만 채워져서 언뜻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


휴일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었다. 발매에 맞춰 빠르게 주문했는데 정작 손에 넣고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미루다가 잊어버렸다. 집에서도 읽고 가지고 나가서 카페에서도 읽었다. 책은 요약해서 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였다. 평 범을 소재로 취하려면 감수성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과 함께 평범한 일상도 이야기가 되는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음과 평범하게 채워져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일상을 비워둔 건지 평범하게 놔둔 건지 생각해 봤다. 아무것도 아닌 게 평범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억지라고 할 수 있지만 남는 것은 기록이고 기억은 원하는 대로 남기도 하니까 없는 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바꿔 생각하기로 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내 일상을 요약해서 알려준다는 말을 들은 적 있고 한 번씩 생각나서 되새긴다. 그때도 지금도 내 눈에 보이는 건 회사 모니터, 출퇴근길, 그리고 핸드폰과 태블릿 화면으로 요약될 것 같다. 이걸 탈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상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기록하면 의미가 생길 것 같아서 그랬다.

 

비 오는 여름 날 버스 안에서 보는 창밖 풍경, 이튿날 거짓말같이 환하게 갠 고속도로의 모습. 기록하지 않았으면 의미 없이 지나가서 시선에 남지도 않았을 텐데 마음먹으니까 소재가 되었다.

 

 

summer02.jpg

 

 

그래서 일상을 기록하고, 기록할 만한 일상을 만들기로 했다. 유난스럽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아주 작은 것들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오래간만에 연락하게 된 지인과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기록이란 소재를 얻게 된 건 지인의 역할이 컸는데 사진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따라 한다고 비슷해질 리 없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 수 없는 글쓰기 습관이 생겨서 따라 하려고 해도 나에게는 그 느낌이 없다. 저기서 의도를 만들고 여기서 베껴오니 금방 번듯한 형태가 만들어질 리 만무하고 말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평범하게 기록되는 사소한 일상이란 뭘까. 책을 읽고 평범한 삶에 대해 생각했고, 지인과 연락을 하면서 소통과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수많은 독서 중 하나, 수도 없이 주고받는 연락 중 하나.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기억에 남지 않고 되새기는 일 없었을 아주 작고 흔한 행동이다.

 

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고 들여다봤더니 평범이 되었다. 단역도 되지 못하는 엑스트라였다가 이름이 붙고 주제가 생긴다. 그렇게 이번 여름은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날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지난 7월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으면, 이번 8월이 시도 때도 없이 덥지 않았으면 없었던 것처럼 흘러갔을 날들이 하나씩 이름을 달게 되었다. 어느 순간이 기록되었다가, 어느 날이 기록되었다가 평범한 여름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사람 사는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살아가는 대로 살되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지만 않으면 뭐라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너무 힘들었던 여름에서 평범한 여름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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