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험의 끝자락에서 움켜쥔 삶과 죽음의 진실 [영화]

<스탠 바이 미>, 끝이라는 인생의 과정 속에서도 함께할 수 있음을.
글 입력 2023.08.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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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제작된 영화 <스탠 바이 미>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 맨>, <플립> 등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다수의 영화를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의 초기작이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 『사계』 가을 편에 등장하는 소설 「시체(The Body)」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스티븐 킹이 자기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극찬하며 롭 라이너에게 <미저리>의 감독 자리를 허락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네 명의 소년이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과 다소 거칠지만 순수한 그들의 우정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뻔하고 진부한 어드벤처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스탠 바이 미>는 1시간 2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소년들의 성장을 담백하게 풀어나가며 성장 영화의 바이블로 자리 잡았다.

  

 

 

시체를 찾아 떠난 모험


 

오리건주의 작은 마을 캐슬록에 사는 네 명의 단짝 친구 고디, 크리스, 테디, 번은 블루베리를 따러 나갔다가 실종된 레이 브라워의 시체가 숲속에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 듣고 마을의 영웅이 되기 위해 그 시체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영화의 결말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레이의 시체를 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려던 원래의 계획과 달리 그들은 레이의 시체를 익명으로 신고하고 그것을 그 자리에 가만히 둔 채 빈손으로 돌아온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 모험을 떠나기 전에 기대했던 인기도 얻지 못하고 영웅이 되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험이 아무 의미도 없는 헛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틀간의 여정은 그들이 삶과 죽음의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고디와 그의 부모는 넉 달 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디의 형 데니스의 죽음에 대한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의 시체를 찾는 소년들의 여정은 영웅이 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으나 얼마 전 형을 떠나보낸 고디는 그런 친구들의 가벼운 접근을 조금 불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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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의 고디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담대하게 변해간다. 고물상 주인이 풀어놓은 개를 피해 도망치는가 하면 무섭게 뒤를 쫓아오는 기차를 피해 몸을 던지기도 하고 숲속에서 강을 건너다가 거머리 떼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도 그는 마을로 되돌아가자는 친구들의 말에 굴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고디의 눈에서는 무서운 의지가 번뜩이고 있었다.

 

 

 

찾을 수 없는 죽음의 이유


 

고디에게 레이의 시체를 찾는 일은 죽은 자신의 형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형이 죽은 이유를, 형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소년의 시체를 보고서라도 자신의 가슴속에 남은 의문을 풀기를 바랐다.

 

소년의 시체를 보면 형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게 될 거라던 기대와 달리 고디는 막상 기차에 치여 숲에 성의 없이 널브러진 레이의 시체를 보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 아이는 아픈 것도, 잠든 것도 아니었다. 그는 죽어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문 레이의 시체는 혼란스러워하는 고디에게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다. 죽은 레이의 모습은 형의 죽음을 향한 그의 의문을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만을 남겼다.

 

하지만 죽음은 원래 이런 것이었다. 단지 이제야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것뿐이었다. 고디는 죽음에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죽음을 두 눈으로 마주할 수는 있었다.

 

 

번: 시체 가져갈 거야?

고디: 아니.

테디: 여기 온 목적이 뭔데? 영웅이 되는 거였잖아.

고디: 이런 식은 아냐, 테디.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한 소년의 죽음을 자신이 겪은 죽음과 연결 지음으로써 고디는 모든 죽음의 무게는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어떤 죽음도 결코 한낱 명성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체를 들고 동네로 돌아가는 대신 레이의 시체 위에 이불을 덮어주는 것을 택한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왔으나 그들의 여정에 끝이 있듯이 삶에도 끝이 있음을 깨달은 네 명의 소년의 뒷모습은 처음보다 훨씬 듬직해져 있었다. 고디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겨우 이틀 만에 돌아왔는데 마을이 좀 달라 보였다. 작아 보였다.”라고 말했지만, 겨우 이틀이라는 시간은 그들이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문을 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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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되돌아갈 수 없는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고, 죽음은 고장 난 기차가 선로 위에 영영 멈추어 서는 것과 같으며, 모든 기차는 언젠가는 고장이 나고 만다는 것. 마치 한 편의 인생 수업 같았던 모험이 고디와 그의 친구들에게 가르쳐 준 진리는 바로 ‘허무’였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자칫하면 삶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끝이라는 인생의 한 과정을 앞에 두고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때 모험을 함께했던 친구들 크리스, 테디, 번은 이제 고디의 삶에서 영영 떠나갔지만, 그들은 작가가 된 고디의 기억 속에, 그의 소설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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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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