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찬란한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 [문화 전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글 입력 2023.08.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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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가족과 둘러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깔깔대고 웃는다. 어느 화창한 날 연인과 함께 애절한 로맨스가 담긴 영화를 관람한다. 비 오는 날 괜스레 찾아온 울적함에 시 한 편을 꺼내본다. 당장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날 노래 하나에 아이처럼 목 놓아 운다. 문화예술이 우리 삶의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문화예술을 사랑하는가? 당신의 답을 듣기 전 나의 이유를 먼저 답해보고자 한다.


대개 ‘재미와 감동’은 한 덩어리로 묶여 문화예술 작품을 통해 탄생한다. 웃음이 나는 것들, 눈물이 나고 위로가 되는 것들. 하지만 그것들이 재미와 감동만을 선사할까?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고 그들의 감정은 차마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문화예술은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니 어느 홍보 문구에나 등장하는 ‘재미와 감동’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슬픔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와 유사한 감정이나 느낌을 ‘슬픔’이라는 쉬운 단어로 치부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슬픔이나 기쁨, 행복, 사랑, 증오 등의 감정을 배운다. 이러한 감정을 슬픔이라고 부르고 이는 사랑이라고 정의하자 약속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를 배우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까? 배우지 않는다면 과연 그 감정은 무엇이라 명명해야 할까. 인간의 감정이라는 복잡함을 넘어 어쩌면 난해하기까지 한 덩어리를 어떻게 두 음절의 단어 하나로 정의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쉬운 단어에 금세 적응하고 익숙해졌다. 우는 사람을 보면 슬픔을 떠올리고 웃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행복을 찾아낸다. 알고 보면 오래도록 기다린 사람이 무사히 돌아온 데서 오는 안도와 그간의 고통, 반가움, 애정이 뒤섞인 눈물이다. 알고 보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지은 미소다. 찰나일지라도 감정은 하나일 수 없다. 우리의 감정은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두 음절의 단어 하나에 갇힌 우리의 감정을 자유롭게 한다. 복잡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해석’한다. 해석은 한 단어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 속 그들의 감정은 장황한 줄글로 정리된다. 때로는 감정이 넘쳐흘러서, 때로는 감정이 오묘해서 쉬이 설명할 수 없다. 두 가지 작품을 통해 문화예술이 선사한 자유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연극 '손님들'



연극 ‘손님들’은 가정 내에서 학대받던 한 소년이 결국 부모를 죽이는 비극을 담은 작품이다. ‘학대’라는 키워드에서 대부분은 고통, 슬픔, 외로움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년에게도 따뜻함과 안도의 순간이 있었고 소중한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소년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살해의 순간과 그 직후 소년에게서 읽어낼 수 있는 감정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현관문에서 드리운 빛줄기가 소년을 비추고 그에게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것은 찰나였다. 결이 다른 고통과 슬픔, 죄책감이나 절망 따위의 감정이 한데 뭉쳐 쉽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전해졌다.


살아오는 동안 학대를 겪지 않은 사람으로서 감히 공감하며 눈물을 흘려도 되나 싶었다. 학대나 존속살해라는 소재에 공감한 것도 아니면서 마음이 아팠다. 고민 끝에 ‘슬픔’을 알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지었다. 자기 경험에 투영하여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곁을 부유하는 무수한 감정이 뒤따라온다. 연극 ‘손님들’은 복잡미묘한 감정의 덩어리를 이해하고 공감할 기회가 된 작품이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범죄조직의 한재호와 경찰 조현수가 교도소에서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는 이야기다. 흔한 누아르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장르를 논할 때 시끄러워지는 이유가 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브로맨스를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누아르 영화일 수도 있고, 누아르의 외피를 한 로맨스 영화일 수도 있다.


재호에게 잠입 경찰임을 밝힌 현수와 그런 현수의 손에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음을 맞이한 재호. 과연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한 감정은 무엇일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남성 간의 우정을 뜻하는 브로맨스인지, 그저 로맨스인지 사실상 명확한 부분은 없다. 감독과 홍보사가 내세우는 의미도 다르고 배우들 간의 입장도 각기 달랐다. 그래서 해당 부분은 관객의 해석에 맡겼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영화의 장르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는 부분. 사랑이라기에는 충분히 우정으로 해석할 수 있고 우정이라기에는 사랑을 닮았다. 그 말은 즉 이 세상에는 사랑과 우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그 오묘한 지점을 포착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

 

이러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웃고 울고 화내고 아파하는 과정에서 고작 한 줄짜리 문장으로 정의된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느끼고 있는 감정은 행복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현재 어떤 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문화예술 작품이 소중한 이유다. 삶을 둘러싼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직접 겪어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단순한 단어로 단정 짓고 끝나지 않는다. 복잡함의 틈바구니를 엿보게 해준다. 삼원색이 일곱 빛깔 무지개를 거쳐 수천수만의 색깔로 빛난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찬란해진다.


그저 여가를 채우기 위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삶에 마땅한 자리가 있고 채워져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어느 때에는 간명한 것이 정답일지 몰라도 감정을 다루는 모든 순간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단순화되고 메말라 버린다면 삭막한 사회가 될 것이다. 회색빛 도시에서 살아가기에는 색채를 향한 열망을 버릴 수 없다. 그러니 언제나 찬란한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할 것이다.


오늘도 난해하고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담은 이야기를 즐긴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다채로움을 찾아 헤맨다. 그것이 삶이다.

 

그러니 당신의 답도 듣고 싶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당신은 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가?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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