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식을 뒤집는 사람의 힘 [사람]

그 너머의 마음에 닿는
글 입력 2023.08.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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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21살. 처음 일하게 된 동네 개인 카페. “안녕하세요.”로 늘 손님을 반기던 내가 어느 날 의도치 않게 이런 말로 한 손님을 반겼다. 더우나 추우나 늘 따듯하고 연한 라떼 한 잔을 주문하시던 선생님은 연세가 꽤 있으셨는데, 내가 근무하던 매 주말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매장에 방문하셨다.

 

매번 오픈 근무와 함께 응대했던 손님이었기에, 어쩌면 근무 루틴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날은 미리 샷 하나를 추출해 두고 기다리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주말 근무를 하는 동안 우유를 스팀 하는 능력도 올랐다. 손님께 드리려 몇 개월 간 열심히 연습한 예쁜 하트가 여름을 알리며 잔 위로 성공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개인 사정으로 근무 요일을 주말에서 금요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뒤로 몇 개월은 그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평범하던 금요일 아침, 할아버지께서 매장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을 봤다.

 

그때 건넨 저 인사말은 선생님을 당황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근무 시간이 바뀌었을 뿐, 손님은 주말마다 오셨을 거다. 꼬리를 살랑거리는 강아지처럼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만 마음의 소리가 덜컥 나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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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손님을 기억하는 일이 늘었다. 아르바이트 근무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그런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과제를 하러 방문한 동네 카페에선, 맛있는 식음료와 함께 작은 과자를 주시던 사장님의 작고 소중한 마음을 느꼈다. 어떤 화학적 작용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당연한 순리로 그에 끌렸고, 며칠 뒤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주신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였는지, 처음 근무를 시작하게 된 날부터 매장에 방문하시는 손님 한 분 한 분께 매 순간 마음을 다하고 있는 내 모습을 봤다.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상대로 주문받고 식음료를 제조해 드린다.

 

특히 손님을 응대하는 짧은 순간에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작용이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것 같았다. 눈맞춤, 미소, 눈썹의 움직임, 동공의 위치. 사람마다 달리 나타나는 얼굴의 모든 변화가 내겐 어떤 하나의 변수처럼 작용한다.

 

자주 매장에 방문해 주시는 분이면 그런 변수들이 규칙적으로 작용해 더욱 강한 끌림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런 손님이 몇 분 계셨다. 어떤 분은 견고한 표정과 단호한 어조로 사장님의 진하고 고소한 라떼를, 어떤 분은 아이 같은 순수함이 가득 묻은 미소로 아이스크림과 따듯한 루이보스 차를 찾으신다. 또 다른 분은 가늘게 휘어지는 눈매와 그 끝에 걸린 보드라운 목소리로 늘 예가체프 핸드드립을 아이스로 주문하신다.

    

이렇게 손님을 기억하고 자주 드시던 메뉴를 기억해 주문받을 때면 어떻게 알고 있냐며 다들 놀라신다.

 

내가 이렇게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니. 평생을 돌 같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겨왔던 그 믿음이 모래 알갱이처럼 분해됨을 느꼈다. 사람이 중심에서 생긴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알바생과 동네 주민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가끔 균열이 생기게 된다. 할아버지 손님처럼 가끔 당황하거나 놀라시는 손님을 볼 때면, 내 관심이 오지랖처럼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겨울이 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나는 또 그 손님을 한동안 뵙지 못했다. 이번에는 근무 시간 문제가 아니었다.

 

"그 따듯한 라떼 연하게 드시는 할아버지 손님 있죠.. 요즘 매장에 안 오신 지 꽤 되셨어요." 주말에도 출근하시는 사장님이 나에게 어느 날 말씀하셨다.

 

'주말에도 안 오신 지 꽤 되셨다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알바생, 혹은 동네 주민의 경계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사람에겐 이렇게 변수처럼 수식 값을 뒤집는 힘이 있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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