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힘내라는 말 대신 [도서/문학]

삶이 버거울 때 읽으면 좋은 책 3권
글 입력 2023.08.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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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 ‘힘내’라고 말하는 것을 차선으로 두는 편이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힘내라는 말 대신 상대방을 위로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지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렇고, 둘째는 힘내라는 말에 담긴 무책임한 무한 긍정이 괜시리 못마땅할 때가 있어서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면 힘내라는 말 대신 다른 것들을 주곤 했다. 진심과 약간의 유머를 섞은 공감, 좋았던 책의 문장, 달달한 간식 기프티콘, 효과를 본 회복 레시피, 고생했으니 푹 쉬라는 말 따위가 그것들이다.

 

대단히 나쁜 일이 있던 것도, 엄청나게 끝내주는 인생을 바란 것도 아닌데 유난히 힘든 날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밉기만 한 날. 좋아하던 모든 것에 감흥이 떨어져 무감각한 날. 그리고 그 무감각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날.

 

누군가 그런 날을 보내고 있다면 나는 힘내라는 말 대신 이런 책들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하나쯤은 있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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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자기만의 생각 회로를 거쳐 엉뚱한 결론을 도출해버리는 사람. 그래서 큰 노력 없이도 상대의 실소를 자아내어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 한수희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한수희 작가님!’이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나는 그녀의 팬이다. 인스타그램 (@kazmikgirl)까지 팔로우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대는 그녀의 열렬한 청자가 된 것은 책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한수희 작가는 세심한 관찰력과 가식 없는 덤덤함으로 청춘의 내밀한 고민과 생각 그리고 감정 (남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마냥 부정할 수 없는)을 낱낱이 이 책에 담아냈다. 분명 심각하다면 심각할 수 있는 인생사를 다루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는 않은 것이 이 책의 매력.

 

인스타그램 소개 글이 ‘불쌍한 여자보다는 웃기는 여자가 낫다’인 작가는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던 청춘의 고민을 가볍게 희석한다.

 

커리어도, 사랑도, 자기 자신도 그 무엇 하나 단단히 자리 잡은 것이 없어 불안해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정확히 비슷한 고민을 하던 20대의 내게 ‘다들 그렇게 세상에 뿌리내려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저 그런 대로의,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구차하고 초라하기까지 한 우리의 모습을 기록한 책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가 힘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다. 때론 나 말고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는 법이니까.

 

 

20대 때 종종 우리는 사람이고 싶은데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내 침대가 우주의 블랙홀에 연결되어 있어서

그 위에 누우면 한없이 아득한 곳으로 꺼질 것 같은 기분.

무엇도 될 수 없고 무엇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삶의 권태와 무기력을 극복하는 '창의적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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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조부 투바키는 모든 멀티버스에서 모든 버전의 자신을 겪어본 인물이다. 그녀는 스스로 소멸하려고 한다. 인생에 남은 재미가 없다는 걸, 인생이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 한 버전의 인생, 그것도 고작 30년 남짓 산 나도 우습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그녀는 오죽했을까.

 

여느 직장인의 일상이 그러하듯 나의 매일도 비슷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반복되는 하루들이 지루했다. 번아웃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하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인생이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 편협한 추측을 그때는 진심으로 확신했다. 그런 무기력한 시기가 지나갈 즈음 운이 좋게 책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만났다.

 

‘관계의 사랑’을 다룬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통해서는 ‘삶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는 현대인이 삶에 권태를 느끼는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으로 삶을 사랑하는 방법, '창의적 자세’를 제시한다.

 

'창의적 자세'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다. 그는 말한다. ‘항상 새로운 사물을 붙잡아 알아가려는 노력’과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감탄할 줄 아는 능력’이 전제된다면, 매일 반복되는 듯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변주’를 인식하고 그것을 특별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무기력과 공허에서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삶에 대한 권태로 세계는 물론 자신까지 소멸시키려는 조부 투바키를 살린 에블린의 대사도 에리히 프롬의 이야기와 맥락이 비슷하다. ‘이 세계가 한 줌의 시간뿐 일지라도 나는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이라는 대사. 어쩌면 삶을 사랑하는 자세에 대한 유의미한 힌트를 담은 작품들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기력보다 참기 힘든 감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감정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쓴다.

(...)

삶에 대한 사랑이 무력감을 이기고

다시 깨어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빠짐없이 느끼며

창조적으로 활동하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나예랑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자기 안의 성숙과 미성숙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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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를 질투해. 많이” 작년 겨울, 친구 M과 술을 마시다 그녀가 내게 건넨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뒤이어 말을 덧붙였다. “난 사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편이다?” 자존심 센 M이 내게 자기의 약점을 밝히는 날이 오다니. 새삼 놀라웠다.

 

“아, 솔직하게 말하고 나니 뭔가 홀가분하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 아마 그녀는 쉽사리 꺼내놓기 힘든, 스스로조차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밝혀 통쾌한 모양이었다. 나도 그 기분을 잘 안다. 미성숙한 마음을 인정할 때의 묘한 안도감. 미움받을까 숨겨온 사실을 노출할 때의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

 

왜일까, 그녀의 고백으로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난 오늘 너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 M에게 말했다.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건 결코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그의 불완전함을 끌어안아주고 싶을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불완전한 스스로를 마주하고 끌어안는 게 여전히 고역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체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걸까, 우리는?)

 

책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의 저자 나예랑은 웃음을 주는 따뜻한 심리상담사 ‘웃따’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쾌활하고 털털한 이미지의 그녀는 애정결핍으로 인해 앓았던 가면 우울증을 책을 통해 고백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 남편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곪은 부분을 숨겨왔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숨기고 숨겨서 마침내 곪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진짜 자기’를 드러내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심리상담사도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성숙한 나를 ‘좋은 나’ 그리고 미성숙한 나를 ‘나쁜 나’로 연결시키곤 한다. 그리고 후자를 철저히 면박 주고 미워한다. 스스로의 미성숙한 모습을 인정하는 일은 꽤나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자기가 먹고 토한 것을 찬찬히 살피는 것과 같이 역겨운 일” 수준으로 말이다. - 나예랑,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다산북스, 2023)

 

하지만 중요한 건 미성숙한 모습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거다. 책의 문장처럼 밝음은 절대로 줄 수 없는, 어둠만이 주는 매력과 성장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의 고질적인 성향으로 스스로를 미워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때론 성숙하기도 때론 미숙하기도 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미숙함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면에 있는 성숙함을 활용하고,

내가 성숙함이라고 자부했던 것 이면에 있는 미숙함을 기억해 주세요.

나와 타인 모두를 그런 눈으로 본다면

누구도 비난받을 사람 없고 쓸모없는 사람 없습니다.

모두 활용하기 나름일 뿐이죠.

그래서 인간은 모두 하찮고, 모두 괜찮습니다.

누구의 미숙함에 손가락질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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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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