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여름에서 울리던 매미소리 - 다른 여름

지나가보면 도착할 다른 여름
글 입력 2023.08.1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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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다른 여름>이 공연하는 곳, CJ 아지트 대학로에 다녀왔다. 푹푹 찌는 더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방울, 그야말로 작열하는 여름이다. 분명 더위를 피해 들어온 실내지만, 이곳은 이제 막 핸드볼 경기가 진행된 듯한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핸드볼 경기를 보는 듯한 현장감


 

무대는 실제 핸드볼 경기장처럼 바닥에 구현되어 있어 다른 연극 무대처럼 높이가 높지 않다. 덕분에, 관객들과 함께 발을 딛고 열연하는 배우들의 땀방울을 현장감있게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다. 또, 골대를 포함한 철봉 등의 구조물은 정말 작은 실내 체육관에 들어선 느낌이 들게 한다. 배우들은 운동복을 입고 무대로 등장하고, 심판의 호각 소리와 함께 극은 시작된다.

 

핸드볼은 다른 실내 구기 종목과 달리 대중적 인기도가 떨어지고 관객이 드물게 경기장을 찾아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스포츠 종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볼 경기장은 실내 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넓은 코트를 필요로 한다.

 

극에서는 최고작, 고곽대 역을 맡은 두 배우가 호흡을 맞추며 빠른 스피드로 움직인다. 마치 쌍둥이처럼 한 사람은 앞에서, 다른 한 사람은 뒤에서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 연기한다. 이 두 사람은 극에서 무대를 경기장 삼아 온 힘을 다해 뛰곤 한다. 그러다 지쳐 누울 때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화이팅!”을 외친다. 이런 연기가 극에서 몇 번정도 반복된다. 극은 그렇게 지칠 듯, 지치지 않게 이어진다.

 

청춘들은 학업과 진로 등, 가지각색의 고민들로 괴로운 여름을 이겨내려 한다. 그러면서 꿋꿋하게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토닥인다. 그런 위로와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을, 연극 <다른 여름>에서 다양한 연출, 대사, 상징 등으로 꾸미고 있다.

 

특히 배우들의 절제된 움직임과 대사, 경쾌하게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와 음악 등은,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를 알차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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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핸드볼을 배경으로 한다. 표면적인 줄거리는 형사와 상담사에 의해 화재 사건의 범인을 잡는 추리극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는 주인공 고곽대는 '최고작', '고곽대 선배'라는 허영의 이미지 뒤에 숨으려고 한다. 과거 경기 중 7미터 드로우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자신을 부인하고 끊임없이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그는 점차 자신을 받아들이고 얼굴에 쓴 까만 비닐을 벗게 된다.

 

진술은 자기 고백적 성향이 짙다. 끝없는 설득과 진실을 추구하는 형사와 상담사에 의해 고곽대는 결국 깊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자신을 꺼내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 아마 이 연극은 추리극이라는 이름을 표지에 붙인 심리극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나가 보는 거다. 끓어오르는 태양과 더운 숨과 땀과 파이팅으로."


 

숨을 막는 더위에, 우리들은 아등바등 몸을 꾸기며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다. 어떻게든 벗어날 지금 이 여름 외의 다른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극 중에서도 고곽대는 감추고 싶은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존재하는 여름을 잊고, 자꾸 다른 여름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마냥 다를 것만 같았던 그 ‘다른 여름’에서도 한결같아 들리는 것이 있다. 바로 매미 소리다. 맴- 맴- 맴-. 공연장에서 나지막히 울리던 매미 소리를 기억한다. 무더위가 정점을 이르는 이 시기, 살을 뚫을 듯 쨍한 햇빛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면, 약속이라도 한 듯 사방에서 매미 소리가 울린다.

 

결국, 모든 여름은 꾸준히 찾아오는 이 매미 소리 하나로 다 같은 여름이 된다.

 

다른 여름이라는 것은 결코 없으며 지금 이 소리로 "존재함"으로써 여름이라는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불타는 한여름의 소각장, 비발디의 여름, 이 모든 건 너다."

 

연극 <다른 여름> 中

 

 

고곽대는 다시 7미터 드로우 앞에서 공을 던질 준비를 한다. 다른 여름으로 피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트라우마를 완전히 이겨낸 것일까? 장담할 수 없지만, 고곽대가 매미 울음으로 존재한다는 상담사의 말처럼 기분 좋은 예측을 어렴풋이 해본다.

 

 

"나는 다른 여름에서 이 여름을 생각할 거다."

 

연극 <다른 여름> 中

 

 

그게 정말이라면, 고곽대는 피하는 방법 대신 지금 이 여름을 묵묵히 이겨내는 방법으로 다른 여름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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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 희곡상을 수상한 <다른 여름>은, 최치언 연출가의 작품이다. 그는 시인과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시적이고 울림이 깊은 다양한 상징물과 대사들이 특히 도드라진다.

 

또 코트를 벗어나 삶 전반에 비유해볼 수 있는 극의 철학적인 내용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더운 여름, 찰랑이며 발끝에 닿는 다른 여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매 여름마다 고곽대가 매미의 울음소리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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