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물과 사람과 이야기의 다정한 술래놀이 - 술래 바꾸기

김지승 신간 에세이 『술래 바꾸기』
글 입력 2023.07.31 14: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김지승의 『술래 바꾸기』는 본문에 앞서 독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술래는 주체일까, 타자일까?

 


우선, 이 문장을 쉽게 받아들여보기로 하자.

 

초등생 시절의 ‘술래놀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혼자 집을 나서 놀이터 몇 군데를 차례로 돌며 제각각의 지형과 구조에 따라 어느 지점에서 뛰어내려야 도망치기에 유리한지, 친구들은 어떤 경로로 이동해 숨었는지 혼자만의 예습과 복습을 하고는 했던, 자발적 ‘나머지 공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한 박자씩 느린 나만의 반응 속도라던가 민첩하지 못한 움직임은 술래놀이에서 쉽게 취약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술래였다. 어쩌다 술래를 넘겨주는 일이 있어도 곧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술래를 넘겨받았기 때문에 과장을 보태 언제나 술래였다는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기억에 관해서는 계속 술래다. 수건돌리기 또는 수건 떨구기로 불리던 그것이 기억 돌리기, 기억 떨구기로 남았다.

 

- 「수건」에서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가방 고리를 붙잡으며 “한 판만”, 하면 못이기는 척 끌려가 두 판 같은 한 판을 하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돌아오는 길이 좋았다. 그런 어린 마음을 떠올리면 술래놀이의 기억은 언제나 뙤약볕 밑이다.

 

고군분투 끝에 졸업 즈음엔 친구는 백팀, 나는 청팀의 계주선수가 되어 나란히 바통을 받는 순간이 오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잠깐 다닌 태권도 학원의 영향으로 내게 그런 운동신경의 각성이라 부를 법한 순간들이 ‘찾아왔’다고 믿고 있다.

 

그들과 실력이 엇비슷해지면서 처음으로 술래를 돌아가며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날에야 조금 씁쓸해졌다. 술래들이란 역설적이게도 도망자의 마음을 하고 있고, 또 그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 없어 필연적으로 외롭기까지 한 사람들이어서.

 

다시 책으로 돌아와, 적어도 경험을 빌려 이 문장에 밀착해볼 수 있었다. ‘술래는 숨는 사람을 찾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모두 숨고 피하는 타자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술래바꾸기-표지(평면).jpg

 

 

『술래 바꾸기』는 일상의 사물들이 이야기를 획득하면서 비일상으로 튕겨져나오는 순간을 포착해 엮은 산문집이다.

 

의자, 모빌, 수건, 가위, 모래시계, 단추, 돌, 비누, 가발, 지도, 안경, 백지, 비석, 설탕과 얼음. 각 장에서 사물은 기억들을 잇는 공통의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각각의 본래 속성을 매개로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아픔이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의 은유로 폭넓게 확장되기도 한다.

 

작고 평범한 사물들에 작지 않은 의미가 붙어 더 이상 그들을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컵에 꽂힌 빨대에 친구와 별 일 아닌 웃음이 터져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음료를 암호처럼 ‘그’ 음료라고 부르게 될 때,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던 노란 고무줄에 이름을 붙이자 그것이 아주 고유한 존재가 되어버릴 때, 그들은 약속된 명칭과는 구별되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순간을 ‘하나의 사물이 세계를 품었다 뱉는 아주 우연한 순간 (「에필로그」)’ 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들 대부분은 시적이고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고 유동적인 몸으로 비인간, 사물과 만난다. 내게는 몇몇 여성노인들이 그런 존재로 남았다. 한 사람이 술래를 오래 한다 싶으면 일부러 잡히거나 들켜 주는 것도 그들이었다. 술래는 잡으러 다니며 재밌고, 술래 아니면 잡힐까 봐 두근두근 재밌고.

 

- 「에필로그」에서

 

 

“차갑고 귀찮은 거네.”

 

본다는 건 차갑고 귀찮아지는 일이기도 하다고, 점점 윤곽이 흐려지고 곧 사라질지 모를 누군가의 얼굴 앞에서 굳이 모질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살아가도 괜찮다고, 미선 씨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기어이 들렸다.

 

- 「안경」에서

 

 

구름과 마을을 떠난 여성들과 늙은 개가 활짝 열린 ‘잠재적 공유지’를 형성하고 있던 그곳에 나는 나의 죽은 개를 비로소 묻고 온 것 같았다. 요즘도 어쩌다 비빔밥을 먹을 때면 내게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힘이나 마음을 모으는 단추처럼 그들을 떠올린다. 몸을 낮추고 누군가의 중요한 무언가를 함께 찾던 노인들을.

 

- 「단추」에서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친숙한 세계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이 허물어진 자리에 낯선 사물과 세계 속 노인, 외국인, 미혼모, 왕따, 메두사 등의 ‘타자’들에 대한 유동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존재로서의 새 가능성이 들어차고,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중력이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저자가 의미 맺고 연결하고 책 속 사물과 사람이 주체가 되어 앞장서 있는 이야기에 당겨지면서 어느 쪽이 술래인지 질문하며, 나아가 ‘돌아가며 술래를 하는 (「수건」)’ 룰의 필요를 이해한다.

 

‘그들이 연결해 준 사물, 사물이 연결해 준 그들을 찾아 기억 속을 술래처럼 찾아다녔다 (「에필로그」)’ 는 저자와 이야기 사이의 술래가 교차되는 순간, 이것이 ‘당신과 나의 자리가 바뀌는 찰나 (출판사 서평)’ 가 아닐까.


 

 

PRESS 태그.jpg

 

 

[윤희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