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의 이유, 제주 [여행]

글 입력 2023.07.2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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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제주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네이버에 ‘제주 날씨’를 검색했다. 구름과 비로 난무한 일기 예보는 예상치 못했던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행 중 종일 흐린 날씨는 “오히려 좋아”를 시전할 수 있는 축복 같은 날씨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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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타는 것을 무지 싫어하는 나에게 구름은 천연 자외선 차단제가 되어주었고, 햇빛을 가리려 거추장스럽게 걸쳐야 하는 얇은 겉옷과 답답한 양산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팔에 스치는 제주의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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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린 소나기는 어땠냐면,


여럿이 함께 빗속을 달리는 낭만적인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좁은 나무 밑으로 들어가 살을 맞대고 있는 동안은 여행 동반자와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꺄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옆을 지나가는 사람 눈에는 조금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장면은 청춘 영화의 한 장면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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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주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탁 트인 푸른 들판이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제주의 명소는 ‘섭지코지’이다. 섭지코지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로 기억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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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로 가는 산책로를 여행 동반자들과 한 줄로 나란히 걸을 때였다.

 

다듬어지지 않아 날카롭게 뻗은 긴 풀이 내 살결에 시비를 걸었다. 앞에 걸어가는 동반자가 긴 풀을 뽑아 칼처럼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보다 더 긴 놈을 뽑아 풀 베는 시늉을 했다. 팔과 다리가 베이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가도 손에 쥔 풀 검의 힘을 얻어 당당히 걸었다.


얇은 밑창의 샌들로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반복되는 초록색 행렬에 무료함을 느낄 때쯤, 벌레 같은 것이 목뒤에 달라붙었다. 악! 하고 소리치며 뒤를 돌아보니, 동반자가 풀을 쥔 손을 등 뒤로 숨긴 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에 나도 질세라 손에 쥔 긴 풀로 앞뒤에 걸어가는 동반자들의 팔과 다리를 공격하였다.

 

유치한 장난을 한참 치며 걷다 보니 금세 섭지코지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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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 장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일명 ‘천국의 계단’에 올랐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정상에 도착하니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동반자 중 한 명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흡수하려는 듯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똑같이 두 팔을 벌려 시원한 바람에 불어오는 풀 내음을 한껏 머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초록색을 가득 품은 제주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때의 감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제주의 대자연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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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로 제주 여행을 3번 다녀왔다. 매번 다른 사람들과 가서 그런지 당시 제주에 갔을 때 눈에 담아온 풍경이나 그곳에서 느끼고 온 감정과 분위기는 다 다르다.


이것이 여행의 또 다른 묘미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예시로, 친구들과 여행지를 정할 때면 이런 대화가 오간다.


“우리 이번 여름에 제주 갈까?”

“엥, 근데 너 작년에 제주 가지 않았음?”

“응! 근데 너랑은 안 갔잖아!”

“엥, 그래도... 같은 곳 또 가면 좀 그렇잖아. 괜찮아?”

“응! 당연하지. 너랑 가면 또 다르잖아!”


위에 대화처럼 여행은 여행지보다 누구와 함께하냐에 따라 기억과 경험이 달라진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여행의 다름을 좋아한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낯섦에서 오는 설렘의 감정을 담아왔다. 조금은 어색한 동반자들과 여행을 다니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누었던 감정과 대화가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지던 그들의 아쉬움이 가득 담긴 얼굴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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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렇지만 멋진 풍경을 더 오래 눈에 담지 못한 것과 함께한 이들의 얼굴을 더 많이 바라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쉬움도 여행의 이유이다. 아쉬움이 있기에 또다시 새로운 여정을 꿈꾼다.


여행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모든 여행의 이유는 특별하다. 여행하며 순간순간 느끼는 자신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아보길 바란다.


여행의 이유를 찾아가며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여행을 기대하는 일 또한 여행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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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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