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구에게, 몸에게 친절해지는 길 [음식]

삶에 채소를 팍팍 넣어보시길 바란다.
글 입력 2023.07.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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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채소를 구독하게 된 이유


 

무작정 '비건'이 되겠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비건 라면을 먹었고, 간장 대신 비건 조미료를 썼고,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두부를 사 먹었다. 미각적으로 흠이 될 만한 요소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비건'이 되지는 못했다.


비건으로 살기는 너무나도 팍팍했다. 외식을 하려고 해도 비건 식당의 비건 메뉴들은 1.5배 정도 더 비쌌다. 집 근처에 싱싱한 채소를 파는 슈퍼가 없어 매번 상한 양파를 숭덩숭덩 잘라내고 먹어야 했다. 넉넉한 식재료를 갖출 정도로 자취방 냉장고가 크지 않았다. 채솟값이 계속 올랐다. 결정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비건 라면이 너무 비쌌다. 나는 결국 통조림 햄과 참치를 결제하고 말았다.


고기를 대체하려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대체육 사업은 점점 커지고 있고, 심지어는 비건 참치까지 시중에 등장했으니. 문제는 그걸 위해 소비되는 나의 돈과 시간에 있었다. 나는 종종 귀찮음을 참지 못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그 상 차리기도 귀찮을 때면 컵라면이나 편의점 김밥을 사 먹거나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는다. 이 습관을 바꾸기가 참 어려웠다.


대체육을 찾아 1.5배가 더 비싼 비건 제품들을 구매해 기존에 해 먹던 요리가 아닌 새로운 요리를 익혀, 결과적으로 나의 식습관을 바꾸는 그 과정이 나에겐 조금 힘들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삶의 양식인가 봐,' 라고 생각하곤 금세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비건 지망생이라기보다는 비건 체험단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더 푸르게 먹고 싶었다. 대단한 동물권 운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육류를 과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뭐라도 보태고 싶었다. 채소를 더 자주 먹고 싶었다. 사람들이 사지 않아, 가격이 매번 내려가 울상을 지으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생각나 돕고 싶었다. 그래서 채소를 늘리고 고기를 줄이기로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채솟값은 계속 올랐다. 할머니의 곡소리는 하나도 줄지 않았는데 왜 값이 내려가지 않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 언젠간 양파가 1kg에 3,000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3,600원이 되었다. 못난이 채소를 정기 구독하게 된 건 다양한 채소를 조금이라도 더 싸게 먹기 위해서였다.

 

 

vegetable.jpg

 

 

 

삶 + 채소


 

채소 구독은 내 일상에 새로운 귀찮음을 가져왔다. 2주마다 배송되어 오는 채소를 전부 손질하고 밀봉해 냉장고에 넣어야 했고, 때때로 제때 먹지 못해 상한 채소를 뭉텅이로 버리기도 했다. 매번 동봉되어 오는 보관법은 매번 헷갈렸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비건 도전할 때보단 쉬우니까,’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익숙해졌다.


어느 정도의 시간(약 10봉의 음식물 쓰레기 봉투라고 해두겠다)이 지나니, 내 생활이 확실히 윤택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식탁이 화려해졌다. - 라면을 더 맛있게 끓이고 싶을 땐 냉장고에 있는 청경채를 꺼내 씻어 넣었다. 밥을 먹기 싫을 땐 냉장고에서 처치 곤란이던 채소를 몽땅 썰어 에어프라이어에 토마토소스와 같이 돌렸다. 식빵과 같이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영양 균형을 조금이라도 더 잡은 음식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맛을 알게 되었다. - 동거인은 채소 상자와 함께 오는 요리법을 확인하고 시도해보는 것에 재미를 들였는지 자주 처음 보는 채소 요리를 해준다. 여름을 맞아 냉장고에 있던 토마토에 근처 마트에서 사 온, 웬일로 신선한 깻잎을 썰어 넣고 토마토 깻잎 소면을 해 먹었다. 깻잎을 생으로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그건 정말 맛있었다. 사실 동거인이 해주는 음식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오늘의 점심도 토마토 깻잎 소면이었다.


요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 배송받은 채소를 빠릿빠릿하게 먹어 치우기엔 아직 멀었을지 몰라도, ‘며칠 뒤에 채소 상자가 오니까, 내일은 이거, 모레는 저거 해서 먹으면 되겠다!’라는 계획을 세울 만큼의 시간 감각이 생겼다. 보관하던 봉지째로 채소를 버리는 일이 많이 줄었다. SNS를 유영하다가 찾은 채소 요리법을 즐겨찾기 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이날은 이 요리해 먹자고 함께 약속하기도 한다.

 

 

채소 요리들.jpg

좌측 상단부터 토마토소스 + 채소, 토마토 깻잎 소면, 채소 물회.

 

 

 

삶에 채소를 팍팍 무쳐보자


 

여전히 설거지는 죽을 만큼 하기 싫지만, 요리는 나름 재미있다. 채소 상자 속의 요리법을 따라 해보는 것도 점점 재미있어지는 중이다. 한창 더운 시기라 불을 많이 쓰는 요리는 꺼리는 중이지만, 날이 선선해진다면 좀 더 많은 요리를 해보고 싶다. 언젠간 엄마처럼 요리법 없이도 척척 요리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가공육을 먹는다. 가끔은 모든 게 귀찮아서 배달시킨다. 그럼, 그다지 달라진 게 없지 않으냐고? 아니, 나는 안다. 나는 이전보다는 확실히 더 나아졌다. 내 식단이 푸르게 건강해졌다는 건 내 식품 소비가 지구에 조금 더 친절해졌다는 뜻이다.


나는 나에게, 지구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채소 정기구독이 나에게 그 길을 조금 보여준 것 같다. 만약 당신이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삶에 채소를 팍팍 넣어보시길. 결과가 어떻든, 지금보다는 더 푸르를 것이다.

 

 

 

[컬쳐리스트] 박주은.jpg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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