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의 고통은 되물림된다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시대를 거쳐 온 구속이 어떻게 단단해지는가
글 입력 2023.07.25 15: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2).jpg

 

 

옛날 옛적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멀게만 느껴지는 이국의 땅 그 곳에는 다섯 딸을 둔 엄마 베르나르다 알바가 있다. 온통 검은 색에 코르셋을 한껏 조인 상복을 입은 그들이 추는 정열적인 플라멩고 춤이 이질적이고 그만큼 필사적인 아름다움이 되어 다가오기에, 몰입 혹은 압도의 감정으로 숨 쉴 틈 없는 알바의 집으로 자꾸만 발걸음이 향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번에도 어김 없이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으로 본능처럼 이끌렸다. 노출된 콘크리트 사이로 자그마한 빛이 비쳐 드는 그곳, 다섯 딸들이 각자의 속도로 밑바닥에 징이 박힌 구두를 신는다, 구두 위로 올라선다. 그 누구도 쉽게 여닫을 수 없을 것같은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커다란 문이 여닫히고 베르나르다가 모습을 드러내면 이 이야기는 서서히 폭풍 속을 향해 노를 저어 나아가는 배처럼 시작된다.


 

 

내 고통은 배고픔이 아냐, 내 고난은...


 

다섯 딸들을 폭풍으로 이끌고 갈 대립의 도화선은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가 마을의 잘생긴 청년 빼빼로마노와 결혼을 약속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치정 싸움 같기도 하다. 빼빼라는 청년이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다섯 자매가 저토록 목을 매는가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집에서 빼빼, 즉 남자와의 결혼은 단순히 표면적인 사랑 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딸들에게 억압과 침묵만이 자행되는, 그렇기에 어떠한 욕정, 욕망도 드러낼 수 없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탈출해 '자유'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와의 결혼'뿐이다. 비록 그것이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이들은 지금의 생활을 바꿔줄 단 하나의 열쇠를 두고 치열하게 손을 뻗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 안들려, 난 행복해야만 하는데'


- 앙구스티아스 넘버 中

 

 

각기 다른 양상을 띠는 다섯 딸의 욕망은 그렇게 모르는 새 서서히 각자의 방문을 넘어 새어 나가게 된다. 앙구스티아스는 '그', 빼빼가 자신에게 그저 필요에 의해 청혼 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행복할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어쩌면 예견하고 있기에 불안에 떨지만 그럴수록 빼빼와의 결혼, 빼빼와 관련된 그 무엇도 손에 쥐고 놓을 수 없다. 그것이 자그마한 사진 한 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남자들 날 보면 침 뱉고 욕해, (중략) 그렇다고 나 사랑 받을 자격 없는 건 아냐'


- 마르띠리오 넘버 中

 

 

남자들의 욕설과 비난이 익숙하다는 마르띠리오는 순결한 선교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리틀 베르나르다처럼 그녀는 막내 동생 아델라를 단속하고 밤 중 들리는 수상한 소리 하나 허투루 넘기지 못한다. 그녀가 무리를 떠나려는 암노새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 또한 갇힌 신세의 암노새이며 절대 마구간을 벗어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니처럼 난 못 살아, (중략) 초록드레스 입고 이제 숨지 않아'


- 아델라 넘버 中

 

 

극 중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하는 어리고 가장 예쁜 아델라는 빼빼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고, 그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자신의 날개가 타들어갈지 언정 타오르는 불을 향한 날개짓을 멈출 수 없는 불나방처럼 그녀는 그 어떤 제지와 비난 속에서도 무엇 하나 멈출 수 없다. 검은 옷을 입은 죄수같은 언니들처럼 살 수 없다는 그녀는 초록드레스를 입고 알바의 집을 떠나 그와 함께할 달콤한 그 날을 고대한다.

 

 

'스윗 아멜리아, 넌 흔한 소문 하나 없어'


- 아멜리아 넘버 中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이 욕망의 실타래에 엮여 있지 않는 듯한 두 인물이 있다. 부끄러움 많은 아멜리아는 중재자처럼 보인다. 그 흔한 소문 하나 없는 그녀이지만 남몰래 해변의 남자를 흠모 해본 듯한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욕망의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 하지만 이내 시한 폭탄 같은 언니, 동생들과 어머니의 갈등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접어 둔다.


낮잠만 잔다는 둘째 막달레나는 매사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자신과 이 집 안의 폭풍은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방관자같은 면모를 보이지만 어쩌면 그 누구보다 관객을 향해 이 집안의 비정상적인 억압을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다 저주 받았다'며 울분을 터트리는 그녀의 의미심장한 단독 넘버는 다섯 자매의 상황을 아우른다.


 

'내 고통은 배고픔이 아냐, 내 고난은 사랑의 아픔'


- 막달라네 넘버 中

 

 

조금은 뜬금 없어 보이는 그녀의 넘버 속 한 청년은 신기루와 같은 벨라레알을 향해 굶주린 배를 기도로 잊으며 나아가지만 황금의 땅 엘도라도처럼 어쩌면 그 낙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마르띠리오의 친구는 결혼을 해 출가 했지만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 집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사랑의 자유를 추구했을 마을의 한 여인은 창녀가 되어 공개적인 처형을 당했다. 자매들이 꿈꾸던 낙원으로 향하는 열쇠는 또다른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절대 가닿을 수 없는 자유와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을 향해 노를 젓는 자매들의 고난은 당장 눈앞의 배고픔이 아니기에 폭풍을 향해 다가가는 배를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한 남자를 가운데 두고 사랑을 차지하고자하는 여인들의 치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원하는 바를 숨기지 않고 마음껏 갈망 하고픈 억눌린 여인들의 설움이 숨어 있다.


 

 

내가 결혼하는 날, 난 너의 창녀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1).jpg

 

 

그리고 그 집에는 이 모든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그 어떤 잡음도 용납하지 않는 폭군, 베르나르다 알바가 있다. 남성이 부재한 이 집안에서 그 누구보다 가부장적인 존재이자 권력을 지닌 존재, 베르나르다는 두번째 남편 안토니오가 그의 의붓딸과 어린 하녀를 탐할 때에도, 앙구스티아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빼빼로마노와 아델라 사이에 은밀한 열정이 오고 갈 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그저 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명령'한다.


"암말은 가두고 숫말은 풀어 두라니까!"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안 규칙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명령 한 마디처럼, 그녀는 안토니오의 8년 상을 치루는 동안 딸들에게 세수 한번 편하게 하지 못하게끔 했으며 앙구스티아스에게 남편이 먼저 말하기 전 말하지 말 것, 절대 자신의 눈물을 들키지 말 것 등, ‘여자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해 꾸준히 명령한다.  


그저 앉아서 수 놓는 것이 여자들 일이라는 그녀의 집 안에서 다섯 딸들의 욕망은 '숨겨야 마땅한 것'이었을 것이다. 암노새들이 단체로 도망을 간 그날, 억눌러둔 딸들의 욕망은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침대로 돌아가"라는 한 마디로 그녀들의 욕망을 일축해 버린다. 그 한 마디에는 절대 욕망을 티 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내 보호 아래에서는 모두가 편하게 숨 쉴 수 있지"


베르나르다는 독단적인 자신의 모습을 딸들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설명한다. 무엇이 베르나르다를 이토록 폭군으로 만든 것일까? 남편 안토니오의 죽음 이후 어린 하녀는 '내가 결혼하는 날, 모두가 날 원할거야'와 같은 노래를 부른다. 기대를 품고 발그레한 그녀의 두 볼은 그 어떤 과실보다 탐스럽고 빛이 난다. 


무어인 소녀인 그녀, 그리고 '이 곳 출신'이 아닌 베르나르다는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베르나르다에게도 '결혼', 즉 '자유'를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새 살림을 꾸려 원하는 것을 마음껏 표출하며 사는 인생을 기대하던 그런 시절. 그러나 곧 그녀의 노래는 ‘창녀….창녀’로 끝을 맺는다. 


그녀는 어쩌면 본인 스스로를 창녀라고 여기는 듯 하다. 안토니오에 의해 더럽혀진 자신의 신세에 울분 섞인 노래를 부르던 베르나르다는 딸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세운 규칙으로 가득한 집 안에 딸들을 가두고는 스스로 ‘남자’가 되고자 한다. 다섯 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방식이 아이러니하게도 베르나르다에게는 딸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시대를 넘어 유구하게 내려오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 빛나야 하는 시절 소위 ‘창녀’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구속해야 했던 희생자였던 한 여성은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딸들에게 끔찍한 지옥이 되어 버린다. 형체 있는 가해자 없이 되물림 되는, 피해자만 존재하는 이 이야기는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고통 속에 몰아 넣는가? 베르나르다의 거대한 문 뒷 편에 도사리고 있는 형체 없는 그것은 대체 무엇이기에 바깥 세상을 갈망했던 아델라에게 끔찍한 결말을 남기고, 남은 이들을 알바의 ‘집’에 영원히 구속되게 만들었는가?


 

 

색으로 나타내는 연출적 요소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3).jpg

 

 

여성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다수의 극 중에서도 베르나르다 알바가 유독 인상적인 이유는 끔찍한 비극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강렬한 연출적 요소를 통해 보는 이의 몰입을 이끌어 내는 매력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보기 힘들 정도로 역한 감정의 교류가 오가는 데에도 그것이 너무나 황홀할 만큼 자극적이라 눈을 뗄 수 없달까.


특히 색의 대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집 안 모든 여성을 숨막히게 하는 거대한 문 안쪽에는 두 가지 빛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빨간 색으로, 특히 베르나르다가 해변의 남자와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호세파를 저지 할 때, 출처 모를 아이를 낳은 여인을 처형할 때 그녀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한 요소로 작용한다.  


빨간 빛은 그러니까 베르나르다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극 중 모두를 통제하는 표면적 빌런, 다섯 딸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이다. 반면 초록색은 그 대척점에 선 ‘자유’를 표현하는 색으로 아델라를 상징한다. 그녀가 빼빼와의 밀회를 위해 문을 열었을 때, 그 빛은 집 안까지 들어와 아델라를 비췄지만, 이내 빨간색 조명이 그녀 위로 떨어지고 마르띠리오에 의해 문은 닫히고 만다. 


또한 검정과 하얀색의 대비도 존재한다. 검은 상복을 입은 등장인물들에게서는 다른 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초반부터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베르나르다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매번 반항하는 그녀의 엄마 호세파이다. 빼빼를 만나기 위해 밤 중 몰래 침대를 탈출한 아델라 또한 흰색 옷을 입었고, 그런 아델라를 ‘아가’라고 부르며 호세파는 벨라레알을 향해 도망치자고 한다. 


검정색 옷을 입은 언니들을 향해 ‘전부 다 죄수 같아’라고 말하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델라. 마치 빛과 어둠 같은 그들의 의상 색 대비는 억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것을 거부하려는 자들로 나뉘며 확실한 대비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는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캐릭터를 확실하게 나타내며 극의 몰입을 이끄는 요소로 작용한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