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손쉬운 해결책을 바라는 마음의 맹점 - 손쉬운 해결책

글 입력 2023.07.24 13: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손쉬운 해결책_표1띠.jpg


 

“최고의 심리학 비평서”라는 평을 받는 제시 싱걸의 저서 [손쉬운 해결책]은 자존감, 그릿, 넛지, 긍정심리학 등 심리학계의 아이디어들에 관해 논한다. 그 아이디어들의 근간이 되는 과학의 모호하거나 오류가 있는 부분을 정리하고 그런 허술한 심리학 연구들이 그토록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손쉬운 해결책]을 읽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었다. 마치 내가 아는 세상이 모조리 흔들리는 듯 설익은 과학의 파급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초반에 느꼈던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내용은 2장의 ‘청소년 슈퍼 범죄자 설’이었다. 처음 소제목을 접했을 때는 청소년 범죄를 확대해석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책이 전하는바, 이 책을 통해 느낀 것들을 2장의 문장을 통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강간과 폭행에서부터 야유에 이르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데에 그 용어가 쓰였지만, 정작 와일딩을 하고 있을 법한 아이들 또는 와일딩을 하는 친구나 급우가 있을 성싶은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기자들에게 답했다.” - 64쪽
 

 

‘와일딩’이라는 단어를 특히 흑인 아이들 무리에 적용하는 양상에서 이미 인종차별적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정작 그 용어는 그럴 만한 사람들 내에서 사용되어 퍼진 것이 아니었다. 모호한 출처였음에도 그대로 일파만파 기사화되었다. 잘못 정의된 용어였는데도 그랬다-라는 책의 문구처럼 잘못 정의된 단어가 퍼지는 양태가 꼭 설익은 과학이 퍼져 나갈 때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 사회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떠한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특징짓고, 그로 인해 차별하거나 차별받고 갈등이 야기되는 현상이 우리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디울리오, 폭스, 윌슨은 인구통계와 범죄 통계의 증거가 다가오는 대량 살인을 지시한다고 확신했고, 언론은 아이비리그가 보증하는 전문가들이 제시한 이 아이디어를 열렬하게 증식시키며 어린 살인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하는 언어를 한껏 즐기는 듯이 보일 때가 많았다.” - 77쪽

 

 

이 대목은 문장 자체로도, 그 이면에서 볼 수 있는 모습도 모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언론은 전문가의 확신에 따라 아이디어를 열렬히 증식시킨다고 했다. 전문가의 보증이라는 것이 절대적일까? 아닐 수 있다. 대량 살인을 확신했던 그들의 아이디어도 그렇다. 이렇게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것을 전문가가 언급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발 없는 말도 천 리를 가는데 전문가의 언급으로 말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말이 ‘슈퍼 범죄자’를 만들었다. ‘슈퍼 범죄자’가 있기에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 문장에서 투영해 볼 수 있는 우리 사회 모습은 바로 ‘언론’이다. 사실 여부를 체크한다고 해도 그 사실을 전하는 방향은 전적으로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을 통해 해당 사실을 접하는 우리는 어쩌면 언론의 의도에 아무런 대비 없이 노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리 낙인을 찍어두는 것과 다름이 없는 설익은 아이디어에 노출되고 있던 것처럼 언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회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문장이었다.


 
“우선, 디울리오와 동료들은 정말로 근본적으로 나쁜 짓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보이지 않는 어린 사람이라는 개념을 제외하고는 슈퍼 범죄자가 무엇인지 완전하게 정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이 설익은 아이디어들이 퍼져나갈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83쪽
 

 

어떻게 제대로 된 정의 하나 없이 아이디어가 퍼져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제대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을 하나의 아이디어로 확신하며 퍼트렸다는 의미다. 이 대목에서는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것에 확신을 가질 때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설익은 아이디어와 연구가 어떻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했던 생각에는 착오가 있었다. 그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발화하는 이의 영향력에 힘입어 생기는 연쇄적인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슈퍼 범죄자’와 같은 용어들이 마치 날조된 신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라도 되는 듯이 국가의 입법 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 88쪽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과정을 직접 느끼는 듯했다. 그들에게 ‘슈퍼 범죄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나 허황한 이론이 아니었다. 실제로 법안 제정까지 이어졌다. 현실에도 끌고 나온 것이다. 형태 없는 말에 몸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몸이 생기고 날개를 단 ‘말’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개인 단위에서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상황에 공포를 느꼈다.


 
“20세기에 어떤 진전이 있었든, 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미국 사회의 다수는 허술한 통계적 증거를 기반으로 사법제도와 마주친 많은 흑인을 구제할 수 없는 괴물처럼 취급하도록 만든 설익은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지경에 머물렀다.” -105쪽
 

 

결국 ‘슈퍼 범죄자 설’이 퍼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었던 것이 차별을 조장하는 합법적 테두리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슈퍼 범죄자 밈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 설익은 행동과학적 사고의 사례는 흔치 않다.” - 109쪽

 

 

해당 내용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문장이다.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싸한 말로 퍼트리는 아이디어를 믿고 또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전달한다. 어설펐던 아이디어는 포장을 거치며 ‘그럴싸한 것’으로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한다. 그것을 향해 보이는 사람들의 태도는 얼핏 광적이기까지 하다. 이 현상이 사이비 종교와 무엇이 다를까. ‘어설프고 허술하며 설익은 아이디어(혹은 과학)는 사이비 종교의 교리와 다를 바 없다.’ 이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이 책은-적어도 이 대목을 통해서라도- 설익은 행동과학적 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등장하는 사례도 있고, 정말 그럴듯한 논리를 가진 예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례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얼마나 예민하게 움직이고 휩쓸리는지 설명하고 있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것은 한 번 끓기 시작하면 식히기 쉽지 않다. 설익은 사고는 그 뜨거움 속 맹점을 노리며 불을 더 지핀다. 손쉬운 해결책을 바라는 마음이 아마 그 맹점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다시금 돌아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박서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