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글 쓰는 용기에 대하여 -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김소민 작가

글 입력 2023.07.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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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글을 쓰게 만드는 게 마감이라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고통과 슬픔을 비롯한 온갖 어렵고 부정적인 마음 역시 글을 쓰는 동력이라고. 좋은 날보다 슬픈 날에 일기를 쓰게 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글로 쓰다 보면 놓아줘도 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안고 가야 할 것만이 남는다. 슬픔을 글로 써본 사람은 안다.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를 쓴 김소민 작가 역시 슬픔과 고통을 글로 썼을 때 얻을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글쓰기 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이 책에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글쓰기 철학과 글쓰기 방법론을 들려준다. 

 

이 책은 우리가 자신의 슬픔을 글로 써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과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슬픔으로부터 눈 돌릴 곳은 너무나 많고, 그걸 적극적으로 권하는 세상이다. 여기서 굳이 글쓰기를 선택하려면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을까? 김소민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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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쨌든 계속 글을 써온 건 잘했다 싶어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번째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10여 년간 기자로 일하시고 글쓰기 수업도 하셨는데 글쓰기 책을 낸 것은 처음입니다.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책은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써야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글쓰기 책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쓸 생각을 못 했죠. (웃음) 게다가 글을 쓰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명확한 공식이나 필승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글쓰기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결국 책이 출간되었네요. 


처음에는 그래도 글쓰기 수업을 계속 해왔으니 그때 했던 얘기를 쓰면 되겠다 싶었어요. 막상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니까 어렵더라고요. 괴로웠어요. 작년에 나왔어야 할 책이 1년이나 늦어졌으니 말 다 했죠. (웃음) 책이 나온 지금도 부끄러운 마음이 커요.

 

 

책을 쓰면서 작가님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꼭 이 책 때문은 아닌데, 최근 들어 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중요할 필요도 없고요. 물론 좋은 의미로요. 그걸 몰라서 오랫동안 나 자신 안에 갇혀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하지 않으니 아무거나 해봐도 되는 건데 말이에요.

 

 

그런 마음이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렇죠. 나 자신을 너무 중요시하니까 내가 쓰는 글에도 엄청난 의미와 통찰이 담겨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글쓰기를 오래 해오면서도 즐기지는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예요. 그래도 어쨌든 계속 글을 써온 건 잘했다 싶어요. 나 자신에게만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고, 나를 세상에 표현할 수 있게 해준 도구가 그나마 글쓰기였어요. 

 

 

솔직하게 해주시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책에서도 글쓰기와 관련된 작가님의 솔직한 이야기가 나와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 안에 다른 콘텐츠가 많았다면 그걸 썼을 거예요. 콘텐츠가 없으니 솔직하게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솔직한 이야기는 책에 쓰지 않았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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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없는 줄 알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존재고,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고, 그랬을 때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책의 내용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글을 쓸 때면 자기연민에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고통을 솔직하게 쓰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기 힐링을 위한 글과 소통하기 위한 글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인과 소통할 때는 예의와 거리감이 꼭 필요하죠. 바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상대방의 눈으로 보는 능력이 필요해요. 내가 나의 어떤 고통을 말하는 것이 읽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닐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부분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원래 타인과 소통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100퍼센트 완벽한 글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노력을 할 뿐이죠.

 

 

대부분의 글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것인데, 소통 과정에서 일어날 갈등이 두려워 몸을 사리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글을 쓰게 되는 듯해요. 그래서 ‘무탈하지만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는 글쓰기’(115쪽)가 나오는 부분을 읽으면서 뜨끔하기도 했어요.


그런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째는 쓰려는 주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써야 해서, 둘째는 욕먹기 싫어서. 저도 똑같아요. 매번 갈등하고 힘들어하며 씁니다.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건 쉬워요.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게 어렵죠.

 

 

애정결핍 때문에 글을 쓴다는 대목도 재미있었어요. 저도 저를 포함해 글 쓰는 사람은 다 어느 정도 ‘관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웃음) 사람은 없는 줄 알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존재고,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나는 사라져도 내 경험과 생각은 어떻게든 물리적인 실체로 세상에 남겨두고 싶은 거죠. 어찌 보면 피곤하고 애달픈 존재예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글쓰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 책을 써놓고 이런 말을 하긴 좀 뭐하지만, 저는 모두가 꼭 글을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해요. (웃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니까요. 노래를 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그래도 돌이켜보면 글쓰기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돼요.


그건 그래요. 저는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글을 쓴 덕분에 예전의 저보다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글을 쓰면 자기 객관화가 되거든요. 형체가 없는 내 마음을 글로 풀어놓으면 새롭게 보이곤 해요. 나에게는 절절한 감정도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코미디일 수 있죠. 


또 글을 쓰려면 아무리 생각이 없는 사람도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책 한 권을 읽더라도 그냥 ‘재밌네’ 하고 덮는 것과 그 책에 대해 뭐라도 쓰는 건 완전히 다르잖아요. 무언가 주장을 할 때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 훨씬 더 다양한 근거와 의견을 찾아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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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쓰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 같아요.” 

  

 

무엇이 작가님을 계속 쓰도록 하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감과 원고료입니다. (웃음) 그래서 사실 제가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자기 동력보다는 외부 요인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럼 사적인 기록은 따로 하지 않는 편인가요?


여러 번 시도는 해 왔는데, 지속하기가 어려웠어요. 글 연재를 계속해오다 보니 거기에다 사적인 기록까지 끌어 쓰게 될 때도 많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적인 기록을 꾸준히 못 한 게 후회가 돼요. 최근에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우리가 예전에 같이 여행 가서 했다는 일들이 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단어 몇 개만 적어 둬도 나중에 기억이 날 텐데, 그런 것조차 없으니 어떤 기억은 통째로 사라지더라고요. 


이제부터라도 기록을 해 두려 노력해요. 최근에는 반려견과의 일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것도 마감이 없으니 쓰다가 흐지부지되더라고요. 저는 글을 너무 무겁게 생각해서 더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평소에 사적인 기록을 많이 하지 않는 작가님이 글쓰기 수업에서 다른 사람의 사적인 글을 읽을 때면 느낌이 새로울 것 같아요.


맞아요. 수업에서 잘 쓰는 사람을 참 많이 만나요. 몇몇 글은 책에도 실었어요. 책에서도 소개한 일화인데, 줌으로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하며 3시간 동안 각자가 쓴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연령대도 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죠. 그날따라 유난히 자신의 고통에 관해 쓴 글이 많았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정말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결핍이란 좋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남의 잘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잖아요. 사람은 결핍으로 연결될 수 있는 존재고, 글쓰기는 그 결핍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것을 그날 경험했어요. 결핍이 없는 인간은 굉장히 외롭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아까 고통을 마냥 솔직하게만 쓰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건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린 거예요. 때로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쓰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 같아요. 나 혼자만 고통스러운 것 같을 때 사람은 가장 외롭거든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도 나처럼 외롭다는 걸 알고 나면 나의 고통도 견뎌볼 만한 게 되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다들 그렇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는 연대감 덕분일까요?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 앞이라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또 신기한 게 있어요. 사람들이 글을 쓰러 모이면 처음에는 취미생활이나 일상처럼 가벼운 이야기를 쓰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솔직해진다는 거예요. 강요한 적도 없는데 각자 자기 마음을 붙잡고 글을 쓰죠. 자신이 안고 있는 고통의 실체에 다가가요. 그 모습을 보면 우리가 사람으로서 평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그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책에서 제 글 뒤에 실린 일곱 편의 글이 정말 좋으니까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생생하고 진실한 글이에요. 글을 쓰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잘 쓰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아, 글을 쓰신다면 꼭 스트레칭 잊지 마세요. 오래 쓰다 보면 일자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웃음)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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