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riter] 언니, 온도

글 입력 2023.07.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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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은 약손. 그리고 언니 손은 금손이었다. 실제로 언니가 손으로 뜨개질이며 자수 같은 것을 곧잘 만들어 내거나 요리를 척척 해내기도 했고, 심지어 손으로 하는 공부까지 잘 해내서 ‘금손’인 것도 있었지만 정말 우리 집에서 언니의 손은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언니는 이미 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집에서 언니는, 특히 언니의 손은 스테인드글라스 마냥 여겨졌다. 우리 가족에게 앞날의 빛나는 미래를 가져다줄 은인이자 깨질까 무서워 조심하고 귀하게 다루어야 하는. 엄마는 언니가 대학에 붙었는데도 불 한 번 쓰는 걸 염려하시며 요리 한 번 못하게 했고, 무거운 걸 옮겨야 해도 어린 나와 엄마가 낑낑대며 드는 한이 있어도 언니는 손 하나 못 대게 했다. 언니의 손은 우리 집의 보물이었다.

 

언니는 엄마가 유독 언니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것에 유난이야 엄마, 하고 민망해했지만, 엄마의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감사해 하는 좋은 딸이었다. 그러다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울 때는 나에게 몰래 요리도 해 주고 같이 쇼핑도 가 주는 좋은 언니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내게 언니의 손은 다치게 하면 안 돼, 신신당부했기에 밖에 나갈 때 언니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나는 중요한 비밀이 생기는 것 같아 마음이 쿵쾅댔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언니의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동네에서 성격도 좋고 예쁘다고 소문난 언니가 우리 언니인 것이 자랑스러워서 언니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나를 잡아주는 언니의 손은 그 누구의 손보다 따뜻했기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어린 시절 “언니, 손은 따뜻해야 좋아?”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니는 신진대사가 어쩌고, 혈액순환이 어쩌고 하면서 뜻 모를 말을 하다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손이 따뜻하면 마음의 따뜻함도 잘 전할 수 있어서 좋은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언니랑 손을 잡으면 나도 따뜻해져서 좋아”, 내 말에 언니는 “내 온도랑 네 온도가 같아진 거야”하고 말해주었다. “온도가 뭔데?”하는 내 물음에 언니는 “따뜻한 정도. 우리 막내랑 언니랑 마음이 똑같이 따뜻해졌네!”라고 말해주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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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언니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언니의 두 눈은 평소와 다르게 고집스럽게도 감겨 있다. 언니가 계단에서 떨어졌단다, 집 앞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언니는 그날도 4시간도 채 못 자고 병원에 있다가, 이틀 만에 원룸에 오르는 길에 계단에서 떨어진 것이다. 언니는 새벽 내내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했다가 아침에야 출근하는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어 이렇게, 언니가 내내 일했던 병원으로 다시 이송된 것이다. 이제는 신경외과가 아닌 중환자실에서.

 

아직 날씨가 많이 추운데 언니는 새벽 내내 밖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언니의 손은 늘 따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싸늘할 수 있지.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보니 혈액순환이 안 되어서 머리에만 피가 고여 있다고 한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쳐서 뇌에서 출혈이 생겨서... 아악! 도저히 이게 말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져보니 머리 말고는 온몸이 서늘했다. 언니 손이 너무 차가워서 도저히 손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언니 손을 데워줘야 해, 언니에게 내 온도를 전해줘야 해, 내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언니 손을 아꼈는데, 좋아했는데...

 

언니의 손을 문지르고,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이러시면 안 돼요!” 옆에서 간호사가 제지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언니의 손은 나에게 따뜻함을 알려주던 그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소중히 여겼던 사람의 온기가 아니라, 그저 차가운 고무 덩이 같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언니가 늘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잖아. 이젠 내가 언니의 손을 따스하게 해 줄 차례이다. 옆에서 몇 간호사들이 더 와서 나를 떼어내려 했지만 나는 놓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따뜻한 정도를 처음 알려주던 언니의 손이 온기를 잃어간다. 내 마음과 온도를 맞추어 주던 언니의 마음이 멀어진다. 언니가 멀어진다. 내가 언니를 잃어간다...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정도 버틸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맞게 언니는 딱 7일째 되는 날 숨을 멈추었다. 마지막 언니의 손을 잡았을 때, 잡고도 흠칫 놀라 떨어뜨릴 뻔했지만 놓을 수 없었다. 이제는 고무덩이도 아니고 그저 딱딱한 손 모양의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언니를 완전히 잃었음을 실감했다. 언니는 더이상 나에게 온기를 줄 수도, 내가 주는 온기를 받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와 온도를 맞출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며, 언니의 삶을 내가 조금이나마 정리하며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더이상 신체의 온도를 나눌 수 없어도 나누었던 마음의 온도는 영원히 간직된다. 이제 언니와 영영 멀어져 따뜻함을 나눌 수 없대도, 나는 언니에게 받은 그 따뜻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매일 언니를 떠올리고, 언니와 나누었던 따스한 대화를 상기한다. 언니에게 받았던 손의 온기도 영원히 내 손에 지니고 있다. 함께 나누었던 온도는 삶에 스며들어, 영원히 이 세상에, 나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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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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