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긍정하는 순간의 희열 - 보통의 카스미

'보통'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글 입력 2023.07.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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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카스미 LOVE MYSELF 포스터.jpg

 

 

영화의 시작, 의도하지 않게 미팅에 나온 주인공 소바타 카스미의 모습은 공작새들 사이에 홀로 동떨어진 고슴도치 같다. 촥 펼쳐진 공작새의 깃털처럼 서로의 매력을 드러내려 애쓰는 사람들 사이, 조그맣게 가시를 세우고 조용히 먹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본인에게 질문이 돌아오면 대답은 하지만, 그 대답의 반향에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저 사람 참 맛있게 먹네, 주인공의 첫인상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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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행될수록 첫 장면의 카스미가 왜 그리도 동떨어져 보였는지 납득이 되기 시작한다. 카스미는 누구에게도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고, 성애에도 관심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카스미에게 미팅이라니, 그 자리와 어울릴 리가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카스미를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동생과 달리, 결혼은커녕 연애와도 거리가 먼 카스미는 엄마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다. 많은 부모님처럼, 자신이 잘못해서 자식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홀로 속앓이를 한다. 그런 엄마를 안타깝게 여기는 동생은 카스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니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지 않는 거야."


'이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 밖에도 할 말이 많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단어에 주체의 의지가 결합하는 순간을 주목하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지와 상관이 없는, 불가피한 것이다. 무언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납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않는' 것은 의지의 문제다.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그렇기에 동생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다. 엄마가 문제인 게 아니라, 언니가 문제인 거야. 언니가 '보통'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문제야. 그런 속내를 비친 동생은 카스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이해하지 않는 것일까. 


덧붙이자면, 영화 종반 동생은 언니가 '보통이 아닌' 이유를 '보통'의 세상에서 찾고자 한다. 연애, 사랑, 이성애가 '보통' 그 자체인 세상에서 언니가 보통이 아니라면, 그 이유는 언니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꽤 심각한 장면인데도 반쯤 유머러스하게 연출된 이유는 동생이 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오는 기특함과, 그럼에도 느껴지는 동생의 사고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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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카스미는 크게 세 번의 만남을 가지고, 세 번의 고백을 한다. 


첫 번째는 맞선으로 만나게 된 '쇼'다. 친구로 시작했지만 카스미에게 연애 감정을 갖게 된 쇼에게, 카스미는 자신에 대해 첫 번째로 고백한다. 네가 아닌 누구에게도 연애 감정은 느끼지 않는다, 네가 싫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쇼의 반응은 차갑다. 카스미의 첫 번째 고백은 그렇게 '이해되지 않고' 끝났다.


두 번째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생 '마호'다. 마호는 카스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항시 말을 삼키는 카스미와 달리, 마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런 마호는 카스미의 고백에도 "그렇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준다. 공감해주지는 못하지만, 처음으로 카스미는 '이해받는다'. 마호와의 관계 속에서 카스미는 해방감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두려워하던 '보통'의 세상과 조금씩 맞서려는 용기를 갖게 된다.


카스미는 마호를 마치 '구원자'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모두가 자신에게 '보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마호만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호를 보며 "나도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카스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처음 만난 나의 이해자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었다. 


하지만 마호는 처음 바닷가에서 밀물처럼 나타났듯이, 사라질 때도 썰물처럼 갑작스럽게 카스미의 삶 저편으로 멀어진다.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마호에게 카스미는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지만, 그가 느꼈을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리라. 


그러나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람이 준 영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카스미 안에 생겨난 작은 용기는 마호가 떠난 이후에도 카스미 안에 자리 잡는다. 


마호의 결혼식에 축사를 부탁받은 카스미는 오랫동안 잡지 않았던 첼로를 꺼내 든다.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였기에 선택했던 첼로는 기나긴 세월 카스미의 목소리 대신이었다. 하지만 이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카스미에게 더 이상 첼로는 필요하지 않고, 카스미는 묵은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카스미가 마호의 결혼식에서 마지막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한 피날레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서곡이다. 그래서 더욱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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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미에게 큰 영향을 준 마호와의 만남 이후, 세 번째 만남은 직장의 새 동료인 '덴도'다. 덴도가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이 '연애'적인 관심인지 알아야 했던 카스미는 덴도에게 세 번째 고백을 한다. 덴도는 가타부타 말을 더하지 않고, 단순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당신이 궁금했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거창한 말 없이도 이해되고, 공감받은 순간이다.


세 번의 만남 끝에 카스미는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을 자아낸 사람이 쇼도, 마호도 아닌 덴도여서 좋았던 점은, 카스미가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이어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나와 너무 달라서 좋았던 사람도 아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 

 

마지막 장면,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카스미를 보며 울컥했던 건, 나 자신을 긍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계속해서 노력했던 우리의 주인공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보통'의 세상에서 '보통이 아닌'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카스미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래서 나도 함께 카스미를 응원하게 되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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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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