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끝없는 사유로 채워가는 삶 - 펜으로 쓰는 춤

그녀의 인생을 만든 건 수많은 질문과 성찰이었음을
글 입력 2023.07.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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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펜으로 쓰는 춤.jpg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공연예술, 특히나 무대예술과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무용과는 더더욱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무대예술이라는 특성상 한 번 무대가 지나가면 다시 보면서 곱씹을 수 없다는 점이 나에게는 다소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춤은 더욱 그랬는데,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인지라 몸짓과 표정 그리고 연출로 메시지를 전달받는 행위는 매 순간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한평생 한국인으로 한국식 교육을 받다 보니 정답을 찾는 일에 익숙해져 관객인 나의 몫으로 남겨지는 해석의 여백을 어려워했던 것도 같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무용과 무대예술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내가 익숙한 텍스트를 통해 전달받음으로써 앞으로 무용과 무대예술을 감상할 힌트를 조금 얻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책 페이지마다 가득 담긴 사유와 성찰 덕분에 저자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크기변환]사과.jpg

<그래서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공연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 덕분에 아무 배경지식 없이 접했을 때는 난해하다고만 느꼈던 <그래서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작품인지 어설프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저자는 작품을 통해 어떤 답을 전달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언어나 몸짓이라는 하나의 전달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만의 질문을 전달하고자 했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의 삶은 수많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그녀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인생의 부조리함이라고 느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부조리라는 단어를 알기 전조차 인생의 부조리함을 느꼈다고 언급한다.

 

 

부조리라는 개념 또는 단어를 인지하기 전에 이미 부조리한 세상의 단면을 보게 되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그렇게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당해 보였다.

 

p241

 

 

인생의 부조리함과 그에서 비롯되는 부당함으로부터 삶을 지키는 방식으로 저자가 택한 것이 끊임없는 질문이지 않았을까. 저자는 아프리카 여행 당시 운전을 대신 해준 현지사람 카보베르데인과의 대화에서 요즘 같은 세상에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본인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오래 고찰해 온 저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나만의 생각', '나다움'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 재미있고 많이 놀랐던 점은 저자가 책에 적어 내려간 생각들이 내 평소 생각과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책 첫 장에서 저자는 어떻게 하면 사회 규칙과 규범에 따르면서도 이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창조적인 개인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정확히 같은 지점을 나도 고민하고 있기에 책 내내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나도 나만의 답을 적어가며 책을 읽어 가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저자가 던진 수많은 질문 중 하는 일과 이루어 놓은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가정할 때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특히 오래 고민했는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내릴 수 있는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이름과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그저 존재하는 나를 소개하려면 남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 가치관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선 나 를 자주 돌아보며 스스로를 잘 찾아가고 있는지 성찰하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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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일을 좋아하는 저자답게 책 안에는 여행 혹은 작품을 접한 뒤의 감상이 담겨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난 뒤의 감상이나 프랑스 퐁네프 다리 위에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를 떠올리는 저자를 보며 여기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처음 접했던 작가나 작품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반갑기도 하면서 내 안의 세계가 서로 연결고리를 찾아 확장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싫어했던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저자는 여행을 좋아했다. 나는 여행은 짧은 시간 동안만 누릴 수 있게 때문에 진정한 내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저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여행은 본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즐겁게 존재하다 올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소유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아주 즐거운 존재함이다. 여행이야말로 존재론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소유하거나 어떤 자리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이다.

 

p268

 

 

저자의 생각과 사유가 가감 없이 담겨 있는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걸까 와 같은 어쩌면 다소 속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의 삶은 어떤 형태인지 항상 궁금해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접해보길 추천한다. 분명 책에서 만나는 저자의 세상을 통해 자신의 세상도 넓어지는 경험을 할 테니.

 

 

[국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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