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매력적인 사기꾼의 원본이 당신이군요, 리플리씨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를 보고
글 입력 2023.07.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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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증후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습관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을 진실이라고 믿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미국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 작 <재능 있는 리플리 씨> 소설에서 유래되었다.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탐하거나 사기를 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태양은 가득히와 같은 원작 소설을 공유하는 <리플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범죄 영화 <캐치 미 이프 유캔>,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기꾼과 FBI 요원을 다룬 드라마 <화이트칼라> 등에서 주인공은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렇듯 거짓과 사기는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는 것도 서슴치 않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의 시작이 어디었을지 늘 궁금해 왔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알랭드롱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영화 <태양을 가득히>에서 미디어가 소비해 온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기꾼의 원본을 만날 수 있었다. 



 

필립 그린리프와 톰 리플리


 

[크기변환]태양을 가득히.jpg

 

 

필립 그린리프와 톰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공부를 하러 로마에 간 필립이 공부는 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자 필립의 아버지는 톰 리플리에게 필립을 샌프란시스코로 데려올 것을 부탁하며 5천 달러를 약속한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필립과는 달리 톰은 여유롭지 못한 가정형편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톰은 약속된 5천 달러를 위해 필립에게 수모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주변에 머문다.  

 

필립의 계속된 멸시와 도를 지나친 장난 때문에 바다 한가운데 구명 보트에 버리지기도 한 톰은 필립을 향한 분노를 키워가게 되고 결국 필립을 바다 한가운데 요트 위에서 죽이고 그의 삶을 빼앗는다. 필립의 부,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의 약혼녀인 마르쥬까지 모두 본인의 것으로 만든 톰은 자신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필립의 친구였던 프레디에게 자신이 필립을 살해하고 그의 삶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되자 톰은 프레디 역시 죽인 뒤 그 죄를 필립에게 뒤집어 씌우는가 한편, 프레디 사망 사건을 조사하러 나온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필립을 죽일 때 훔쳐 나온 타자기로 필립인 척 마르쥬에게는 편지를 남기며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에 버렸다고 생각했던 필립의 시신이 요트에 매달린 채로 발견되며 모든 거짓말이 발각된다. 결국 톰이 벌여온 그동안의 범죄행각이 경찰에게 들통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미디어가 다루는 리플리 증후군의 원본


 

[크기변환]태양 3.jpg


 

사실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는 진짜 리플리 증후군이 아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이 거짓말로 만들어낸 세상이 진짜 진실이라고 믿는 인격장애다. 즉, 영화 속의 톰 리플리와는 다르게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톰 리플리는 자신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된 말과 행동을 계속해 나갔을 뿐 자신을 진짜 필립 그린리프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즉 진짜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미디어가 다루는 리플리 증후군의 시작이 어디었는지, 이미 태양은 가득히를 변주한 수많은 이야기를 접한 지금도 왜 이 영화가 원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느끼게 해주는 각본과 연출이었다. 이제는 다소 식상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는 톰이 거짓말과 임기응변으로 주변의 의심과 경찰을 따돌리는 스토리는 이 영화가 1960에 개봉됐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놀랍게 다가온다. 태양은 가득히의 스토리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여러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변주되어 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 또한 관객이 최대의 긴장과 스릴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다. 바다 한복판 요트에서 필립을 죽인 뒤 마치 바다에 빠질 듯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요트를 운전하는 톰의 모습을 카메라는 꽤 오랫동안 잡아준다. 톰의 표정에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아주 가까이서 그 모습을 담는데, 해당 연출을 통해 우리는 그가 느낄 약간의 해방감과 고양감 그리고 불안함과 당혹감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영화는 천에 쌓인 채 한 쪽 팔을 떨군 시신의 상태로 발견된 필립과 햇살이 쏟아지는 파라솔 밑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는 톰의 모습이 대비되며 마무리되는데 톰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끝나는 동시에 영화도 함께 끝이 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경찰의 전화를 받으러 가는 톰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가 앞으로 치르게 될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톰이 즐길 수 있었던 하늘 가득한 햇살은 아마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는 그가 저질렀던 죗값을 치르느라 태양을 자유롭게 마주할 일이 없었을 테니. 만개한 태양으로 해석되는 원제 'Plein soleil' 역시 이런 이유로 붙여지지 않았을까.

 

 

 

매력적이긴 하지만


 

[크기변환]태양3.jpg

 

 

국내에서도 작년 수지를 주연으로 한 드라마 <안나>를 통해 거짓으로 타인의 삶을 빼앗은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다. 계속해서 톰 리플리와 같은 인물을 다루는 이야기가 생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때론 톰처럼 나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삶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 드러낼 수는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검은 욕망을 리플리를 통해 대리 만족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그토록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그들은 대개 매력적이고 세련됐다. 그러나 그들은 세련됨은 그저 우리의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세련되고 멋있지만 거짓된 것을 택하는 그들의 몰락을 보며 어떤 것을 좇으며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케케묵은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어두운 욕망 한 개 쯤은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살지만 모두가 그 욕망을 쫓지는 않는 것처럼. 톰 리플리와 같이 멋있지만 거짓된 것을 가지고 싶어질 때 그의 마지막 태양을 등지고 경찰의 전화를 받으러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국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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