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치열하게 쫓는 낭만 -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도서]

글 입력 2023.07.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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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가 태어나서 20여 년 만에 처음 밟아보는 낯선 땅 미국에 와있다. 편안하고 안락했던 한국과 잠시 이별하고 도착한 낯섦과 새로움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자연스레 매일 영어와 스페인어를 접하고 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꽤 되었는데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정말 한국이 아닌지, 내가 경험했다고 생각한 비현실적인 오랜 비행은 혹여나 한여름 밤의 꿈은 아니었는지 현실을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다.


책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를 읽으며 작가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자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이유이며, 활자 너머로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하며 이방인 생활에 위로가 되어주었다. 한편으로는 작가의 삶을 들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나마 초등학생 때부터 접하며 익숙한 영어도 아닌 외국어로 외국어를 배우는 삶은 어떤 것일까? 


영어와 예상하지 못한 스페인어로 둘러싸인 생활이 시작된 후로 내 곁에 한국인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외국에 산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책을 펼치고 첫 장에 담긴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언어를 배우려는 좋은 마음 앞에 발생한 즐겁지 않은 상황처럼 말이다. 


작가가 영어 다음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배운 프랑스어와 최근에 관심을 갖고 배우며 책의 소재가 된 이탈리아어는 모두 내가 이번 해외 생활을 앞두고 배우고 싶던 언어이다. 프랑스어는 좋아하는 한국 가수를 통해 자주 접하며 발음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게 매력적이라 궁금한 언어였고, 이탈리아어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미국 배우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라 꼭 한 번 배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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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일찍이부터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긴 시간을 보내던 중, 나보다 먼저 외국에서 수개월을 보낸 한 친구가 재밌어 보이는 앱을 통해 언어 공부하는 것을 보았고, 그 부근에 같은 앱을 이용하는 친구들을 더 발견했다. 무료로 기초적인 어휘부터 짧은 문장을 만들 수 있게 학습하는 이 앱을 발견하고 나의 남은 올해에 필요한 영어와 관심을 갖고 있던 4개의 언어를 학습 목록에 추가했다. 


영어와 함께 학습하고자 선택한 4개의 언어는 작가가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 더불어, 스페인어와 독일어이다. 이 중에서 영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공부한 언어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영어만큼 자주 접하게 될 거라고(그래서 공부를 미리 하면 좋을 것이라고) 안내받은 스페인어이다. 한국 살면서는 중요성을 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마나 들으려나 싶었는데 정말 일상 중에 매일 듣고 있다. 


길을 다니면서도 스페인어가 많이 들리지만 생활하는 공간 속에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미국이 지리적으로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와 맞닿아 있는 영향인가 싶었지만 찾아보니 스페인어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언어 인구가 중국어에 이어 제2위에 해당하며, 국제연합의 6개 공용어의 하나로 지정된 언어라고 한다. 스페인어의 국제적인 위상은 책에서도 나타난다. 


 

스페인어를 못 하는 사람은 이 반에서 나뿐인 것 같았다. (...) 내가 우리 반 사람들보다 이탈리아어 배우기에 느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들 중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안다는 라틴어는 이탈리아의 근원이 되는 언어이고, 스페인어는 가끔 자신들도 헷갈린다고 할 만큼 이탈리아어와 아주 유사한 언어라니까. 


책 46-47쪽

 

 

놀라웠다. 더욱이 헷갈릴 만큼 이탈리아어와 유사한 줄은 알지 못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한 후에 나도 곽미성 작가처럼 이탈리아어에 관심을 갖고 배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한국어는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언어라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해외에서 지내면서 다른 언어와의 연관성이 있는 로망어군에 속하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가 조금 부러운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생각나는 비슷한 말은 내가 스페인어에서 배운 'please'를 뜻하는 말이 'por favor'였는데, 이탈리아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per favore'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한 번에 4가지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싶었던 때에 진도를 구분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언어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언어 초보자가 배우는 단어는 많은 언어에서 겹치는데 발음이 비슷하니 하나를 제대로 배우기로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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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곽미성 작가가 너무 멋있고 대단하고 그 주변에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명씩 어떤 배울 점이 있는지 소개하면서 글을 전개하고 싶다. 


먼저 '장프랑수아'이다. 그는 교사이자 작가이며 라틴 문화가 좋아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곽미성 작가가 처음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만난 장프랑수아는 작가와 함께 반에서 쌍벽을 이루는 열등생이었다. 첫 수업 때 곽미성 작가는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수업이 어려워도 설명을 다시 듣고 싶다는 표현을 어려워했다. 그때마다 그는 어려운 순간마다 질문을 던져 수업 진도를 늦춰주었다.


두 번째 인물은 곽미성 작가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 여행을 자주 갔는데 그의 남편에게 대부분 이탈리아어를 의존해왔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게 전부인, 전혀 유창하지 않은 이탈리아어 실력임에도 그는 이탈리아 말을 잘 알아듣고 할 말을 어떻게든 할 줄 알았다. 두 사람의 시칠리아 여행에서 곽미성 작가는 유창하지 않은 실력으로 소통하는 비결을 확인했다. 


외국어에 긴장을 갖지 않고 소통의 목적 하나만을 생각하며 노력하는 것이다. 언어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단어를 학습한다. 하지만 학습한 내용을 실전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출력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의 영어로 예를 들면 초등학생 때부터 현재까지 영어를 긴 시간 배우면서 배운 단어가 5,000개는 넘을 것인데 실제로 내가 소통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단어가 출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소통에 있다. 내가 출력하고 싶은 단어가 그 순간 떠오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단어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단어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곽미성 작가는 한 번 막히면 언어에 대한 심적 거리감과 부담으로 입을 열기 전에 습관적으로 포기하고는 한다. 그의 남편은 다르다. 이탈리아어로 멀미약을 몰라도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여 멀미약을 무사히 얻었다.


 

언어의 궁극적 의미는 소통에 있으므로 외국어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만 단련되고 길들일 수 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계속 체념하고 소통을 포기하다 보면, 때는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책 75쪽

 


다음에 소개하고 싶은 인물은 '랑'이다. 한 공간에서 동양인이 보이면 더 눈길이 가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데 10월에 시작한 이탈리아 문화원 두 번째 수업에서 만난 랑이 그랬다고 한다. 중국에서 프랑스를 왔고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운다고 한다. 그는 곽미성 작가가 첫 강의 수강할 때의 혼란스러움이 떠오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은 잘 따라오지 못하는 랑에게 더 질문을 많이 했다. 


10월 첫 수업이 끝나고 랑은 선생님과 시선이 마주치고 풀 죽은 목소리로 "너무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격려하고 위로했는데 작가는 그 순간 불과 6개월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누구에게 티 내지 않고 혼자 다른 강의를 더 찾아보던 시간, 수업이 부담되고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순간들을 생각했다. 왜 작가는 랑처럼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았을지 자문한다.


나는 어떠한가.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미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용기 내 도움을 요청했던 순간을 찾아보려고 애써본다. 주변에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어려움에 맞서려고 빳빳해지기보다 랑처럼 자연스럽게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손을 내밀면 된다는 것을 랑을 통해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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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등장인물 중 누구보다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인물은 곽미성 작가이다. 어린 나이인 10대 후반에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나 그곳에서 대학 학위를 받으며 20년 넘게 지내고 있다는 것부터 대단한데 이제는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으로 회사를 다니며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어쩌면 나는 이탈리아 문화원 강의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멈췄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단추부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4월 강의를 수강한 이후로 꾸준히 이탈리아어와 일상 속에서 함께 했다. 흔히 공부할 때 자투리 시간 활용이 핵심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하는데 곽미성 작가는 출근길과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길을 모두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있는 이탈리아어 수업을 위해 시간을 쏟았다. 그러는 중에 읽고 싶은 책과 써야 하는 글이 존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언어를 더 학습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어학연수도 갔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전 이미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하루에 사실 빈틈이 아주 많음을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그 틈을 쪼개면 쪼갤수록, 시간은 계속 만들어졌다. 틈새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움도 느꼈다. 나는 공간의 소유보다 시간의 소유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책 57쪽


 

책을 읽으며 낭만적인 삶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생각했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문화원 수업을 들으면서, 볼로냐로 어학연수로 떠나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일상에 필요에 의해 배우기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작가처럼 삶을 영위하는데 큰 영향이 없는데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쇠를 얻는다는 것은 나에게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곽미성 작가가 프랑스 대학 시절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현실로 이룬 것처럼 나도 그처럼 치열하게 나의 낭만을 쫓고 싶은 마음에 두근거림을 느낀다. 우선 스페인어이다. 현실에 영향을 주는 언어라 아직 낭만적이지 않지만 이렇게 서서히 낭만을 찾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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