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당탕탕, 일본 온천 도전기 [여행]

글 입력 2023.07.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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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1월에서 2월로 넘어갈 무렵. 친한 동기 세 명과 함께 짧은 일본 여행을 떠났다. 오사카와 나고야 두 도시를 아우르는 이번 여행은 오사카에서는 관광의 향기를 흠뻑, 나고야에서는 한적한 여유를 한껏 누리는 구성이었다.

 

오사카는 예상했던 대로 한국인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만큼 보고 즐길 거리가 넘쳐났다. 나고야는 관광객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고 적절한 고립감을 느끼며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나고야에서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온천에 대한 추억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

 

일본이 온천의 나라인 만큼 여행 동안 한 번쯤은 온천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마땅히 갈 만한 온천을 확정하지 못했던 참에 나고야 숙소 주인이 남기고 간 ‘나고야 여행 추천’ 팜플렛을 발견했다. 숙소 주변에 있는 식당과 관광지, 볼거리와 온천을 지도 위에 표시해둔 설명서였다.

 

‘키타노유’ 온천은 숙소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거리였다. 우리들은 간단히 짐을 챙겨 밤길을 떠났다. 우린 대학생이고, 일본은 택시가 비싸고, 대중교통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었기에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사람이 없는 일본의 밤거리를 처음 걸어봤다. 나고야, 특히 우리 숙소가 있던 지역은 해가 떨어지면 한적했고 우리는 도로를 자유롭게 활보했다. 낯선 나라에서 한국어로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일본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아파트의 모양 같은 평범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관찰하며 한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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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떠들어대던 개그 소재도, 추억 팔이도 동나기 시작할 무렵 도로가 끝나고 커다란 다리가 나왔다. 큰 차들이 쌩쌩 지나갔고 무언가 잘못된 예감이 들었다. 온천에 가는 길이 이토록 험해도 되나? 우리가 길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 의문을 던지던 그때였다.

 

다리가 끝나는 강 건너편, 새까만 칠흑 속에 화려하게 빛나는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곧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가 생각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센이 앞에 나타난 거대한 온천 건물을 보고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건물은 대략 4층 정도 되어 보였고, 들어서자마자 로비에 수많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어 한국의 백화점 푸드코트가 생각났다. 찜질방 옷과 유사한 복장을 입은 일본 가족들이 단란하게 앉아 벤토와 파르페를 먹고 있었다.

 

이후 일본어만 하는 직원에게 바디랭귀지로 사용 방법을 묻고, 티켓 뽑는 걸 도와준 일본인 커플에게 감사를 표한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탕 안에 들어갔다. 로비부터 온천 내부까지 외국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온천이 아닌 현지인들의 온천에 온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온천의 구조는 실내 온천과 실외 온천이 나누어져 있었다. 실내 온천들은 몸을 씻을 수 있는 부스 옆에 탕들이 서너 개 붙어 있는 구조였는데 우리나라의 목욕탕과 흡사했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쓰는 것까지 똑같아 한국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야외에서 1월의 찬 공기를 맞으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노천탕은 정말 천국 같았다. 노천탕 중에는 한국에는 흔치 않은 모양의 온천들도 많았다. 우리들은 가장 일반적인 노천탕에서 얼굴만 빼꼼 내놓고 주변 일본인들의 행동을 관찰했고, 각 온천의 사용법을 어렴풋이 이해하고서 다양한 탕에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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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박소은

 

 

한국의 정자를 닮은 구조물 밑에 있던 다다미 노천탕은 물에 잠긴 다다미 위에 누우면 몸의 반은 따듯한 물속에, 나머지 반은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 놓인다. 물이 얕기 때문에 물속에 잠기지 않은 부분은 춥지 않을지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뜨거운 온천과 밤공기의 조합은 편안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자주 가슴이 답답해지곤 하는데 이 온천에선 적당한 훈기와 나른함을 즐길 수 있었다. 몸의 반만 물에 잠기다니, 이것이 바로 단어 그대로의 반신욕이 아닌가 생각하며 홀로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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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박소은

 

 

야외 온천에는 커다란 바가지 속에 계속해서 온천수가 공급되는 형태도 있었다. 바가지는 총 세 개뿐이었는데 한 번 바가지에 들어간 사람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빈자리가 생긴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빈자리를 차지했기에 바가지 온천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빈자리가 생겼고, 곧장 바가지 속으로 몸을 구겨 넣은 나는 왜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토록 오래 몸을 담그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은 중력을 거부하고 두둥실 떠올랐고, 더운 김이 나는 온천물은 너무나 편안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

 

가만히 온천을 즐기다 보니 우리가 자연스럽게 일본 사람들의 틈에 섞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머니들은 TV를 보며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몇 사람들은 일본 드라마에서 봤던 대로 수건을 가지런히 접어 이마에 얹었다. 사람들이 노천과 노천 사이를 건너다닐 때 수건으로 몸을 꼭 가리는 것도 어느새 눈에 익숙해졌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소한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문득 발견하는 사소함 들은 이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솔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 온천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일본에는 실제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온천처럼 모양이 다양한 온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또 일본 사람들은 온천 안에서도 몸을 가린다는 소소한 사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온천에서 잔뜩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밤하늘 아래 놓인 다다미에 누워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소한 새로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잔잔한 행복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행은 작은 것에서도 다양한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사소함이 충분히 나를 새롭고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용기를 내서 일본 온천에 도전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목욕 한 번을 통해 우리는 난생처음 보는 온천에 영어 없이 무사히 들어왔고, 온천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행동을 잘 관찰하여 걸음마 배우듯 따라 했다. 일상 속 나 자신이 무뎌졌을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곳의 새로운 사소함이다. 다음 여행도, 새로운 나를 만들어줄 사소함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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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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