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제적 작가의 픽셀을 찾아서 [미술/전시]

황규태 : 다양다색 60년
글 입력 2023.07.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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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작가'란 무엇인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문제적남자 시즌2>와 같은 토크 쇼가 상단에 뜰 뿐, 정확한 의미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해당 수식어가 따라붙는 작가들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했다.

 

대표적인 문제적 작가로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들 수 있다. 마침 용산구 이태원로 리움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활황이다. 특히 바나나를 회색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은 <코미디언>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작품이다. 별다른 것 없는 바나나가 2019년 아트페어에서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개념 미술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화두에 오르고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경우 섹슈얼리티, 동성애, 마조히즘 등 금기된 것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문제적 작가'라는 수식을 얻었다. 굵은 쇠사슬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나, 오브제화된 남성의 성기를 찍은 연작들은 보수적이던 1980년대 후반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그의 작품들은 외설과 예술의 사이를 넘나드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무라카미 다카시, 산티아고 시에라와 같은 작가들이 '문제적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과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이 '충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작품을 보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대립하기도 한다. 전시회장은 순식간에 토론의 장이 된다. 이렇게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문제적 작가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제적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국의 작가를 충남 천안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한국의 '문제적 작가'


 

황규태 작가는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경향신문사 사진기사로 일하다가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60년대에 정식으로 데뷔한 황규태 작가는 필름을 태우거나 다중 노출을 시도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진행했다. 이때부터 '문제적 작가'에 황규태라는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1만 6천여 대의 컴퓨터를 보급하는 80년대가 된다. 이 시기에 작가 역시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기존의 아날로그 몽타주는 디지털 몽타주로 발전했으며, 콜라주, 합성 등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90년대부터는 컬러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픽셀'이 작가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디지털 이미지 속에 존재하는 무한하고 선명한 점에 매료된 작가는 현재까지도 관련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와 동시에 발전해 온 황규태 작가의 발자취가 다시 충남으로 돌아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감상은 아래와 같다.


 

 

사물의 증폭을 통한 허풍 'Panacea'



열다섯까지 알약을 잘 넘기지 못해 애를 먹었다. 나이가 몇인데 알약을 못 먹냐는 핀잔과 함께 애꿎은 냉수만 삼켜내다가 결국은 딸기 맛 물약을 받아오기 일쑤였다. 커다란 타이레놀을 두 개씩 삼켜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보니 작은 알약에 끙끙대던 시절이 조금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Panacea.jpg

 

 

하지만 황규태 작가의 Panacea 보자마자 어린 시절 알약을 보고 느꼈던 압도감을 다시 체감할 수 있었다. 손바닥에 열 개도 움켜쥘 수 있는 알약이 사람보다 더 큰 사이즈로 확대되어 있었다.

 

커서는 안 되는 캡슐 알이 비현실적으로 증폭된 것을 보니 기묘하고 이상했지만 동시에 우습기도 했다. 알약의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자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족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것들이 상대적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상대적인 것이 '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작가는 알약, 물방울, 알약과 같이 작은 물체를 촬영한 뒤 이미지를 거대하게 확대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확대되거나 축소된 작품들을 보고 우리는 생명이나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픽셀처럼 복사된 맞춤형 아기 'Reproduction_baby'



미를 탐닉하는 그의 태도는 진지하고 미적 규범에 한정되기보다는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는 그것과도 같이 자유롭고 제한이 없다. 동시에 황규태 작가의 작업에는 사회를 향한 작가의 시선이 기저에 깔려있다. 시대정신에 입각해 환경 문제, 기술 재난, 인류의 종말 등 사회를 향한 우울한 시선이나 비판적 시선을 담아내거나, 혹은 일상을 살아가는 불특정 대상이나 자연에 대한 지극히 감상적인 시선들을 담는다. (출처: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전시를 주도한 갤러리에서는 황규태 작가를 위처럼 소개하고 있다. 위의 설명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작품이 바로 Reproduction_baby라고 생각한다.

 

 

REPRODUCTION_BABY.jpg

 

 

이 작품만큼은 작가의 의도를 듣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느끼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다들 비슷한 감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는데, 한국 사회의 '눈치'를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곁눈질하는 아기들의 표정이 그랬다. 남의 기분이나 상태를 몰래 살필 때 보이는 대표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의 아기가 모두 동일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부분이 엿보였다. 우리는 많은 참견을 들으며 자라나는 동시에 남에게 쉽게 훈수를 두기도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 속에서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개성은 사라지고 모두가 동일해지는 현상을 담아낸 작품 같다고 느꼈다.  

 

 


우리가 흑백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 'blow up'


 

더 이상 '컬러'는 특별하지 않다. TV는 얼마나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광고하고, 각자의 스마트폰에는 렌즈가 달려있다. 우리에겐 언제든 색을 포착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다.

 

하지만 한참 전에 주류에서 밀려난 흑백이 사랑받기도 한다. 컬러가 당연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흑백 필터를 사용하고 흑백 영화를 감상한다. 또는, 오래전에 찍힌 흑백 사진을 벽에 걸어 전시하고 그것을 보러 방문한다. 아라리오 갤러리 2층에서 흑백 사진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목을-입력해주세요_-001 (1).jpg

 

 

계단을 타고 올라간 곳에는 60년대 한국전쟁 시기를 작가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표현한 사진들이 있었다. 흑백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시절에 찍힌 사진들이었다. '흑백 사진'이라는 키워드가 제자리를 찾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의 모습이 담긴 위의 사진이다. 무언가를 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넘어지기 직전인 것 같기도 했다. 혼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영원히 해당 사진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진의 주인공은 얼굴조차 식별하기 어렵고, 관련된 설명도 붙어있지 않다. 전시회장을 나와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호기심을 해소할 수 없는 실정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모호한 순간을 더욱 함축적으로 표현 흑백 사진을 보며 상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황규태 작가의 작품들


 

해당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들로 구성되었다. 여기까지 글을 읽어내린 이들은 작품을 보며 전혀 다른 느낌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갔던 지인은 reproduction_baby를 보고 기괴하고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사실 필자는 해당 작품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지인은 Untitled를 좋아했다. 부엉이가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인상 깊은 작품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량 생산된 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처럼 황규태 작가의 작품들은 관객으로부터 다양한 감상을 끌어낸다. 이번 주말, 시간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서 서로 다른 감상평을 나누어 보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보는 세상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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