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집꾸의 이상과 현실

하고 싶은 것과 지금을 조율해나가는 것
글 입력 2023.07.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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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꾸민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에 이사하며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가구들을 보내줬다.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입김이 첨가되지 않은, 순도 100%의 내 방 꾸미기 기회가 찾아왔다.


집 꾸미기가 대유행이던 시절, 물밀듯이 쏟아지던 인테리어 사진을 구경할 때는 몰랐다. 방을 꾸민다는 건, 거의 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 맞먹는 일이라는 걸.


나의 상황부터 짚고 가자면 이렇다.


구매력 100%

실제 가구 구매 경험 1%

꿈의 방 상상력 200%

가구 배치 경험 5%


그래도 오늘의집과 유튜브 열심히 보면서 애썼다. 방 평수에 맞춘 가구 배치, 길이 계산, 컨셉에 맞는 컬러 구상, 가격 비교…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이름 좀 날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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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상했던 방은… 그러니까 방상상씨는 방현실씨와 달랐다. 처음 가구를 구매하던 때로부터 한 달이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야무지게 알아보고 산 의자는 키가 높고 불편해 매일 내 다리를 아프게 하고, 후기가 3,000개가 넘는 국민 토퍼는, 허리를 한 번 삐끗한 후에는 내 허리를 더 잡아먹는다. 흰색으로 통일시키려 했던 가구들은 아이보리와 크림이 섞여 불협화음을 내고, 선반에 차곡차곡 넣으려던 팬트리 수납함은 0.5mm의 오차로 들어가질 않는다.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던 기대감이 시시하게 꺼졌다. 방을 꾸미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갔기에 품을 들인 만큼 나는 울적했다.


그런 나를 보고 집 꾸미기 대선배일 부모님은 말했다. 네가 꼼꼼히 못 알아본 탓이라기보다는 안 해봤으니까 그런 거지.


안 해봤어도 열심히 준비하면 그만큼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그 말에도 위안받지 못했다.


오합지졸. 사람들이 말하는 보장된 구조, 좋은 아이템, 예쁜 것들을 열심히 조합했던 처음 한 달의 방은 딱 그 단어에 어울렸다.


맥이 풀렸다. 온종일 휴대폰만 붙잡고 가구를 보던 것도 내려놓게 되었다. 원래 집중해야 했던 취업 준비에 매진하며 그냥 이따금, 남는 시간에 계속 방 꾸미기를 수정했다. 꼭 들어맞아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던 마음은 내려놓고, 상황에 맞게 구상을 바꿨다.


이사한 김에 얼른 나의 예쁜 방을 완성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문제였을까.


시간이 지나니 방상상씨와의 합의가 쉬워졌다.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들은 방현실에 맞게 조정됐고, 그게 오히려 안정감 있는 모양새가 되어갔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방상상씨와 방현실씨는 다르다. 방상상씨보다 좀 멋없고, 허술하지만 나는 이제 내 방이 마음에 든다.


상상은 사실 내가 원하는 현실 이루기 위한 ‘추진력’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하나 꾸미는 데에도 나는 상상과 지지고 볶다가 결국 마음에 드는 현실을 만들었으니까. 상상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상상을 실현해 보고, 그러다 실패하고 그 실패에 분노하고 다시 시도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거였나 보다.


이 조그마한 방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다니. 남들이 보면 웃길 일이다.


그런데 방이라는 게 정말 그만한 힘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한 세계라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니까. 방은 그 세계를 담을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방을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고도 했다. 어쩌면 나는 단순히 방을 꾸미는 게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를 조율하고 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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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바꾸고 싶은 토퍼 위에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새 이불을 덮고 잠을 잘 것이다. 내일은, 한 달 뒤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안정감 있는 방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득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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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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