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인의 고유한 시각으로 바라본 호퍼 [도서]

<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글 입력 2023.07.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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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은 사회상의 기록도, 불행에 대한 은유도 아니다. 또한 미국인의 심리적 기질 같은 어떤 조건들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부정확하기는 마찬가지다. 호퍼의 그림은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가상 공간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것이다. 


 

<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는 저자 마크 스트랜드가 시인으로서 고유한 시각으로 바라본 호퍼의 그림에 관해 쓴 책이다. 호퍼의 그림은 우리가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본 광경 혹은 여행을 다니며 한 번쯤 경험해 본 것 같은 일상적인 순간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들여다볼수록 생경한 시간의 흔적을 보는듯한 묘하게 '낯선' 느낌을 준다.

 

우리는 왜 이러한 호퍼의 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찾아가는 접근 방식으로 회화적 요소에 초점을 두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더불어 호퍼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기하학 양식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으로 작용하는지에 관한 특별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

 

 

 

파도,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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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상하는 이야기가 제자리를 잃고 너무 멀리 가버리면 그림의 기하학이 우리를 속으로 불러들이고 그림의 기하학이 시들하게 느껴질 때쯤이면 다시 서사의 가능성이 제자리를 주장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그들의 시선은 왜 하나같이 부표에 고정되어 있을까? 부표와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인가? 아니면 배 옆으로 살짝 비껴갈 것인가? 와 같은 물음을 던지며, 조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한다. 

 

그의 그림 속 서사성의 부재는 그림을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곧이어 우리의 시선은 옮겨지며, 이상하리만큼 정적인 광경과 파도의 형상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은 단단한 물살, 그리고 정지된 느낌의 배는 어쩐지 부조화스럽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것이 방금 전 우리의 상상을 홀연히 사라지게 만든다.

 

이처럼 호퍼의 그림은 서사의 흐름을 상상하며 빠져드는 동시에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생각을 멈춰버리는 회화적인 기하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 


  

 

나이트호크,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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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작품에서는 이 두 개의 상반된 명령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동시에 머무르게 하는-가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 긴장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저자만의 고유한 시각 -떠남과 머무름의 역설-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그림은 ‘나이트호크’이다. 저자는 등변사다리꼴 형태인 창문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유리 표면을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다리꼴이 수렴하는 쪽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가로등 밑으로 사다리꼴의 유리를 따라 길게 펼쳐진 길은 우리가 가던 길로 계속 가도록 자연스레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그림에서 다이너 안으로 들어간다기보다 그 옆을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어둡고 고요한 거리 속 환한 실내는 우리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머물 것을 넌지시 권한다.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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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시선을 빌려 아침 햇살을 들여다보았다. 호퍼는 그림을 그릴 때 햇빛을 가장 중요시하였다고 한다. 그림 속 여인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햇빛은 오로지 여인을 위한 빛으로 보인다. 여인은 밖에 있는 무언가를 집중하여 응시하는 것 같기도,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사색은 그녀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비추는 햇빛은 오로지 그녀를 향해 있다. 그림 너머에 있는 존재가 그림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창밖 너머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동시에 우리는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가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녀를 '보고' 있다. 사람 이야기의 부재와 기하학적인 요소는 역설적인 조화를 이루며 우리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초월적인 시각을 선물해 준다.

 

 

 

'보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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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사건들로 채워질 장소로서의 빈 공간이 아니다. 즉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그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어두움은 우리가 그림을 보며 생각해 낸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어나 있다고 말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까지 예술 작품을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어'난 형태로 감상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우리에게 예술 작품을 '보는 행위'를 다양한 차원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관찰의 기회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마크 스트랜드의 고유한 시각을 통해 예술 작품을 들여다보는 전반적인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예술적 접근 태도를 배우게 된다. 이어서 그는 우리에게 어떠한 우리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그림을 마주할 것인지 묻는다.

 

당신은 어떤 시각으로 호퍼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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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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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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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영
    •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너무 좋은 글이라 책에 대한 흥미가 더 생기는 것 같아요 한 시인이 호퍼를 바라본 시각이라니 참 흥미로워요 좋은 글과 책 추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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