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빠의 첫사랑을 구경하듯이 [영화]

허광한과 장약남의 <여름날 우리>
글 입력 2023.07.0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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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4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트가 떠다니는 이모티콘을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 통화를 건다. 심지어 아이폰 사용자끼리는 통화료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가끔 아날로그적 낭만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한 <여름날 우리>는 그런 갈증을 해소하게 해 주는 영화였다. 첫사랑의 순수함과 당시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조화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비교적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화가 많아진 요즘, 과거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빠의 오랜 앨범에서 발견한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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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우 샤오치(허광한)가 짝사랑하는 요우 용츠(장약남)를 위해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이 그랬다. 생일에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불꽃놀이를 가지 못하게 된 요우 용츠를 위해 준비한 폭죽이었다. 그런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경에 이끌린 사람들이 기숙사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로맨틱한 분위기에 용기를 얻었던 걸까. 어느 한 사람의 외침을 시작으로 사랑 고백들이 이어진다.

 

"앞으로 몇 년이 흘러도 그녀가 이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길. 그녀가 기억하는 장면 속에 내가 없더라도."

 

하지만 정작 불꽃놀이를 준비한 저우 샤오치는 고백하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있는 요우 용츠를 곤란하게 하는 대신 위와 같은 독백을 남기고 돌아가 버린다. 저우 샤오치는 순수하게 요우 용츠의 행복을 바란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당시의 시대 배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대가 없고 순수한 사랑을 보며 마치 부모님의 숨겨진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아보지 못한, 혹은 너무 어려서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에 대한 환상에 푹 빠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너의 결혼식>을 봤다면 익숙할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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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의 여름에서부터 시작되는 <여름날 우리>는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는 별다른 각색 없이 원작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간다.

 

친구들과 싸움을 하고 다니는 게 취미인 저우 샤오치는 전학 온 요우 용츠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요우 용츠가 남학생들의 고백에 시달리는 걸 본 그는 '가짜 연애'를 제안하고, 해당 키워드에서 늘 그렇듯 둘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앞으로 펼쳐질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전개를 기다리는 와중에 요우 용츠가 떠나버린다. 순식간에 첫사랑을 놓쳐버린 저우 샤오치와 함께 당황하는 순간이 영화의 진정한 시작점이다.

 

이처럼 <여름날 우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들이 '그럼에도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까지 잔인하게 재현해 버리는 영화다. 총 네 번의 이별이 반복된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캠퍼스에서 청바지를 입고,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둘은 모든 순간에 여지없이 이별하며 관객의 동요를 끌어낸다.

 

그런데 흥행 성적에서 두 영화는 흥미로운 차이를 보인다. 2018년에 개봉한 원작 <너의 결혼식>은 280만 관객을 기록한 반면, 중국에서 리메이크한 <여름날 우리>는 4,420만 관객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앞서 말했듯 동일한 스토리와 결말을 가진 리메이크 영화다. 당장 생각나는 차이점이라곤 원작에서 김영광이 멋있게 대신 맞아줬던 우유를 허광한은 뒤집어썼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면 <여름날 우리>가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뭘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고심한 결과, 영화의 '청량함'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여름날의 첫사랑을 청량하게 담아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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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김치찌개 맛집이듯, 중화권 나라에서는 하이틴 영화를 기막히게 찍어낸다. 한때 여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가 그렇다. 창가 자리에 앉은 배우들은 자연광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는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우리의 첫사랑이 된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면과는 별개로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처음이기에 서투르고 미숙한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기를 택한다.

 

<여름날 우리> 역시 첫사랑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먼저, 이 영화는 여름의 초록색보다는 파란색에 집중하며 화면을 시원하게 적신다. 남자 주인공에게 수영선수라는 설정을 부여한 뒤 시원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버린다. 뭔가가 시작될 듯 간질거리는 장면은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극의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여름의 푸른 순간들이 그대로 포착되어 첫사랑 이야기의 배경으로 쓰인다.

 

하지만 여름이 항상 아름답지는 않듯이. 사랑도 구질구질하거나 비참한 순간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안타까운 순간들마저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요우 용츠는 항상 자신의 옆을 달처럼 공전하던 저우 샤오치를 일찍 알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저우 샤오치는 철없는 순간의 행동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게 된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이 악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우 용츠와 저우 샤오치는 사랑을 지켜내기에 너무도 미숙한 순간에 시작되었을 뿐이다.

 

 

 

사랑은 타이밍, 하지만 서투르기에 더욱 아름다운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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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요우 용츠가 유학을 갔던 이탈리아에서 돌아오고, 저우 샤오치가 체육 교사가 된 뒤였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성숙해진 뒤에 만났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요우 용츠의 손을 잡은 사람이 저우 샤오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시절에만 존재할 수 있는 추억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함께 학교 담을 넘은 뒤 달려간 꼬치구이 가게에서 웃고 떠들거나, 경찰서 철창 안에 나란히 갇혀 실소를 터트리진 못했을 것이다.

 

특히 커리어를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폭우 속을 가로지르는 일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든다. 철이 없는 만큼 무모하고 맹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40대의 저우 샤오치도 자신의 인생을 죄다 던져버리고 요우 용츠에게 달려갈 수 있었을까?


 

<여름날 우리>는 우리들의 미숙한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요우용츠, 널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어."

 

행복한 결말이 아님에도, 오랜 꿈을 잃었는데도, 남은 것은 둘 사이에 남은 기억뿐인데도 불구하고 저우 샤오치는 그렇게 고백한다. 요우 용츠 역시 저우 샤오치와의 만남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서투르지만 그만큼 순수했던 마음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귀한 경험으로 남을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미지 출처: <여름날 우리> 공식 스틸컷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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