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 [영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글 입력 2023.07.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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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답다는 것


 

‘영화적’이란 건 무엇일까. 극적인 재미? 명확한 플롯? 유려한 미장센? 아니면 그 모든 것? 그렇다면 그러한 극적 요소를 지우고, 일상의 한 단면을 그대로 베어 옮겨 놓은 듯한 작품은 영화의 범주에 놓일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시각을 견지하는 편이다. 영화는 결국 근거리의 삶으로부터 길어 올려지고 기원할 수밖에 없기에, 별다른 스펙터클 없이 평이하게 흘러가는 작품 역시 당연히 영화의 범주 안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작품과 일상, 인물과 관객의 경계를 초월한 공명을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늘 그런 영화들이 반갑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 대한 내 애정을 피력하기 위해 에둘러 적느라 서론이 좀 길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축에 가깝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여름 방학을 맞이한 남매가 아빠 그리고 이후 합세한 고모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 모여 지내는 동안의 시간을 스크린에 옮긴다.

 

앞서 언급했듯, 화려한 스펙터클도 없고, 어쩌면 심심한 서사일 뿐인 이 영화에 끌리는 이유는 오히려 그렇기에 보편의 소시민적 기억을 소환해낸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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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가족


 

‘여름’이라는 계절을 여러분은 어떤 색으로 기억하는가. 수목의 초록빛, 뙤약볕의 눈부신 광선, 바다의 푸른 청록 같은 색감이 스치겠지만, 이 작품에서 강조되는 건 오묘한 보랏빛이다. 화사하지도 청량하지도 않지만 계속 응시하게 되는 빛깔. 영화에 이입하다 보면 그 빛이 곧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발하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명으로도, 암으로도 치우칠 수 없는 빛깔의 관계. 지금껏 이 같은 가족 영화의 테마에서는 거의 대부분 온정을 무기로 모든 갈등이 무마되고, 온전한 화해에 도달하는 클리셰가 문법처럼 쓰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관계에 대한 피상적 접근에서 나아가 가족이라는 집단을 애써 다듬지도, 뭉뚱그리지도 않은 채, 해부하고 들여다본다.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만들어내는 사랑스러운 잡음, 외출할 때 손에 쥐여주는 방울토마토의 온기와 미소, 투닥거리던 남매가 라면을 끓이며 나누는 귀여운 사과 같은 다정한 감각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의 폐부를 찌르는 날선 말들로 생채기를 내거나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한 갈등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자의 모난 면들도 보인다. 그렇게 온정만으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미세한 공기가 내내 뿌옇게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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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명해지는 순간


 

사람은 상처와 고난을 통해 더욱 성장한다는 상투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지점을 통과하며 유독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는 데에 동감하고, 나는 그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제목에서 ‘남매’라는 단어는 옥주와 동주의 입장을 고르게 대변하는 것처럼 읽히지만, 실상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건 누나인 옥주다. 영화는 남매와 친모에게 얽힌 사연을 명확히 짚어주진 않지만, 아마도 엄마는 어떠한 계기로 가정에서 이탈한 듯하다. 마냥 천진한 동주는 어른들의 속 사정을 알리 만무하고 엄마가 건네는 선물도 덥석 받아든다.

 

한편 동생 동주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감지하게 된 옥주에게 남매를 두고 떠난 엄마는 애증의 대상이다. 엄마를 미워하고 동생을 나무라던 옥주의 진심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꾼 꿈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자신이 바랐던 것은 엄마의 존재였다는 것,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먹고 웃는 일상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한편, 아빠와 고모는 어린 남매의 중년 버전 같은 인상을 준다. 허울 없이 친밀한 남매인 듯 보여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선을 긋던 그들도 상실을 맞닥뜨리게 된 순간 속에서는 느슨한 끈을 되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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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푼크툼


 

할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뒤,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던 옥주가 갑작스레 오열하는 시퀀스를 마주한 순간, 나는 이건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려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임을 직감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옥주 나이 또래였을 무렵, 나도 상실을 겪었고, 그때가 아마 생애 첫 장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의 육체가 더 이상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고 공중으로 휘발된다는 것이 철없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저 불가사의한 신비에 가까웠다. 장례식에서 동생과 천연덕스럽게 놀기도 하고, 어른들의 옆에 붙어 가만히 구경하기도 하던 내가 처음 눈물을 쏟아낸 건 상당히 의외의 순간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고구마 피자를 한 조각 집어 든 찰나,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고구마 피자가 먹고 싶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고, 생전에도 결코 가깝지 않았던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득한 애수 같은 것이 몰려왔다.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이 시퀀스는 유독 애틋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는 나의 푼크툼일 뿐이지만, 이외에도 영화 곳곳에는 첫 상실, 첫사랑, 첫 성장통 등 아련하고 저릿한 당시를 복기하게끔 하는 순간들이 곳곳에 매복해 있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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