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력적인 관객을 초대하는 매력적인 뮤지컬 [공연]

글 입력 2023.07.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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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학창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보여주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제외하곤 공연을 관람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2021년 여름, 지인의 추천으로 연극 한 편을 관람했고, 그 뒤로 공연예술 분야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직 공연 관람을 좋아한 지 2년도 채 안 되었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겐 유명하다는 작품도 필자에게는 처음 듣는 작품인 경우가 많다. 또, 폭넓고 깊은 시각으로 공연을 바라보는 것에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필자가 관람한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에 대해 꼭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는 영국의 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모티브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속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와 똑 닮은 알프레드 더글라스(보시), 와일드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는 로버트 로스가 함께 등장한다. 2021년 초연의 막을 올린 <와일드 그레이>는 2년 만에 대학로에 돌아온 작품이다. 19세기 런던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랑과 아름다움, 자유를 노래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 이 글에서는 등장인물 알프레드 더글라스를 ‘보시’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 글에는 결말을 포함한 극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극이지만 창작 뮤지컬이기에 어느 정도의 각색이 포함되어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크기변환][포맷변환]와일드 그레이 포스터.jpg

(사진 출처 :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공식 트위터)

 

 

 

오직 아름다움만이


 

[크기변환]와일드 그레이 1.jpg

(사진 출처 :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공식 트위터)

 

 

대영 박물관에서 보시를 처음 만나게 된 와일드는 보시로부터 “자신이 매력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면 꼭 오라”는 티 파티 초대를 받는다. 초대를 받아 도착한 티 파티 장소에는 오직 보시와 와일드뿐이었고, 준비된 것 역시 찻잔이 아닌 술잔이었다. 그러고는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속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에게 ‘계기’가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보시로부터 흥미로움을 느낀 와일드는 창작의 영감을 얻고, 집에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아름다움 자유로워

그 자유로움 아름다워

오직 아름다움만이

삶을 견디게 하지


- 넘버 <아름다움만이> 중 오스카 와일드

 

 

위의 가사는 오스카 와일드가 대영 박물관을 누비며 노래하는 ‘아름다움만이’라는 넘버 중 일부이다. 아름다움을 예술의 최고 가치로 두고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적 예술관이 드러나는 부분인데, 그가 이 부분을 노래할 때 보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와일드에게 있어 보시가 ‘아름다움’이 되었음을 표현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와일드 앞에서 직접 그가 쓴 소설의 내용을 지적하고, 심지어 자신 역시 소설 속 주인공(도리안 그레이)처럼 타락한 삶을 살아낼 것이라 말하는 당돌한 보시. 보시는 와일드에게 넘버 속 가사처럼 삶을 견디게 하는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적 감각을 일깨우는 ‘뮤즈’이기도 했을 것이다.


극은 관객들이 보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단번에 이해하기를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와일드처럼 서서히 보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한 동기들을 마련해준다. 그중 와일드가 그려준 보시의 초상화를 보시가 직접 마주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무대 위 천장에서는 아무것도 끼워지지 않은 액자가 내려오고, 그 액자 뒤에 선 보시가 객석을 향해 나르시시스틱한 (자신의 초상화에 매료된) 표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보시를 더욱 감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잠시 뒤로 물러나


 

[크기변환]와일드 그레이 2.jpg

(사진 출처 :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공식 트위터)

 

 

그렇다 해서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가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극은 아름다움에 빠져 섣불리 예술을 삶에 투영하는 와일드를, 그리고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두려움에 떨며 변해가는 보시를 보여준다. 극에서는 이 둘의 불안정함을 로스의 대사로 표현하는 부분이 꽤 있다. “삶이 예술을 모방한 것”이라 말하는 와일드에게 로스는 “예술을 삶으로 끌어들인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를 경고한다. 또, 보시의 가족들이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했던 사실을 이야기하며 보시가 위태로운 상태임을 알리기도 한다.

 

와일드의 연인이었으나 이별한 후에도 와일드의 곁에 가족같이 남아주었던 로스였기에, 로스의 대사 대부분에는 진심 어린 조언이 담겨 있다. 와일드와 보시 두 인물의 입장에 점차 몰입하던 관객들은 중간마다 등장하는 로스를 통해 불안정한 둘의 관계를 잠시 한 발 뒤로 물러나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시가 매력적인 인물인 것과 별개로 로스는 신뢰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진심으로 와일드를 사랑하는 로스의 마음을 아는 관객들은 로스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넘버 ‘동화’에서는 보시를 향한 와일드의 굳건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렇기에 와일드가 노래를 마치고 떠난 뒤 로스 혼자 남아 부르는 이 넘버의 마지막 부분이 로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여담이지만, 끝내 자기 파괴적인 선택 -보시를 지키기 위해 보시의 아버지인 퀸즈베리 경에 소송을 제기한 것- 을 하려는 와일드를 만류하며 로스가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 마을엔 한 사람이 살았지

그의 이야기를 정말 사랑하던 사람

하루 종일 그를 기다리다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거야


- 넘버 <동화> 중 로버트 로스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크기변환]와일드 그레이 3.jpg

(사진 출처 :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공식 트위터)

 

 

세 남성의 복잡미묘하고도 깊은 관계성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그저 ‘남색죄’로 치부되었다. 결국, 오스카 와일드는 재판에서 당시 법정 최고형이었던 2년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았고, 출옥 후에는 수감 생활 내내 보시에게 썼던 편지들을 로스에게 전한 뒤 그의 곁을 떠난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없었던 19세기 런던에서 세 인물은 본인의 감정에 진실했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다. ‘탐미주의’를 주창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미’ 그 자체였던 보시를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이라 확신하며 보시를 ‘도리안 그레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보시 역시 그러한 와일드에 화답하듯 자신을 ‘도리안 그레이’와 동일시하며 와일드에게 의지했고, 로스는 이별 후에도 와일드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를 설득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세 인물 모두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크기변환]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1.jpg

 

 

실존했던 세 사람의 실제 이야기는 당연히 이와 매우 다를 것이고, 섣불리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는 여전히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 탐미주의 등, 극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배경, 조명, 음악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극의 무대적 장치, 그리고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와 넘버까지 세밀하게 살펴볼 만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필자가 극을 보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 세 가지를 언급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관객은 퇴장."

 

- 보시가 로스에게.

  


“관객이 되고 싶은 사람.”

 

- 로스가 보시에게, 와일드를 생각하며.

  

 

“끝까지 날 배우이게 한 단 한 명의 관객.”

 

- 와일드가 로스에게, 보시를 생각하며.

 

 

※ 대표이미지 포함,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공식 트위터입니다.

※ 이외에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임을 알립니다.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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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유후
    • 글 잘 읽었습니다! 매력적인 인물들만큼 작품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네요 꼭 한 번 보러가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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