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디까지 보이시나요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도서]

글 입력 2023.07.0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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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가장 격하게 공감할 때가 있다. 나는 미술관에 갈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물론 내가 지식이 많아 그림을 척 보면 어느 시대 작품인지 읊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미술관만 가면 유독 작아진다.

 

누군가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보고 기법, 시대적 배경, 작가의 삶 등을 떠올리겠지만, 나같이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에게 <우는 여인>은 말 그대로 울고 있는 여인이다. 친구와 함께 ‘울고 있네. 눈물 그치세요.’ 와 같은 단순한 말밖에 하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에는 웃기만 하는 1차원적인 내게 미술은 오래 낯설었다.

 

 

에드워드-호퍼의-시선-앞표지.jpg


 

그렇기에 나는 호퍼의 그림들을 몇몇 어휘로 나눠 펼쳐 보이려 한다. 여러 색의 색실로 짜인 직물을 풀어 헤치는 것처럼. 이 어휘들은 그림이 담아 옮기는 감정을, 화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화면을 구성하는 책략을 헤집어 보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게 풀어헤친 실들을 다시 엮어 만든 직물에서 독자와 관객이 새로운 광채를 찾아낼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_5p, [들어가며] 중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은 그 낯섦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막연히 여러 작품을 나열하고 세계를 설명한다고 해서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에드워드 호퍼는 ‘도시와 고독을 그린 화가’로 알려졌지만, 막상 그의 작품을 바라보자면 단순히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호퍼는 사실주의 화가로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세밀히 바라보면 막상 사실적이지 않았다. 일상을 그린 것 같지만, 자연은 정물화처럼 생기가 없으며, 벤치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있는 등 미묘하게 실제와는 어긋나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호퍼의 그림을 꿰맞추고 다양한 암시와 의도를 담은 ‘레고’로 비유했고 더 자세히 파고들어 도시, 고독, 빛과 어둠, 에로티즘 등 여러 어휘로 나누어 에드워드 호퍼를 설명하고자 했다.

 

 

호퍼 그림.jpg

 

 

사실 이 책을 통해 호퍼의 수많은 작품을 다 볼 수는 없다. 특히 나와 같이 미술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라면 그중에서도 어떤 어휘가 중요한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호퍼를 설명하는 수많은 어휘 중에서도 ‘에로티즘’에 주목했고 이를 ‘중요한 카드’에 비유하였다.

 

호퍼는 주로 도시와 고독, 빛과 그림자, 미국의 리얼리즘 등의 표현으로 수식되지만, 만약 호퍼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어휘를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그 말들은 쓸려나가고 '에로티즘'만이 굳건히 남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도박판에서 카드를 쥔 도박사들처럼, 저마다 중요한 카드를 들고 있다. 어떤 예술가는 그 카드가 한 장뿐이고, 어떤 예술가는 여러 장이다. 호퍼는 대충 두 장쯤인 것 같다. 에로티즘이라는 카드 한 장. 그리고 에로티즘을 뺀 나머지 모두를 합친 한 장.

 

_134p, [에로티즘]

 

 

미술사에서 에로티즘은 유독 여성의 몸을 다루었다. 이 배경에는 시선과 권력이 존재한다. 권력의 주체는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림 속 여성은 대부분 부끄러운 태도를 취하거나 정면을 바라보는 등의 시선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누드화 속 여성보다도 호퍼의 <누드쇼>에서는 과감함이 돋보인다.

 

저자는 호퍼의 에로티즘이 ‘당혹스러울 만큼 노골적이고 유치하다’라고 서술했으나 이를 알면서도 이를 핵심 카드로 본 대담한 예술가로 평가했다.

 

 

[크기변환]호퍼 그림2.jpg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은 저자를 따라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라볼 시력을 높일 수 있던 기회였다. 특히 미술작품을 잘 모르더라도 에밀 졸라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 그 낯섦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란,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굳이 선명한 시력을 가질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흐릿하게만 산다면 재미없지 않을까.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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