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희망으로 붙인 파편들 [미술]

무수한 실패를 전제하고, 부서진 흔적을 애정하고
글 입력 2023.07.0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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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손바닥만 한 노트 한 권과 펜 한 자루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가볍게 셔츠를 입고 백팩을 매고 있는 나는 이곳에 두 번 온 관광객이다.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고, 소지품 검사까지 꼼꼼히 해야 하지만,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들어가기 위해 나름 즐겁게 기다린다.

 

오기 전에 미리 든든한 끼니를 챙겨 먹는 건 필수이다. 방대한 유물, 많은 전시실을 찾느라 이동하다 보면 피곤함은 필수 동반이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엔 에너지 비축 겸 한국관부터 보겠노라, 다짐하고 바로 한국관 전시실로 향하는 전략을 취했다.


한국 전시관 전경은 작은 공간에 압축적으로 문화적 유물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도기 작품과 페인팅, 심지어 한옥의 모습, 옹기같이 우리 문화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아닌 ‘박물관’이기에, 이해되는 전시 흐름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출구 쪽 위치한 투명한 유리관 안에 있던 작품들이다. 유리관 가운데 있는 작품은 이민 작가의 <역사의 파편>이다.

 

이 작품은 여러 겹의 인쇄를 통해 금이 간 깨진 도자기를 묘사했는데, 이수경의 Translated Vase 작품과도 깊이 연결된다.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들로 제작한 이수경의 작품들과 위 평면 작품 역시 의미가 상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의 작품에 있어서 다소 다른 점은 ‘우리의 역사적 흐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어둡고 흐린 어두운색이 주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금이 간 얇은 부분들에는 밝은색으로 채워져 있다.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두운 순간에도 밝은 빛을 잃지 않은 나라임을, 주위에 암흑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였어도, 안에 흐르던 밝은 빛은 사라지지 않고, 꺾이지 않은 나라였음을, 이민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침략과 절망의 역사를 겪었지만, 다시금 계속해서 몇 번이고 일어섰던 발자취가 그려진다.


또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품이 보이는 구도 역시 상당히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출구와 가까운 편에서 이 유리관을 본다면, 이민 작품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박영숙의 Moon Jar ‘달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깨졌지만 또다시 하나의 조화로운 달항아리가 되는, 그 흐름을 명확히 전시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달항아리를 만든 박영숙은 전통 제조 과정을 되살리기 위해 5년 동안 시험을 했다고 한다. 성공 확률이 10분의 1이었을 만큼, 하나의 완벽한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선 고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렇듯 완벽해 보이는 달항아리 역시 사실 무수한 실패가 전제되었다는 점, 이수경의 작품처럼 부서진 도자기를 이어 붙였다는 점, 이민의 작품 속 찾을 수 있는 우리의 ‘힘’과 같은 주제는 종합적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긴말 없이 확실히 제시하고 있다.

 

역사, 화합, 용기를 주제로, 배치해 둔 작품들이 여러 다른 색의 눈동자들 사이에서도 의미 있게 읽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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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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