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안되는 이유는 백만가지지만 난 널 사랑해 [영화]

영화 <엘리멘탈>
글 입력 2023.07.01 14: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jpg

 

 

 

영화를 기대한 이유


 

우습게도 필자가 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영화 엘리멘탈은 원소 이야기이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기본 원소인 ‘불’ ‘물’ ‘흙’ ‘공기’를 의인화한 원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려냈다.


각자의 특성을 살린 귀여운 외형과 달리 모두와 함께 섞이지 못하고 본연의 형질을 고집하는 어떤 원소는 또 다른 어떤 민족과 닮아 있었다.


 

 

인생은 이어달리기



영화를 봐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어떤 바이럴 때문이었다. 한국 장녀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엠버의 홀로서기는 숱한 장녀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고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판타지 세계를 그렸으나 한편으론 익숙한 상황인데? 싶었다.


한국에서 장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개인 보다 공동체의 삶과 효를 중요시 여기는 동양사회, 특히 대한민국의 k-장녀는 책임감과 배덕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부모의 희생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견뎌내는 것. 엠버는 장차 파이어플레이스를 물려받아 가업을 이을 운명이었다. 그것은 엠버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숙명처럼 당연했다. 부모의 뜻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 여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k-장녀들은 엠버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많은 장면에 공감했다.


수년 동안 일군 가게가 폐업 위기에 처하자 엠버는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것을 망쳤다며 자책한다. 시청 직원인 웨이드가 지적한 원인 모를 누수와 허가받지 않은 가게는 엠버의 의지도 선택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엠버의 ‘불’ 같은 성격 탓에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났을 일이었다.

 

 


마음에서 새어 나간 것 


 

웨이드는 원인 모를 누수 탓에 파이어플레이스 안으로 흘러 들어와 엠버와 만나게 된다.


영화가 후반부로 달려 갈수록 엠버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자 누수 사고는 파이어플레이스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서 새어나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친숙하다


 

엘리멘탈에 특히 주목한 것은 한국계인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친숙하더라.


기본 원소를 귀엽게 구현해 낸 캐릭터는 낯설지만 그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는 닉과 주디가 살고 있는 주토피아를 떠올리게 했다. 비슷한 스토리 구조로 흘러가지 않을까, 내심 품었던 기대를 접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엘리멘탈에서 전통과 뿌리를 중요시 여기는 엠버의 가족을 통해 서구권에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소수의 모습을 엿보았다. 엠버가 어릴 적에 환상의 꽃 비비스테리아를 보기 위해 방문했지만 불꽃이라는 이유로 입구에서 제지당한 기억은 한 번쯤 차별과 핍박에 경험이 있는 이민자라면 가슴을 뜨겁게 울렸을 테다.


오히려 부모의 희생을 이해하는 엠버가 그들이 일궈낸 가게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공감하지 못하는 웨이드가 낯설었다.


그 마음에 공감하는 것은 웨이드도 아닌 극장 안에 앉아 있는 수많은 장녀들이었다.


웨이드는 엠버의 아버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못 먹는 불덩이를 삼키고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투혼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두고 장인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면담에 고군분투하는 예비 사위의 모습이란다. 생김새도 가치관도 다른 사윗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모는 k-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적 연출이었으나 이를 원소에 빗대어 보여주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영화는 아기자기한 편이다. 박장대소는 아니었지만 픽사 특유의 개그코드가 즐겁게 만들어 주었고 엠버와 웨이드의 데이트 장면은 마치 극장을 부유하는 것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현실의 고단함 앞에 져버린 성인도 마음 깊은 곳에는 꿈을 잃지 않은 이상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 그 순간 판타지는 현실이 되어 내게도 동기부여를 선사한다.


서로의 형질을 드러내며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며 무지개를 만드는 장면은 사랑이 이렇게 좋은 거였지, 하고 깨닫는 순간 중에 하나였다.

 

 


천적?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


 

그러니까 엘리멘트 시티에서 특히 ‘불’과 ‘물’은 천적과도 같다. 엠버와 웨이드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손을 마주 잡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상대를 꺼트리거나 기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멘탈은 다른 상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엠버는 화가 많지만 책임감이 강했고 웨이드는 쓸데없이 감성적인 주제에 다정했다. 귀여운 원소 캐릭터를 통해 과학적으로 풀어가고 있으나 모든 개체에게 사랑하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자라온 환경마저 다른 엠버와 웨이드는 서로의 가족을 만나는 순간에서 조차 어색해했다. 웨이드의 가족은 엠버와 달리 엘리멘트 시티 한복판에 위치하는 고급 아파트에 살았으며 처음 마주한 엠버의 불꽃을 보고도 개의치 않아 했다.


특히 웨이드는 감정 조절을 못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이 헤프고 감성적이었는데, 그가 물 속성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온몸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감정에 지배 당해 흐물거려야 마땅했다.


그에 반해 엠버는 줄곧 화를 다스리고 억누르는 연습을 해왔다. 어쩌면 엠버가 그동안 눌러 온 것은 그녀가 놓치고 있던 꿈일 수도 있겠다. 웨이드의 가족이 당연하게도 짚어낸 그녀의 꿈이 희망찬 기대감 대신 배덕감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너무도 강한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했는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웨이드에게 끝내 모진 말을 뱉는 엠버가 심히 안타깝기도 했다.

 

 

 

우리가 안되는 이유는 백만가지지만 난 널 사랑해


 

영화는 내내 엠버와 웨이드가 이루어져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만 내게는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유들로 다가왔다.


화가 많고 이성적인 엠버에게 솔직하고 다정한 웨이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정말 좋더라."


반대가 끌리는 이유는 서로에게 없는 장점뿐만 아니라 고유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보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