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드워드 호퍼 귀여워하기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동참을 조심스레 제안해 보는,
글 입력 2023.06.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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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

새롭게 시작하는 쇼핑몰 브랜드 마케팅의 첫 번째 순서로 신세계가 선보였던 광고를 모두 기억하실까.

 




 

이 광고는 2016년 당시 TV를 보고 있던 대중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다. 나 역시 이 광고를 본 적이 있었고, 색다르다는 감상과 함께 그 장면 장면이 뇌리에 박혔던 감각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업물들을 다루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전시를 보러 갔을 때 옛날에 봤던 신세계 쇼핑몰의 광고가 떠올랐었다. 전시 자체를 감명 깊게 보았기도 했고, 그 광고에도 흥미가 생겨 '에드워드 호퍼'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를 더 알고 싶었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접하게 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라는 이 책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그에 대한 또 다른 감상을 얻게 만들었다. 에드워드 호퍼는 생각보다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지만, 삶에 임하는 그 열정의 온도보다 조금은 미지근한 사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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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보다 물렁하고 고독보다는 따뜻한,


 

에드워드 호퍼의 작업들을 둘러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시선으로부터 홀로된 것들의 외로움에 대해 말하곤 한다. 책의 저자 또한 그것들에 적막, 그리고 고독이라는 이름을 붙여 언급한다. 적막과 고독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에서 '적막'과 '고독'이라는 무형의 덩어리가 은은하게 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 속에서도 이야기하지만, 에드워드 호퍼는 화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빛'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원래 화가들이 활용하는 방식처럼 빛이 비칠 때 형성되는 그곳의 분위기나 사물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단, 빛 그 자체가 어떻게 그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지, 빛은 공간을 어떻게 채우는지에 집중한다. 즉, 빛을 사물이나 대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빛을 '대상'으로 둔다. 작품의 주인이 빛으로 바뀌면서, 호퍼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장소들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림 속 인간 또는 사회의 '제외'를 낳지는 않는다. 인물의 표정과 옷차림, 그들과 사물의 위치는 어찌 보면 그 안에 늘 존재해 오던 그들만의 내러티브를 유지하는 듯하다. 정리하자면, 그들의 공간에 '빛'이 찾아왔는데, 빛과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내러티브가 따로, 또 같이 작품 속에 존재한달까. 그로부터 발생되는 묘한 이질감이 적막과 고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감싸는 액자가 되는 것 같다.

 

 


사람 냄새



작품엔 예술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떤 창작자, 또는 생산자에게 붙더라도 능히 통용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면, 그것은 곧 그 누군가의 삶 속 한 흐름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예술을 감상하는 데 주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어떤 한 작품을 감상할 때 그것이 만들어 지던 시기와 만든 이의 인생 속 맥락을 인지하고 이해한다면, 작품에 대한 고찰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호퍼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엔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런데 노골적이진 않다. 은은하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호퍼의 작품 속에는 그가 살면서 느꼈을 불편함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들,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었을 인사이트가 담겨 있다. 처음 만난 이와의 불편한 대화라든가, 홀로 있을 때 느껴지는 존재로서의 쓸쓸함이라든가, 또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마주했을 때의 막막함과 권태 등. 사회의 거시적인 측면에서 소외 당하는, 인간이 가진 사적인 감정들을 어렵지 않은 듯이 다룬달까. 


그림을 보다 보면 '이 그림 속에 있는 것들이 인간사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주제, 또는 내용을 접할 때가 많다.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재미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러한 그림들을 보는 이의 입장에서 그린 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지, 또는 어떤 내용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를 추측하는 재미 요소를 얻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삶 속 순간순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묘하게 흐르는 듯한 화풍과 거칠고 때로는 미욱하면서도 그 순간의 기억만큼은 확실히 담아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저 완벽하거나, 유행의 흐름을 따르거나, 냉소적이기 때문에 에드워드 호퍼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 아니다. 사람 냄새가 나니까. 표현과 개성이 두드러지면서도 그 정서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에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라 생각한다.




귀여워



저자 이연식은 나가는 글에 이렇게 말한다. "편집자들이 요구한 것도 아닌데 계속 호퍼를 들먹였던 걸 보면 역시 호퍼를 좋아하는 것 같다. 꽉 막힌 성질머리도 호퍼와 비슷하다."

 

그의 이 말에서는, 마치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는 '입덕부정기'를 지나는 이의 것과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더라면 호퍼에 대해 온전한 한 권의 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는 모습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 분 호퍼 되게 좋아하시는구나.'


물론, 저자가 호퍼를 은연중에 귀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글을 읽는 내내 모르진 않았다. 다만, 15개의 키워드를 통해 다각도에서 호퍼를 조명하는 그 방대하고도 심오한 고찰이 '귀여워'를 3분의 2쯤 가리고 있었기에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의 글 속에서 호퍼는, 이야기 꾼이었다가, 고지식한 남편이었다가,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유학생이었다가, 세상을 울고 웃게 하는 책략가였다가, 종국에는 위대한 미술가가 된다. 그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되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호감은 책 속 글자 사이사이를 분홍색으로 채운다.


나 또한 그를 귀여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삶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담고, 본인만의 표현 방식으로 개발하고, 그 속에 자기 향취를 숨겨 놓는 그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그 매력을 오롯이 마주하게 된다면, 에드워드 호퍼를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에는 저자가 바라본 '에드워드 호퍼'의 매력과 그 작품에 담긴 향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만약, 신세계 닷컴의 광고를 흥미롭게 바라본 적이 있다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에드워드 호퍼전을 관람하기 전 에드워드 호퍼를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에드워드 호퍼라는 인물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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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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