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지폈을까, 그 불 - 육쌍둥이 [연극]

붉게 타오르는 망루의 불길
글 입력 2023.06.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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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육쌍둥이]의 막이 올랐다. 하수민 연출가의 창작극 [육쌍둥이]는 즉각반응에서 주최하고 컬처버스에서 주관한 극으로, 100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진행된다. 


[육쌍둥이]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연극을 만드는 즉각반응의 [현대시리즈] 제 1탄으로, 서울 용산 망루 철거 사건 당시 발생했던 화재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육쌍둥이]는 용산에서 타올랐던 불을 소재로 사회와 인간 내면에서 타오르는 욕망을 그려낸다. 파격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가 현실의 부조리함을 선명하게 무대 위로 불러낸다.


[육쌍둥이]는 그리스 비극의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사회와 인간의 문제에 대해 현실적이면서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상당히 심오한 분위기와 내용을 담고 있고, 죽음에 대한 묘사 또한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관람 시 주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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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한 고물상에게 입양된 여섯 쌍둥이는 10살 즈음 각기 다른 이유로 집을 떠난다. 오롯이 막내만이 고물상과 그들을 키워준 여인의 곁을 지켰다. 10년 후, 고물상이 죽음을 맞이하자 집을 떠났던 형제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그간의 회포를 풀던 여섯 쌍둥이는 죽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고물상을 떠나려고 한다. 그때, 막내가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는 땅문서를 형제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 땅이 재개발 부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은 그 재산을 나누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 


그들은 각자의 힘들었던 과거를 노래하며 재산을 상속받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 과정에서 과열된 형제들은 서로를 헐뜯다 못해 결국 폭력까지 사용하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막내가 그들을 저지한다. 막내의 이야기를 듣던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을 깨닫고, 반성하며 서로를 끌어안아 준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여인의 대사와 함께 극은 막을 내린다. 


본래 코러스는 주인공이 이끄는 극의 흐름을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하수민 연출은 여섯 쌍둥이를 코러스로, 여인을 코러스장으로 연출하며 코러스가 주가 되는 반전적인 구성을 만들었다. 즉, 주인공이 없고 오로지 코러스만으로 진행되는 연출을 시도했다. 하수민 연출은 이를 통해 영웅 주인공이 아닌 서민의 목소리를 극에 담아내려고 했다. 


또한, 하수민 연출은 그리스 비극의 구성 방식인 프롤로그, 파라도스, 에피소드, 스타시몬, 코모스, 엑소더스를 코러스를 기준으로 재해석했다. 


‘프롤로그'란 코러스가 오케스트라에 등장하기 전까지의 부분을 말하며 극의 등장인물과 극의 시간과 장소를 소개하는 것을 말한다. ’파라도스‘ 역시 극에 대한 소개를 이어가지만, 코러스가 오케스트라에 입장한다는 것이 프롤로그와의 차이점이다. 극에서는 코러스장인 여인이 여섯 쌍둥이와 고물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프롤로그가 진행되고, 파라도스에 접어들면서 코러스인 육쌍둥이가 등장해 스스로를 소개한다.


‘에피소드’란 짧은 이야기를 말하고, ’스타시몬‘이란 파라도스를 제외한 모든 코러스의 노래를 지칭하는데, [육쌍둥이]에서는 세 개의 에피소드와 두 개의 스타시몬을 활용하여 극의 줄거리를 이어 나간다. 곧이어 코러스가 대사를 교환하는 부분인 ’코모스‘가 이어지며 여섯 쌍둥이가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을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코러스장인 여인이 이야기를 끝맺으며 극의 마지막 부분을 통칭하는 ’엑소더스‘로 연극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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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쌍둥이]를 관극하고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상당히 파괴적인 성향이 강한 연극이라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스토리 진행과 연출이 실험적이었으며, 연극에 사용되는 음향과 조명 역시 과감했다. 연극이 소극장에서 진행되어 음향이 주는 무게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어둡고 원색적인 조명의 압박감도 상당했다. 그로 인해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공포감이 증폭되는 효과도 있었다. 


스토리의 진행 방식 역시 전체적인 공포감에 일조했다. [육쌍둥이]는 초반 이야기가 상당히 경쾌하고 빠른 흐름으로 진행된다. 어른임에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외관이나 노골적인 대사는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는 분명 웃음을 자아낸다. 배우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하며 연기를 하고, 관객들은 웃음으로 반응하며 극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흐름은 무겁게 바뀌었다. 섬뜩할 정도로 원색적인 가사와 대사는 점점 긴장감을 조성했고, 관객들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가라앉은 공기의 고요함이 그 불안감을 극대화했다. 초반에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강조했던 배우들의 큰 성량은 이제 그들의 분노와 탐욕을 강조하게 되었다. 관객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고,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흘러나오는 공포에 잠식되었다. 더불어 죽음에 대한 묘사가 선명하고 섬뜩하게 연출되면서 연극의 공포감은 극에 달한다.


인간과 사회의 탐욕을 처절할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낸 [육쌍둥이]는 실험적인 느낌이 강한 극이었기 때문에 이 연극이 담고 있는 심오한 메시지를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느꼈다. 전개와 연출에 있어 친절한 극은 분명 아니다. 그러므로 극이 진헹되는 매 순간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간 후에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더욱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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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역시 연출이 극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육쌍둥이]는 2009년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용산 참사는 강제 철거를 막으려는 철거민들의 농성과 그들을 진압하려는 경찰의 대치로부터 발생한 화재로, 6명의 사망자와 23명의 부상자를 낳은 사건이다. 철거민들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화염병으로 경찰의 진압에 저항했다. 


사망자는 존재하지만 분명하게 밝혀진 가해자는 없다. 이것이 이 사건과 [육쌍둥이]의 연결고리이다. 그 당시 국가는 용산 참사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하지 않았다. 처벌받은 것은 검거된 철거민들뿐이었으며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여섯 쌍둥이와 여인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희생자는 존재하지만 분명한 가해자는 없다. 유력한 가해자 후보인 고물상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에.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여섯 쌍둥이는 모두 얼굴에 붉은 흔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부터 다섯째는 전부 얼굴에 붉은 물감이 칠해져 있다. 이 붉은 물감은 극의 후반부에서 더욱 넓게 칠해지는데, 이는 쌍둥이 내면의 불, 즉 욕망을 의미한다. 


쌍둥이들은 모두 20살이 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름이 적힌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다. 이는 여섯 쌍둥이가 상처 입은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이들은 에피소드와 스타시몬을 통해 아픈 상처를 안겨준 과거와 그와 관련된 욕망과 욕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의 욕망은 붉은 물감과 함께 더욱 커지는데, 이는 극의 주된 갈등 요소인 재물을 향한 탐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반면, 막내는 유일하게 얼굴이 아닌 붉은색의 머리카락으로 욕망을 표현한다. 즉, 쌍둥이 중에서 유일하게 불의 크기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막내의 불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불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막내는 그의 불이 아버지로부터 옮겨붙었다고 했다. 막내의 마음속에 불을 지핀 고물상의 불은 여인에게도 옮겨붙었다. 여섯 쌍둥이를 키웠다던 여인은 등장부터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즉, 욕망으로 치환되는 붉은색의 영역이 등장인물 중 가장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여인의 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아남고 싶었던 생존의 욕망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꺼지지 않는 불이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나타낸다면, 옮겨붙는 불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막내의 불은 고물상으로부터 옮겨붙은 것일까, 아니면 여인으로부터 옮겨붙은 것일까.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불씨인지 불명확하더라도 옮겨붙은 불은 전부 그 몸집을 키워 결국엔 희생자를 낳는다. 


하수민 연출은 시놉시스를 통해 인간의 욕망에는 불의 성격만큼 악함과 선함이 공존한다고 했다. 선한 욕망과 악한 욕망이 전부 불이라면, 그것이 가지는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불이 다다르는 파국의 끝에서 구원의 계기를 만날 수도 있다는 하수민 연출의 말은 무슨 뜻일까. 


[육쌍둥이]의 등장인물들은 전부 마음속에 불을 피웠다. 이들이 피운 불꽃은 마음속 시간과 기억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고 끝내는 모든 걸 집어삼켰다. 그렇기에 필자는 결국 이들은 모두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선한 불이든 악한 불이든 모든 파국이 끝을 향하게 된다면, 그 끝은 결국 파멸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마주한 파국에는 어떤 구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모두를 살리는 선한 불이란 어떤 것일까. 불은 모든 걸 태운다. 그리고 옮겨붙은 불꽃들은 한데 엉겨 붙어 그 시초를 알 수 없다. 선한 불과 악한 불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날 필자가 보았던 불길이 어떤 불인지 필자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육쌍둥이는 어떤 불에 의한 희생자인가? 또한, 용산 참사의 희생자는 어떤 불에 의한 희생자인가?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는 불꽃이 있는가? 필자는 그 무엇에도 대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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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쌍둥이]는 난해하고 심오한 연극이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관극 후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수도 있는 극이다. 실제로 필자는 이 연극이 끝난 후 충격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현실을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파괴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극을 감상하기 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와 내용을 참고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육쌍둥이]는 친절한 극은 아니다. 그러므로 극이 끝난 후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 질문들은 꽤나 오래도록 짙은 잔상으로 남아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쉬이 정답을 찾을 수 없기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듯하다.


하수민 연출은 [육쌍둥이]를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준비했다. 2014년 초연 이후로 2015년, 2022년 공연을 거쳐 올해 2023년 사연을 맞이했다. 그 과정 동안 그는 [육쌍둥이]의 윤곽을 정립해 온 듯하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육쌍둥이]와 함께 한 그와는 달리 대부분의 관객에게 [육쌍둥이]는 초면일 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친절한 언어로 관객에게 말을 걸어 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육쌍둥이]는 분명 신선하고 흥미로운 연극이다. 그리스 비극을 재해석하고 코러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색다른 구조, 그리고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원색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육쌍둥이]는 2023년 7월 2일까지 서울 혜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평일 7시 30분, 주말 4시에 공연이 진행된다. 7월 1일과 7월 2일 공연은 한국어 자막이 적용되며, 7월 1일에는 하수민 연출과 7명의 배우가 애프터 토크를 진행하며 관객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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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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