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가능의 테두리 그리기 [사람]

이루어질 수 없는 일 상상하기
글 입력 2023.06.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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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뭔가요?



요즈음에는 꿈을 꾸지 않는다기보다는, 실패를 먼저 생각한다. 실패할 가능성을 떠올린다. 꿈은 때로 내 안에서 몸을 부풀렸다가, 내 안의 두려움에 찔려 비눗방울처럼 터졌다. 허황되었다 말할까 봐, 보잘것없어 보일까 봐,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실패의 테두리가 너무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은 좁아 보였다. 아무리 몸을 구겨 넣어도 통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미지는 날 두렵게 했다. 미래는 기대보다 두려움을 품은 곳이었다.

 

 


불가능의 테두리 그리기



 

인아는 마치 평균대 위를 걷는 듯 두 팔을 양옆으로 길게 뻗어 균형을 잡으며, 수차례 비틀거리며 휘황한 밤거리를 앞장서 걸었다. 그녀가 대학 시절 동아리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자작곡을 노래했다는 말을 그때까진 실감할 수 없었는데, 어둡고 인적 없는 골목에 다다르자 인아는 낯선 노래의 후렴부를 불렀다.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져볼 수 없을 차가움


(한강, 「에우로파」)

 

 

한강 작가의 소설 「에우로파」에는 인아가 만든 노래가 등장한다. 이 노래는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설의 한 문장과 문단을 떼어와서 글을 쓰는 일은 항상 오독과 오용의 불안과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한 위험에 이를 경계하면서도, 나는 이 글을 내 방식대로 사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움이 첨예한 끝을 드러낼 때면, 이 글이 떠올라 내게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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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져볼 수 없을 차가움

 


나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의 테두리를 더듬으며 그려봤다. 내가 할 수 없다고 말한 일들을 떠올렸다. 내가 그린 테두리와 절대 불가능한 일의 테두리 그 사이 너비를 가늠해 봤다. 넓었다. 달과 지구만큼. 내가 할 수 없다고 말한 일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불가능할까?

 

 


10년 뒤의 나



"10년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어느 날 누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시간이 참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사람인 나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막막했다. 10년 뒤에 내가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10년 뒤를 생각하는 건, 마치 절대 될 수 없는 모습을 생각하는 일처럼 느껴져 우울했다.


뭐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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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모르겠다. 삶의 뼈대를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10년 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것들을 적었다. 구체적으로 적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해에 떠오르는 굵직한 시작과 끝맺음을 적어두었다. 10년의 흐름을 보고 있으니 내가 해온 게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가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 같았다. 마음으로 생각을 머금기만 하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글로 표현하는 순간 마음은 하나의 틀에 갇히는 동시에 모호함이라는 고통에서 해방된다.

 

갇힌다는 것은 마냥 부정적이지 않다. 형체를 어렴풋이 느끼고 나면, 그 형체를 뛰어넘고자, 더 명료하게 표현하고자 그다음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쓰는 일이 좋았다. 직업, 잘하고 못하고와 무관하게 내가 그저 즐길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이었다. 나는 행복하고 싶으니까. 그 마음이 그때도 그대로라면, 나는 쓰고 있겠지.

 

꿈이 생겼다. 10년 후에 내가 쓰고 있다면, 나는 기왕이면 책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떠올려보면, 지금의 나도 아마 과거의 내가 불가능하다 여겼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10년 뒤를 생각하는 일은 불가능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을 그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만져볼 수 없을 차가움"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금기에 맞서는 것처럼. 절대 만져볼 수 없는 차가움을 생각하면 내 안에서 어떤 강렬한 욕망이 깨어나는 걸 느낀다. 안도하고 안주하던 내 세상이 깨어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때 알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내가 만들어 낸 내 테두리를 갈라 찢으며 나갔을 때 더 넓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두려운 한편으로는 즐겁다.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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