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단편소설집 <<노랑무늬영원>>에서 특히 표제작 <노랑무늬영원>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담긴 이야기이다. 다음은 <노랑무늬 영원>이 시작하는 대목이다.
잔멸치 떼를 만난 적이 있다. 무수한 은빛의 점들이 일제히 반짝이며 배 밑을 헤엄쳐 갔다. 빠른 속력으로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자, 헛것을 보았던 것 같았다. 한순간의 빛, 떨림, 들이마신 숨, 물의 정적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게 전부다.
한강은 실제로 12살 때, 실제로 배를 타고 잔멸치 떼를 보았다. 찬란한 빛이 배 아랫부분으로 사라진 경험은, 힘들었던 시기에 한강 작가에게 떠올랐고,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강은 때로 내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닌 소설이 나를 쓸 수 밖에 없도록 이끄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한강 작가는 소설을 씀에 있어서 "장편을 쓸 때는 장편소설을 쓰는 기간과 자기 자신을 맞바꾸는 느낌인 반면, 단편은 소설과 나의 관계가 동등하다. 그러다보니 노랑무늬영원은 자전적인 이야기다. 작가가 살면서 가지고 있는 감각이 장편보다 더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노랑무늬영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현영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작업실로 가던 중 개를 피하려다가 교통사고가 난다. 왼손은 으스러지고, 오른손은 멀쩡하지만 온전한 손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다정했던 남편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남편은 작업실을 팔 것을 제안한다. 현영은 그리을 못 그리게 되었음에도, 작업실을 팔지 않는다. 이후 현영은 자신이 좋아했던 한 남자의 죽음을 접하게 되면서 삶의 생동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살아가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갖게 된다.
한강 작가의 소설은 사건이 이어지는 것에 주목하기보다는 인물의 내면에 주목한다. 우리는 인물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사건이 흘러간다. 노랑무늬영원에서 작가는 감각을 통해 회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물들의 물리적 상처를 자세히 묘사한다. 화려한 비유, 감각적인 묘사 없이도 단단하면서 건조하고, 너무 끔찍하다고 느껴지는 것까지 생생히 묘사해내면서, 우리가 살면서 간과하고 있던 감각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로 이를 느끼게 해준다. 상처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확실한 방법으로 작용한다. 한강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을 물리적 상처라는 가혹한 행위로 들추어내면서 그것에 확실히 주목함과 동시에, 감각의 재생과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인간으로 언젠간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이는 폴 고갱의 작품의 제목이자 한강 작가가 죽음에 대해 던졌던 물음이다. 작가는 항상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이에 대한 답은 없지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소설 쓰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한 인간이 나락으로 빠진 경우 그저 가만히, 천천히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말한다. 한강은 회복에 대해 주목하며 사전적 정의의 회복이 아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는 회복을 말한다. 주인공이 회복하고 싶지 않다는 역설적인 생각은, 어쩌면 회복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강렬한 소망이 역설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