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변화는 고요해서, 도서 '고요한 변화'

사건의 연쇄, 그리고 이행과정 그 자체
글 입력 2023.06.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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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살아가는 동안 무한한 사건의 발생으로 이루어진다. 태양이 떠오르며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부터 푸르스름한 어둠의 하늘에서 달빛이 쏟아질 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우리의 하루는 사건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아침에 눈을 뜨다', '밖을 나서다', '밥을 먹다' 등.

 

좀 더 특별한 사건들로 하루를 표현해보자. '친구와 싸우다', '별똥별이 떨어지다' 등, 특별한 일들이 일상의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것들이 튀어나온다 한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친구와의 지속된 갈등이 결국 폭발한 것이 '싸움'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고, 우주에서의 우주 물질의 움직임이 지구를 지나가며 중력에 의해 빨려들어갈 때 대기에 그것이 연소되며 나타난 것이 '별똥별'이라는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찬란하게 꽃피워 온 서양 철학에서는 삶이란 '사건의 연속'으로 표현해왔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서부터 여유롭지만 고요하게 발전한 동양 철학에서는 삶이란 사건에 대한 '이행과정' 자체라고 표현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도서 '고요한 변화'에서 서양 철학과 중국 철학의 차이를 밝히며 이 '고요한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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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줄리앙은 서양 철학의 한계를 언어의 '술어관계'에서 파악한다.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서양의 언어 체계에서는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것에 있어서 결과에 대한 서술에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서양 철학은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삶을 그것의 연쇄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결과물로 받아들인다.

 

중국 철학이 서양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논리 구조를 결과물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과정에 의의를 둔다는 것에 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이유를 고민하고, 그것의 근본에 집중하는 중국 철학은 곧 인간 그 자체와 세계를 순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태극으로 대표하는 동양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은 삶을 해석하는 방법을 결과론적으로 이해하여 연쇄되는 사건의 일련으로 보는지, 혹은 음과 양의 조화처럼 모든 것이 인과 관계를 가지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고요한 과정 자체로 보는지 달라지게 되었다.

 

'고요한 변화'에서는 우리 삶의 '근본적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또한 그 사건 자체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어 끝없이 순환해 반복하는 연결 구조를 가지는 삶을 살아간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수아 줄리앙은 '변화' 자체에 집중한다. 이 변화는 갑작스럽게 발생하지 않는다. 변화마다 다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변화는 고요하고, 또 느리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변화 속에 살고 있음을 매번 자각하기도 쉽지 않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우리의 삶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혹은 흑과 백으로 구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건이라는 결과물로 쉽게 기뻐하고, 좌절하고, 또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그것이 나타나기 위해 있었던 수많은 과정들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결과 그 자체에만 매달리게 된다. 비록 사회라는 것이, 도출된 결과값으로 사람, 혹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하지만서도,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닌가.

 

신체에 장애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너무나도 당연하게 걷고 있다. 이것을 결과로만 보자면, 우리는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로서 두 다리로 걷는다는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도 안 나는, 우리가 아기였을 때, 우리 모두 두 발로 땅을 딛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해왔다.

 

처음에는 엉덩이를 들썩거렸고, 나중에는 어딘가를 손으로 짚으며 겨우 일어나 버둥거렸고, 나중에는 손쉽게 두 발을 땅에 딛었다. 그 다음에는 휘청거리며 한 발을 내딛으려다가 수도 없이 넘어졌다. 잘못 넘어져서 울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두 다리로 걷는 것을 성공했다.

 

그 수없는 연습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노력을 축복해주고 행복하게 바라봤다. 따라서 우리가 두 다리로 걷는다는 사건은 그 걸음의 연습이라는 이행과정으로 이해했을 때 너무나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단 우리의 삶에만 중국 철학의 자세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많은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결과론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포함된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 곧 우리가 이 사회를 삶의 바탕으로 이해하고 적용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고요한 변화는 결국 거대한 움직임을 낳는 법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도 조용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변화에 귀를 기울이자. 수많은 것들이 아우성 칠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흘린 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그 과정에 의의를 두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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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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